심리적 원형(原型)으로서

{베오울프} ()









인간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종종 사나운 동물이나 등을 통해서 비추어질 있다고 현대 심리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 고대 중세시대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용과의 싸움은 피상적으로는 인간에게 해를 주는 괴물을 퇴치하는 과정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웅의 감정 혹은 영웅의 내적인 무의식의 세계와의 투쟁을 의미한다고 말할 있다. 따라서, 영웅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내면 깊이 존재하는 자신 스스로 통제할 없는 두려운 어떤 것들인 셈이다. 예를 들어, 감추어진 자신만의 공포, 결점, 그리고 따위를 작품 안에서 영웅은 용의 퇴치를 통하여 정복하는 것이라고 있다.

융은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같이 말하고 있다:

매우 재미있는 그림을 보내줘서 고맙네. 죠지 성인(St. George) 하반부가 용으로 그려진 그림 말일세. 참으로 특이한 그림이었네! 인간의 하반부가 용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말일세, 실은 그것이 맞는 말이라네. 그래서 사람들은 그림을 우리 내면의 갈등 혹은 내면의 존재하는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네. 다시 말해서, 용과 영웅은 실제로 하나라는 사실 표현하고 있는 거라네. 이러한 통찰력은 고대 신화에서부터 기록되어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비교 종교적인 관점에서 고찰되어지면 보다 원대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네.

여기에서 융은 용과 용을 퇴치시키는 영웅을 불가분의 단일한 몸체로 보고 있으며, 둘은 또한 개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상반된 쌍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융은 보고 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의 마음 안에는 용을 퇴치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선의 요소들과 용으로 상징되는 악의 요소들이 상호대립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융에 따르면, 용은 인간내면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어머니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으며, 또한 보물을 지키는 용의 모습은 아들의 리비도(libido) 소유하고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융의 이러한 심리학적 이론을 {베오울프} 등장하는 주인공, 베오울프가 용을 퇴치하는 과정에 확대하여 적용시켜보자. 융의 생각이 다른 심리학자들, 예를 들어, 프로이드나 라캉의 이론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있다. 프로이드의 이디프스 콤플렉스(Freudian Oedipus Complex)이론의 측면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용을 해석하게 되면, 용은 심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영웅의 성장을 저해하는 일종의 억압적인 요소를 상징한다고 말할 있다. 따라서, 용과 영웅과의 싸움은 영웅의 내면에 잠재된 억압적인 요소들을 제어하는 자아(ego) 승리를 보여주는 원형적 주제인 셈이다. 이를 또한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그렌달의 어미와 용으로 상징되는 '경영기'(鏡影期, mirror stage) 단계에서 모성(motherhood) 지배 혹은 모성에 대한 공포를 아버지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영웅이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 영웅과 그의 백성들은 안정을 되찾게 되는 , 이러한 단계 또한 라캉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경영기'를 거친 아이가 완전한 남성의 단계에 이름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개괄적으로 보아온 것처럼 용은 영웅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른 자기자신이라는 심리학적인 원형으로서 용의 본질을 {베오울프}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베오울프}에서 용을 퇴치하는 에피소드는 스칸디나비아의 전설에 근거한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동의하고 있다. 에반스(Jonathan Evans) 연구에 따르면,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문헌에는 최소한 36개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용들이 나오고 있는데,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패프니르' (Fafnir)라는 용이다. 본래 '패프니르'는 인간이었으나, 저주받은 보물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해 모습이 괴물로 변하게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텍스트들에서 종종 입증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에반스는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에 등장하는 용들은 대부분 본래는 인간이었으나, 타락하고 사악한 내적인 동기(motive) 인하여 혹은 저주받은 보물에 대한 탐욕의 결과로 후에 용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물과 관련하여 인간이 용으로 변신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베오울프} 또한 암시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증거로서 모습과 행동에서 베오울프와 그의 적수인 용과의 유사성을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 그렌달 족속(Grendel-tribe) 베오울프는 각자의 행동이나 모습에서 매우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작품의 후반부에서 베오울프와 용과의 구분이 매우 애매모호하다. 이는 시인이 의도한 것인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베오울프가 용과 대적하는 것은 왕으로서 자신의 백성을 괴롭힌 괴물과의 단순한 대결이며, 아울러 심리학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려는 베오울프 스스로의 노력임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품에서 지하에 보물을 숨겨놓은 '마지막 생존자'(the Last Survivor) 베오울프가 싸우게 되는 용은 실제 동일한 존재라고 클레버(Frederick Klaeber) 지적하고 있다 (209). 에반스는 클레버의 주장을 보다 확장시켜, '마지막 생존자', 베오울프, 그리고 용은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는 유사한 존재들로 보고 있다 (204). 에반스의 주장에 따르면, "베오울프는 후계자도 없이 죽어 왕으로(2799ff) 미래에 대한 희망 또한 남기지 않고 사라져 민족의 마지막 생존자이다":

[N]ú sceal sincþego ond swyrdgifu,

eall éðelwyn éowrum cynne,

lufen álicgean; londrihtes mót

þære mægburge monna æghwylc

ídel hweorfan, syððan æðelingas

feorran gefricgean fléam éowerne,

dómléasan dæd. Déað bið sélla

eorla gehwylcum þonne edwitlíf! (2884-91)

이제 자네들 족속에게서는 보물을 받는다거나 검을 준다거나

또는 본국에서 누리는 모든 즐거움이나 평온이 사라지게 것이오.

곳의 귀족들이 자네들이 도망친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듣게 된다면

자네들 혈족의 모든 이들은 토지의 소유권을 박탈당하고 방랑하게 것이오.

치욕스럽게 사느니 죽는 것이 모든 용사들에게 나을 것이오!

에반스가 지적한 베오울프와 '마지막 생존자' 사이의 유사성 이외에, 용은 베오울프의 단순한 적수이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세계의 악을 반영하고 있는 그의 일부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둘의 묘사에서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베오울프와 용에 대한 놀랄 만큼이나 유사한 묘사를 통하여, 앞서 언급한대로 시인은 베오울프와 용과의 구분을 애매모호하게 할뿐만 아니라, 용은 다름 아닌 베오울프 자신의 내면세계를 비추어주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괴물과 영웅의 유사점을 (Alvin Lee)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열거하고 있다:

그들이 서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각자는 자신의 대전을 지키는 늙은 수호자로 그려져 있다: 베오울프는 '존경받을 만한 왕으로, 고국의 늙은 보호자' (frod cyning/eald eþeolweard--2209b-2210a)이며, '늙고 현명한 백성의 관리자' (frod folces weard--2513), 그리고 용은 '나이가 들어 늙었다' (wintrum frod--2277) 표현되어있다. 베오울프는 오십 년을 통치해왔으며 (2733), 용의 길이는 오십 피트 정도였다 (3042). 베오울프는 화려한 거처 (2326) 왕좌를 가지고 있었으며 (2326-2327), 또한 거대한 보물 (2279b-2280a) 화려한 대전 (2320) 가지고 있었다. 모두 전쟁을 즐기는 무사로 묘사되어 있다: 베오울프는 '백발의 무사' (har hilderinc--3136), 그리고 보다 앞서 시인은 용을 '전사' (hilderinc--3214) 묘사하고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영웅이 그렌달의 어미와 싸움을 , 시인은 영웅을 '자신의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 (secg weorce gefeh--2298)이라는 용어로서 표현하고 있다. 이와 매우 흡사하게 용에게도 '그는 전쟁을 즐거워한다' (wiges gefeh--2298) 표현이 쓰이고 있다. 영웅이 '전쟁에서 용감한 왕' (nið -heard cyning-2417)으로, 그리고 그의 적인 또한 '기민한 전사' (gearo guðfreca--2414) 작품에서 불려진다. 형용사, '용감한' (stearcheort) 베오울프와 용을 묘사하는 구분없이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다 (각각 2552 2288). 또한 2592행에서 '무사들' (þa aglaecan)라는 표현에는 베오울프와 용을 동시에 지칭하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각자는 상대방에게 주는 충격 또한 매우 유사하게 묘사되어 있다: '악의를 품은 둘은 상대방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aeghwaeðrum waes/bealohycgendra broga fram oðrum--2564b-2565).

이외에도 행동과 모습 면에서 베오울프와 사이의 비슷한 점은 작품 안에서 발견되어 진다. 특히, 용과의 전투장면에서 베오울프의 행동은 자신의 적과 매우 비슷하다. 용이 일상적으로 어떠한 무기도 사용하고 있지 않듯이, 마지막에는 자신의 적에 대항하여 무기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베오울프 또한 적을 대하면서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2518ff). 이러한 행동에서뿐만 아니라, 용과의 전투에서 베오울프의 모습은 상대방의 모습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작품에서 용은 외롭고, 사악한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이와 유사하게 베오울프 또한 혼자이며, 위그나프를 제외한 그의 모든 동료들에게 버림받은 존재로 그려져 있다. 특히, 길람(Doreen Gillam) 지적대로, 전투장면에서 베오울프의 마음은 그렌달과 용처럼, 무자비한 증오로 가득 차있을 뿐만 아니라, 베오울프는 자신을 다른 인간들과는 다른, 오히려 자신이 싸워서 이겨야할 (aeglaeca) 자신 스스로를 동일시하고 있다(168).

베오울프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용의 관점에서 , 사이의 유사성은 구분을 더욱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작품에 묘사되어있는 용의 모습은 인간과 유사하며, 내면의 모습에서 또한 용은 베오울프처럼 악마의 속성을 지닌 존재이다. 무엇보다 특이할만한 것은 작품 안에서 용이 인간과 같은 감정과 이성을 소유한 존재로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용은 기쁨, 자부심,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심지어 베오울프를 목격하는 순간 두려움 마저 느끼는 감정적인 존재이다(2270, 2298, 2305, 2307, 2322, 2554, 2561, 2593, 2689). 이처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용과 베오울프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려는 시인의 의도는 대상에 대하여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명사에서도 나타난다. 시인은 문법적으로 용과 베오울프를 [he] 라는 대명사를 구분없이 공통으로 사용하고 있다:

Stiðmod gestod wið steapne rond

winia bealdor, ða se wyrm gebeah

snude tosomne he on searwum bad. (2566-68)

대담한 친우들의 군주는 무장을 , 굳센 결의로써

용이 신속히 몸을 틀고 있는 동안 높은 방패를 들고 서서

기다리고 있었노라.

위의 문장에서 남성대명사 [he]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분간이 어렵다. 대립적인 대상을 동일한 대명사로 표현함으로써 시인은 그들을 각각의 다른 실체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몸체 안에 존재하는 개의 존재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괴물과 영웅사이 행동과 모습에서의 유사성이외에, 용이 수호하고 있는 보물과 보물에 대한 베오울프의 태도는 앞서 언급한 현대 심리학자들, 특히 융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 한마디로, {베오울프}에서 용은 베오울프와 그의 족속의 공적(公敵) 동시에 베오울프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시대에 사람들은 귀중한 보석이나 보물 따위를 의식적 혹은 마술적인 목적으로 땅에 파묻었다. 이는 죽은 사람의 영혼의 영속성뿐만 아니라 후세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베오울프}에서 또한 나타나 있다. 마지막 생존자가 소유했던 보물의 매장과 이를 지키는 용의 모습을 통해서 이교도였던 앵글로색슨 사람들이 지향했던 보물에 대한 물신숭배사상을 엿볼 있다. 용과 베오울프와의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시인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로 독자들의 주의를 매장되어있는 보물로 계속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와 함께, 시인은 보물에 대한 베오울프의 관심에 초점을 맞추어 장면들을 전개하고 있다. 보물에 대하여 베오울프와 용이 보여주는 상반된 태도에 관하여 일부 비평가들은 지적해왔다. 그러나 작품 안에서 시인은 베오울프가 전투를 수행하게 동기를 실제로는 이타적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다소 경시하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Beowulf maðelode, béot-wordum spræc

níehstan síðe:  "Ic genéðde fela

guða on geogoðe; gýt ic wylle,

fród folces weard, fæhðe sécan,

mærðu fremman, gif mec se mán-sceaða

of eorð-sele út geséceð!"

Gegrétte ðá gumena gehwylcne,

hwate helm-berend hindeman síðe,

swæse gesíðas: "Nolde ic sweord beran,

wæpen tó wyrme, gif ic wyste hú

wið ðam áglæcean elles meahte

gylpe wiðgrípan, swá ic gió wið Grendle dyde;

ac ic ðær heaðu-fýres hátes wéne,

[o]reðes ondd attres; forðon ic mé on hafu

bord ond byrnan. Nelle ic beorges weard

oferfléon fótes trem, ac unc [furður] sceal

weorðan æt wealle, swá unc wyrd getéoð,

Metod manna gehwæs. Ic eom on móde from,

þæt ic wið þone guð-flogan gylp ofersitte.

Gebíde gé on beorge, byrnum werede,

secgas on searwum, hwæðer sél mæge

æfter wæl-ræse wunde gedýgan

uncer twéga. Nis þæt éower síð,

né gemet mannes, nefne mín ánes,

[þæ]t hé wið áglæcan eofoðo dæle

eorlscype efne. Ic mid elne sceall

gold gegangan, oððe guð nimeð,

feorh-bealu frécne, fréan éowerne!" (2510-37)

베오울프는 마지막으로 영웅적인 맹세를 토하였노라.

"나는 젊은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전투를 참여했노라.

만일 악행자가 땅속 굴에서 나와 나를 공격한다면

백성의 수호자인 고령의 나는 여전히 지금도 싸움에

대항해서 명예를 얻을 것이니라."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투구를 용감한 용사들,

자신의 다정한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노라.

"만일 내가 옛날에 그렌달과 했던 것처럼 나의 자랑스러운

맹세를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괴물과 맞붙어 싸울

수만 있다면 용에 대항하여 나는 무기로써 검을 가져가지

않겠노라. 그러나 나는 뜨거운 전투의 불기, 유독한 입김을

예측하여 방패와 흉부갑옷을 갖추고 가겠노라. 나는 무덤의

감시자로부터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모든 인간의 통치자인 운명의 결정에 따라 동굴 무덤 벽에서

두리 사이에 결판이 벌어질 것이니라.

나의 마음은 격투에 임할 열정에 있으니

호전적인 비행자(飛行者)와의 싸움에 대한 나의 자랑을 그만두겠노라.

전의, 쇠사슬 흉부갑옷으로 몸을 보호한 자네들은 무덤 위에서

기다려라. 그리하여 우리 치명적인 격투 후의 상처를

누가 견뎌내는지 살펴 보라.

괴물과 힘을 겨루어 영웅적 업적을 이루는 것은

그대들의 몫이 아니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리라.

나는 나의 기백으로 황금을 획득하겠노라. 그렇지 않으며

격투, 무서운 생명의 파괴자가 그대들의 군주를 빼앗아갈 것이니라."

특히, 자신의 신하들에게 베오울프가 하는 말에서 명예와 더불어 용이 지키고 있는 황금에 대한 그의 욕망을 드러나 있다. 그렌달 족속과의 전투에서 보여준 그의 동기와는 달리, 이는 용과의 싸움에 임하는 베오울프의 목적이 다소 애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베오울프는 자신을 '국가의 수호자' (folces weard)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에 임하고 있다고는 말하진 않고 있다. 단순히 황금을 쟁취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2532-7). 자신의 백성에 대한 베오울프의 관심은 단순히 용과의 전투 후에 그가 하는 얘기를 통해 추론되어질 뿐이다. 오히려 그가 죽기 전에 남기는 마지막 말은 다름 아닌 보물을 쟁취한 것에 대한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Ic ðára frætwa Fréan ealles ðanc,

Wuldur-cyninge, wordum secge,

écum Dryhtne, þe ic hér on starie,

þæs ðe ic móste mínum léodum

ær swylt-dæge swylc gestrýnan. (2794-98)

죽기 전에 제가 지금 여기에서 보고 있는 이러한 보물들을

저희 백성을 위하여 얻을 있도록 해주신 대해

영광의 하느님, 만물의 주님이신 영원하신 하느님께

감사의 말을 올리나이다.

뿐만 아니라, 조금이나마 베오울프가 보인 자신의 백성들의 안녕에 대한 그의 관심마저도 용과의 싸움 전과 후에 그의 충신인 위그나프가 하는 말에 의해서 더욱 희미해진다:

................................ þéah ðe hláford ús

þis ellen-weorc ána áðhte

tó gefremmanne, folces hyrde,

forðám hé manna mæst mærða gefremede

dæda dollícra. (2642b-46a)

그분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

용감한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의 군주,

백성의 수호자이신 그분께서는 홀로 용맹스러운 일을

성취하고자 작정하셨소.

Oft sceall eorl monig ánes willan

wræc ádréog[an], swá ús geworden is,

Ne meahton wé gelæran léofne þéoden,

ríces hyrde ræd ænigne,

þæt hé ne grétte gold-weard þone,

léte hyne licgean þær hé longe wæs,

wícum wunian oð woruldende;

héold on héahgesceap. (3077-84a)

우리에게 일어난 것같이, 많은 사람들은 때때로 사람의 뜻으로

인해 고통을 겪어야 하오. 우리들의 경애하는 군주,

왕국의 수호자에게 황금의 감시자를 대항하지 말고

용으로 하여금 그가 오랫동안 거하던 곳에서 그대로 머물게 하여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의 처소에 살도록 내버려두라는 충고로

그를 설득할 없었소.

위에 인용된 위그나프의 말은 그의 주군인 베오울프를 평가절하 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부분은 베오울프가 용과 싸울 준비를 하는 동안 그가 보여준 백성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용과 싸우게된 그의 동기에 대하여 의심마저 품게 한다. 특히, 위그나프의 말에는 전투에 임하는 베오울프의 이기적인 모습이 무엇보다 짙게 베어있다. 심지어 위그나프의 후반부의 말에는 베오울프의 행동이 차후에 그의 백성과 족속에 초래할 모르는 불행이 예측되어 있다.

골드스미스(Margaret Goldsmith) 따르면, 도덕적이며 우화적인 해석의 측면에서 , 용이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나타나는 이유는 대상과 집단이 가지고 있는 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30). 마가렛의 이러한 주장은 용이 베오울프가 살고 있는 장소를 찾아, 파괴시키는 장면을 자세히 살펴 보게되면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작품에서 용이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파괴시키며 날뛰고 있는 모습을 처음 접하게 되는 베오울프를 시인은 매우 신중하게 묘사하고 있다. 장면에서 시인은 이야기의 초점을 용이 베오울프가 지배하는 백성들의 재산을 파괴시키는데 맞추기보다는 오히려 용이 베오울프 자신의 거주지를 파괴시키는데 두고있다:

þa waes Biowulfe bróga gecýðed

snúde tó soðe, þæt his sylfes h[á]m,

bolda sélest, bryne-wylmum mealt,

gif-stól Géata. þæt ðám gódan wæs

hréow on hreðre, hyge-sorge mæst;

wénde se wísa þæt hé Wealdende

ofer ealde riht, écean Dryhtne,

bitre gebulge; bréost innan wéoll

þéostrum geþoncum, swá him geþýwe ne wæs. (2324-32)

그러자 자신의 거처, 예이츠국의 왕좌가 있는 최상의 건물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녹고 있다는 무서운 일이 베오울프 왕에게

사실대로 신속히 알려졌노라. 그것은 영웅에게 있어 심적 고통이었으며

가장 참기 어려운 마음의 슬픔이었노라.

현명한 자신은 자신이 법도를 어겨서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느님을 심히 노엽게 했다고 생각하였노라.

평상시와 달리 그의 가슴속에서는 어두운 생각들이 끓어올랐노라.

에반스가 지적하고 있듯이, 용의 난폭한 파괴행위의 대상으로 시인이 무엇보다도 베오울프의 거주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200). 아울러, 시인은 "sylfes" [here]라는 강조어를 사용하면서까지 용의 공격과 대상인 베오울프의 거주지와의 연계성을 지적하고 있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용의 무자비한 파괴에 대하여 베오울프가 분노를 품게 되었기보다는 실은 자신의 거주지의 파괴에 인하여 베오울프가 용에 대하여 분노를 품게 되었다는 표현이 옳다고 에반스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위의 인용된 문장이 보여주는 용의 공격에 대한 베오울프의 개인적인 감정, 태도 그리고 반응은 이를 입증하는 대목이라고 에반스는 주장한다 (200-201). 개인적으로 베오울프 자신도 용의 공격을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분노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þæt hé Wealdende//ofer ealde riht//écean Dryhtne//bitre gebulge.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여 , 베오울프와 용과의 대면에서 전투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특별히 가지 점을 신중하고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용이 수호하고 있는 보물이나, 보물에 대한 베오울프의 지나칠 정도의 관심 그리고 하느님의 분노에 대한 베오울프 스스로의 인식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사실들은 베오울프가 용과 싸우게된 동기가 자신밖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베오울프 자신 안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악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용이 수호하고 있는 보물이 인간이 범하기 쉬운 정신적인 죄들, 예를 들면, 자만, 욕정, 그리고 탐욕 등을 상징하고 한다고 , 베오울프 역시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이상적인 왕이라고 없다. 오히려 베오울프는 앞서 보았듯이 자신의 마음이 세속적인 관심과 동기로 타락한 비극적인 왕이다. 베오울프와 용과의 대립이 진행되는 동안 시인이 지속적으로 용이 수호하고 있는 보물에 초점을 두고 있는 이유는, 골드스미스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를 통하여 시인은 독자들에게 "물질적 세속세계의 무상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94). 용이 수호하고 있었던 보물에 대해 시인이 독자들에게 하는 마지막 말은 종교적인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Hí on beorg dydon bég ond siglu,

eall swylce hyrsta swylce on horde ær

níðhédige men genumen hæfdon;

forléton eorla gestéron eorðan healdan,

gold on gréote, þær hit nú gén lifað

eldum swá unnyt swá hi[tær] or wæs (3163-68)

그들은 이전에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보고에서

가져왔던 금고리, 보석들을 비롯한 모든 장식품들을

무덤 속에 넣었노라. 그들은 땅으로 하여금

영웅들의 보물을 간직하도록 했노라.

땅속에 있는 황금은 예전과 같이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아무 쓸모 없이 곳에 그대로 있노라.

한마디로, 시인은 보물의 가치를 "인간에게는 유용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보물에 대한 같은 시인의 부정적인 태도는 보물을 얻기 위해 베오울프가 출전하기 전부터 나타난다. 시인은 진정 그것을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관하여 스스로 의심을 품게된다. 결국 베오울프가 얻게되는 보물이 베오울프의 백성들의 생존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시인을 말한다. 오히려, 이는 멸종된 민족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재현시키는 비극적인 요소로 작용할 뿐인 것이다. 그리스도적인 가치관에서 베오울프의 행동을 고려해볼 , 서양의 전통적인 가치관 안에서 용이 상징하는 자만과 탐욕의 모습이 바로 베오울프의 모습이며, 이러한 죄악을 베오울프는 자신도 모르게 범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용을 하느님의 적으로 혹은 인간을 죄악으로 이끄는 악의 힘으로 , 하느님의 적으로서 베오울프를 자만과 탐욕으로 이끄는 상대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베오울프 자신의 내면에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베오울프 자신이 통제할 없는 감추어진 그의 일부인 셈이다.

베오울프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러한 죄에 대한 벌로써 하느님은 용이라는 대상을 그에게 제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관점을 입증해줄 만한 가지 요소들이 작품 안에서 발견된다. 용과의 전투과정을 통하여, 베오울프가 굴복하게 되는 주된 정신적 죄악이 자만(superbia) 탐욕(cupiditas)이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베오울프가 그렌달 족속을 대할 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용과의 대면에서 베오울프는 자만에 가득 행동을 하게된다. 골드스미스의 지적대로, 인간의 자만은 자신만으로 모든 일이 충분하다고 믿게 만드는 욕망으로, 이는 우리를 지탱시켜주는 하느님의 손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베오울프는 하느님과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음을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베오울프가 용과 싸우기 전과 후에 하느님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렌달 족속과의 싸움 (665-68/685-87) (928-46a) 베오울프는 하느님에 대한 다양한 언급을 빼놓지 않고 하게 된다. 아울러 시인 또한 전반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신의 은총에서 비롯된 것임을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써, 베오울프가 그렌달을 물리친 , 이에 대하여 흐르쓰가르(Hrothgar) 왕이 하느님(Eald-metod)에게 드리는 감사의 말을 하게 되는데, 이때에도 베오울프의 승리는 하느님이 베오울프를 받아들인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반부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용과의 전투에서 베오울프는 하느님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시인 또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베오울프를 하느님의 은총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시인의 초점은 베오울프의 죽음과 이로 인하여 차후 그의 백성들이 처하게 불행에 맞추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베오울프가 자신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죄로 인하여 이상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þonne wæs þæt yrfe éacencræftig,

iumonna gold galdre bewunden,

þæt ðám hringsele hrínan ne móste

gumena ænig nefne God sylfa,

sigora Soðcyning sealde þám ðe hé wolde

--hé is manna gehyld-- hord openian,

efne swá hwylcum manna swá him gemet ðúhte. (3051-57)

막대한 유산인 사람들의 황금은 주문에 걸려 있어

인간들의 보호자시며 영광의 참된 왕이신 하느님 자신께서

그가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에게 보고를 있도록

허락해주시지 않으신다면 어느 누구도 금고리 홀에

접근할 없었노라.

위에서 시인은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에게 용이 수호하고 있던 보물함을 있는 힘을 허락한다고 말하고 있다. 시인의 말과 위의 언급한 내용을 연결하여 생각해 , 베오울프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주님의 은총을 이상 유지할 없음을 쉽게 있다. 한마디로, 베오울프와 용의 전투는 단순히 베오울프와 자신의 족속을 파괴시키는 괴물과의 단순한 대결의 의미를 넘어서 베오울프와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과의 대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베오울프가 용을 보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놀라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용이라는 대상을 통하여 베오울프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지 못했던 그의 다른 모습을 보게되는 셈이다 (2564-65). 번쩍이는 용의 표면에서 베오울프가 것은 사납고 탐욕스런 자신의 감추어진 모습인 것이다. 작품에서 용의 표면이 '부드러우며'(nacod-- 2273), '번쩍이는 공포로 무장된'(gryrefahne--2576)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용의 궁극적인 기능이 거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피델 파자르도-아코스타(Fidel Fajardo- Acosta) 말한다. 아울러, 부드럽고 번쩍이는 용의 외피는 베오울프의 정신적인 상태를 비추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115). 결국, 베오울프가 용의 동굴을 찾는 것은 자신의 죄로 인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베오울프 자신의 무덤을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

잠재의식 안에 내재되어 있는 공통의 경험에 의해 다양한 많은 인간들을 함께 묶어주는 융의 '집단무의식'은 베오울프와 용의 관계를 이해에 상당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 서양을 막론하여 인간의 내면세계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집단무의식'은 흔히 용이라는 상징적 동물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용을 퇴치하는 행동[동양문화권에 속하는 민족에 있어 뱀을 죽이는 행위] 개인적으로 억압된 과거의 기억, 생각, 그리고 감정 따위를 극복하려는 인간본능의 노력인 것이다. 융의 용어를 빌러 표현하면, 용을 죽인다는 것은 인간 안에 있는 자신의 "하나의 열등한 " (the lower half of man) 제거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분출이라고 있다. 서양문화권에서 인간의 잠재의식 안에는 어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용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 서양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파충류 형태의 동물에 대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공포는 문화적으로 전해졌다기보다는 유전학적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아야 같다. 융의 심리분석학적 측면에서 {베오울프} 주된 에피소드인 용의 퇴치 장면을 살펴보았듯이, 서양에서 용은 인간의 혐오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이를 제거한다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적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잠재된 의식과 욕망의 분출은 동양에서도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대구대)




《베오울프》 (문학과 지성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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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Dragon as a Psychological Archetype

in Beowulf

Dongchoon Lee

Modern psychologists believe that our own unconscious can appear to us as an animal or a dragon. In their view, a hero's battle can mean the internal struggle with his own feelings. Accordingly, the primary object of one's quest is to conquer oneself, more specifically, to conquer something scary and uncontrollable such as the hidden fear, sin, and so on, which is deeply embedded in one's mind. Especially, Jung sees the dragon and the dragon-slayer as a necessary unity representing an individual's internal opposites. To put this another way, the human mind consists of the contrasting factors of good represented by the slayer and of evil by the dragon. According to Jung, the dragon is still within us, representing the "negative mother-image," and the dragon's guardianship of treasure symbolizes the mother's apparent possession of the son's libido.

Extending the application of Jung's theory of psychology further to the quest motive of the hero against the dragon in Beowulf, we can realize that Jung's idea converges with those of other psychologists, Sigmund Freud and Jacque Lacan. Interpreting the dragon in terms of the Freudian Oedipus complex, we can say that the dragon represents a certain kind of oppressive factor in the hero's psychological growth. The battle between hero and dragon shows the archetypal theme of the ego's triumph over oppressive trends. Borrowing Lacanian terms of psychoanalysis, the fear of motherhood or the dominance of motherhood in the "mirror stage" represented by Grendel's mother and the dragon is to be eliminated by the slayer symbolized as the father-figure, and then the slayer as well as his people become secure, in Lacanian words, attaining their manhood. In this paper, the attention is given to the nature of the dragon as the psychological archetype which is commonly described as the hero's other self in Beowulf.

In addition to the factors to support the argument that dragon is Beowulf's other self in the work, the close reading of the work enables us to argue that the dragon is a punishment sent by God for a sin committed by Beowulf. Moreover, considering Beowulf's death and the further misery of his people entailed after it in conjunction with the poet's statement that only God can grant to man the power to open the dragon's hoard, we can easily notice that he does not retain his Lord's favor any more by his spiritual sins such as arrogance, concupiscence and greed in a Christian sense. In a word, the contest between Beowulf and the dragon figures the hero's internal battle with his own devil inside. Therefore, it is natural that he should be shocked by the sight of the dragon which mirrors the image of his other side. What he hero beholds in the glittering serpent is his own image of bestiality and cupidity. Consequently, Beowulf's coming to the dragon's lair means his visit to his own grave.





국문요약

심리적 원형(原型)으로서 『베오울프』의 ()


인간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현실에서 우리에게 종종 사나운 동물이나 용 등을 통해서 비추어질 수 있다고 현대 심리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볼 때, 고대 및 중세시대의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용과의 싸움은 피상적으로는 인간에게 해를 주는 괴물을 퇴치하는 과정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영웅의 감정 혹은 영웅의 내적인 무의식의 세계와의 투쟁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영웅이 추구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자신을 정복하는 것이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내면 깊이 존재하는 자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두려운 그 어떤 것들인 셈이다. 예를 들어, 감추어진 자신만의 공포, 결점, 그리고 죄 따위를 작품 안에서 영웅은 용의 퇴치를 통하여 정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융은 용과 용을 퇴치시키는 영웅을 불가분의 단일한 몸체로 보고 있으며, 이 둘은 또한 각 개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상반된 한 쌍의 존재를 의미한다고 융은 보고 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의 마음 안에는 용을 퇴치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선의 요소들과 용으로 상징되는 악의 요소들이 상호대립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융에 따르면, 용은 인간내면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어머니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있으며, 또한 보물을 지키는 용의 모습은 아들의 리비도(libido)를 소유하고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융의 이러한 심리학적 이론을『베오울프』에 등장하는 주인공, 베오울프가 용을 퇴치하는 과정에 확대하여 적용시켜볼 때, 융의 생각이 다른 심리학자들, 예를 들어, 프로이드나 라캉의 이론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로이드의 이디프스 콤플렉스(Freudian Oedipus Complex)이론의 측면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용을 해석하게 되면, 용은 심리적 혹은 정신적으로 영웅의 성장을 저해하는 일종의 억압적인 요소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용과 영웅과의 싸움은 영웅의 내면에 잠재된 억압적인 요소들을 제어하는 자아(ego)의 승리를 보여주는 원형적 주제인 셈이다. 이를 또한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이론의 입장에서 보게 되면, 그렌달의 어미와 용으로 상징되는 '경영기'(鏡影期, mirror stage) 단계에서 모성(motherhood)의 지배 혹은 모성에 대한 공포를 아버지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영웅이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후, 영웅과 그의 백성들은 안정을 되찾게 되는 데, 이러한 단계 또한 라캉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경영기'를 거친 아이가 완전한 남성의 단계에 이름을 말해준다. 이처럼 현대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용의 의미, 다시 말해서, 영웅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기자신이라는 심리학적인 원형으로서 용의 모습이『베오울프』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이러한 심리분석학적 측면에서『베오울프』의 주된 에피소드인 용와 베오울프의 전투장면들을 분석하여 볼 때, 서양에서 용은 인간의 혐오대상인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이를 제거한다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징적인 적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