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축일 순환극(Corpus Christi Cycle)과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의 정치학





최 예 정






I. 성체축일 순환극의 종교성과 ‘몸’의 문제


영국에서 성체축일(Feast of Corpus Christi)에 공연되었던 다양한 형태의 연극들 중 순환극(cycle)의 형식을 취했던 극들은 중세 드라마 연구에서 가장 많은 비평적 관심을 받아 왔다. 요크(York)나 체스터(Chester)와 같은 곳에서 성체 축일에 공연했던 대규모의 순환극 형식의 연극은 그 내용의 포괄성과 형식의 특이성 때문에 특히 주목을 받았다. 동시에 이러한 형식의 극이 마치 중세 드라마의 전범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즉 성체축일극은 곧 성체축일 순환극이라고 생각되었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불완전한 형태로 여겨졌던 것이다.1)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이러한 통념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즉 성체축일에 행렬(processions) 등의 행사와 함께 영국뿐 아니라 대륙의 많은 지역에서 드라마 공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순환극 형식의 공연이 이루어진 곳은 일부일 뿐이며, 각 지역의 특성과 관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공연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루빈(Miri Rubin)은 성체축일의 역사에 대한 꼼꼼한 연구를 통해 성체축일에 많은 지역에서 연극 상연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으나 순환극 형식의 공연이 오히려 예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각 지역마다 여건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축일 행사가 펼쳐졌음을 보여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연극 공연은 다양한 형태의 축일 행사 중 하나에 불과하며 연극이 상연된다고 하더라도 그 공연 주체와 내용, 방식에 있어서 다양성이 존재한다. 즉 성체축일극이 곧 성체축일 순환극은 아니며 성체축일에 공연되었던 극들은 전통적으로 생각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훨씬 덜 깔끔하게 분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새로운 의문들을 제기한다. 즉, 기존의 통념과는 달리 성체축일극이 곧 성체축일 순환극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면 성체축일이라는 중세교회의 행사와 순환극이라는 공연형식은 어떤 필연적인 내적 연관성도 갖고 있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왜 성체축일이 제정되고 영국에서 시행되게 되면서 순환극이라는 형식이 새롭게 나타나게 되었는가? 성체축일 순환극이라는 새로운 극 형식은 어떤 종교적 의미를 갖고 있는가? 왜 어떤 지역에서는 순환극 형식이 나타나고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는가? 지역에 따른 연극형식의 차이는 연극의 종교적 의미가 지역적 특징에 따라 타협의 과정을 거쳤음을 뜻하는가? 이러한 의문들은 궁극적으로 종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로 이어지게 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는 중세극, 특히 성체축일극의 종교성에 대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몇가지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중세극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중세극이 원래 성당 내부에서 상연되던 성극(聖劇)이었는데 이러한 ‘거룩한’ 종교극이 세속화되어 저자거리로 나오게 되면서 속인들의 걸판진 목소리가 담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중세극 연구에 있어서 의심할 바 없이 큰 족적을 남긴 챔버스(E. K. Chambers)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챔버스는 성당 내부에서 성직자들이 제식의 일부로 성경의 몇 장면을 극화했던 것들이 점차 복잡해지고 대사와 장면이 많아지면서 제식적 텍스트가 세속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공연이 성당을 벗어나 거리와 장터로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는 성체축일극과 같은 자국어(vernacular)로 쓰여진 종교극은 ‘순수한’ 제식적인 종교극의 오염과 세속화의 결과라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는 종교를 ‘내세적인 영성’ 혹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맥락을 초월하는’ 초월성으로만 해석하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2) 그러나 과연 종교가 현실 속에서 그렇게 초월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종교가 사회 속에, 구체적 역사 속에 발붙이고 서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다시금 중세 종교극에 대한 신화적 설명으로 되돌아가곤 하는 것은 성체축일극과 같은 종교/세속극을 설명하는 적절한 이론적 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예컨대 중세극 연구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영(Karl Young)과 같은 학자는 기본적으로 문화적 다윈주의의 태도로 중세극을 설명한다. 그는 중세 극 형식의 변천을 문학 내부의 동력만으로 설명하려 할 뿐, 종교와 사회의 교호적 접점의 가능성에는 눈을 감았다. 챔버스나 영의 견해를 효과적으로 반박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하디슨(O. B. Hardison)은 진화론적 접근을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선대 학자들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인류학 이론과 문학 이론을 접목하여 기독교 제식과 기독교 드라마 사이의 상호관계에 관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는 종교적 제식은 초기 중세의 극이었다며 이러한 제식극에 내재하던 재현에 대한 충동이 성체축일이라는 외부적 동기와 만나면서 성체축일극이라는 양식을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성체축일이라는 제도가 외삽되었음을 인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중세 종교극이 다른 종족 사회의 제식극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종교극을 종교극이라는 틀 속에서만 바라본다는 같은 한계를 갖고 있다. 즉 종교극과 그것이 위치하는 사회와 맺는 관례를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기본적으로 종교와 사회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성체축일 순환극을 고찰하려고 한다. 즉 성체축일에 성체축일 순환극 형식의 연극만이 공연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왜 성체축일에 갑자기 시민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형식의 종교극인 순환극이 나타나게 되었는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성체축일이라는 종교적 행사의 종교적 의미, 시민들의 참여라는 새로운 형식에 깔려 있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이 두 의미의 결합이 갖는 의미를 검토하려한다. 이러한 의미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먼저 왜 갑자기 성체축일이라는 축일이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이 중세 기독교에서, 공동체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고찰과도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몸은 항상 의미의 중심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의미의 중심에 있는데 왜 갑자기 그리스도의 몸이 새삼스럽게 주목의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몸의 의미는 어떤 식으로 성체축일 순환극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몸은 순환극의 공연자와 관중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을까? 혹은 이들은 몸의 의미를 어떻게 새롭게 해석해냈을까? 하는 것들이 본 논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들이다. 즉 본 논문에서는 성체축일극의 종교성이 사회 속에서 취득하거나 생성해내는 의미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상징을 통해 검토해 볼 것이다.



II. 성체축일의 기원과 몸의 상징


성체축일은 1246년 우르반 4세에 의해 제정되고 1317년 요한 22세의 명령에 의해 본격적으로 실행되게 된 ‘새로운’ 축일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시기에 그러한 새로운 축일이 필요하였는가 하는 것은 흥미로운 문제이다. 성체축일의 기원과 제정, 그리고 이 축일의 행사가 미사에서 행렬로, 그리고 각 지역의 드라마로 확대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중세 문화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갖는 의미의 중첩성과 다기성을 분명히 짚어볼 수 있게 된다.

전승에 의하면, Lie'ge 일대에서 활발한 종교 활동을 펼치던 베긴(beguine) 여자 성도들 중 줄리아나 (Juliana of Cornillon 1193-1258)의 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 성체축일 제정을 명했다고 한다 (Rubin 170). 중세시대의 꿈은 신의 뜻의 계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성체를 숭상하던 속인들은 이 꿈을 근거로 성체 축일 제정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상 이러한 이야기는 당대 이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속인들과 여성들의 종교적 욕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속인들 특히 여성들은 고통당하는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접촉하기를 원했고 성체라는 것은 이들의 욕구를 가장 충실히 만족시켜 주었다. ‘먹는다’는 행위와 언어는 기독교 신비주의 문헌에서 이미 자주 발견되던 것으로서 신과 인간의 합일과 일체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신이 인간의 몸으로 현신하고 그 몸은 성체로 다시 나타나며 그 성체는 다시 각 개인의 몸으로 들어가 인간의 몸이 된다는 사실은 신의 고통이 곧 인간의 신성 회복이 되는 기독교 교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살아있는 드라마였다.

그러나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세의 종교 권력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속인들의 욕구가 ‘성체축일’이라는, 교회력에 명시되고 그 미사 형식과 집례 문구가 교황청에 의해 확정된 구체적인 행사로 제정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13세기 초반부터 성체에 헌신하며 축일 제정을 원했던 이들의 요구가 제도로 정착되기까지는 70여년 정도의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요구대로 성체축일이 교회의 정식 행사로 확정될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대면하는 새로운 사회 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교회는 점증하는 속인들의 신앙심과 종교활동 속에 이들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속인들이 신앙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함에 따라 기독교 전체의 상징체계의 구심점으로서 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성례를 집전하는 성직자들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Rubin 172).

사실상 성체축일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의 몸을 기리는 날로서 이것은 중세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었으며 이미 여러 다른 행사와 일상적인 미사, 기도회 등을 통해 늘 강조되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성인의 업적이나 그리스도의 일생의 각 사건을 기리는 여타의 축일과는 달리 성체축일이라는 것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흐르기 쉬운 성격을 갖고 있어서 성체를 기리는 새로운 구체적 축일을 만든다는 것은 부적합한 측면을 갖고 있었다. 사실상 성체축일이 교황에 의해 정식 축일로 지정되기 전 개별 성직자들의 취향에 따라 성체축일 행사를 치르던 리에지(Lie'ge)나 아비뇽(Avignon)과 같은 지역에서 강론되었던 성체에 관한 설교의 내용들을 보면 부활절이나 세족목요일에 행하던 설교문과 일치하는 것들이 많다는 점도 바로 이 축일의 성격의 모호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모호성이 역으로 성체축일의 교화적 성격과 행사적 성격을 강조하는 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부분이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기독교 교리의 핵심으로서 특히 성육신한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난을 위해 몸의 수난을 받았다는 것은 중세 기독교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었다. 성직자들과 은둔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수난을 몸소 체험하고자 했고 채찍질 고행자(Flagellants)와 같은 중세 특유의 현상도 이러한 교리의 강조와 맞물려 있었다. 따라서 성체축일이 일단 시행되게 되자 성직자들은 이 축일을 ‘몸’을 중심으로 해서 기독교 교리를 포괄적으로 보여주는 계기로 삼았다. 성체축일 집례문의 문구 작성에 있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이 집례문에서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 그리스도의 역사적 행위의 현재성, 기독교의 역사와 성도들의 현재의 삶과의 연결성 등을 잘 보여준다. 철학과 신앙, 교리와 감정이 잘 융합된 이 집례문은 평소의 아퀴나스 문체보다는 좀 더 감정적인 문구로 사람들의 감수성에 호소하면서 왜 새로운 성일을 추가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 있었다 (Rubin 189-91). 새로운 축일 제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몸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교리의 재구성은 결과적으로 이 새로운 축일이 엄청나게 포괄적인 의미를 담는 축일로서 그 성격을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하여 원래의 기독교 교리에서 중심적 의미를 담고 있었던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는 성체축일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기독교 교리와 신구약의 역사는 보다 통일성있게 재구성되어 성체축일을 정당화하는 설교와 집례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시되었다. 교황청과 성직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이 성체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성직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축일을 보편적인 축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구체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했던 초기 신자들의 노력은 역사 속의 그리스도의 몸을 현재의 그리스도의 몸으로 바꾸는 성직자의 권위의 강조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은 마치 성직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의도와 실제 집행은 항상 별개의 문제이다. 성체축일이 공동체의 행사가 되면서 그리스도의 몸은 다른 의미로 다시 변화를 겪게 된다.  



III. 그리스도의 몸과 공동체


성직자가 빵과 포도주에 축사하고 성찬 예식을 행하는 성례전이 미사 중의 한 순서로 정해진 것은 1215년 제 4차 래터런 공회에서였다. 이전의 성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몸의 가시성을 생산하고 산포시키는 역할로 의도되었다.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성당에 따라, 성직자에 따라 치러지던 성찬예식이 래터렌 공회를 통해 공식적인 미사 집전의 일부분이 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는 이미 한 차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코비알카(Michal Kobialka)가 지적하듯이 래터런 공회 이전에는 성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였다. 각 개인은 자신의 믿음과 양심에 따라 성찬을 통해 문자 그대로 신자들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고 믿을 수도 있었고, 성찬을 통하여 신자들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 혹은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의지가 결합된다고 믿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성찬은 모든 신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 혹은 신자들의 결합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3) 그러나 교황이 미사에서 성찬 예식을 집전할 것을 공포하고 그 방식과 규범을 정하자 이제 신도들은 정해진 성찬 의식을 따라야만 했다. 이것은 곧 이 성찬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기독교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도덕적으로 정결한 사람과 타락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을 뜻했다. 즉 성찬 예식은 배타와 제외의 과정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획득하고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 교회 공동체를 탄생시키고 가시화했다. 이제 개인은 성찬을 나누는 교회가 문자 그대로 피와 살을 나누는 한 몸, 공동체이며 자신은 그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데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었다 (Kobialka 205-06). 성찬의 제도화는 곧 성찬과 성체와 관련된 모든 의식들에 규범이 부여된다는 것을 뜻했으며 성찬은 관치적 성격(governmentality)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벡위쓰(Sarah Beckwith)가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동질적이고 자족적이면서 전체론적 문화’를 지닌 지역적 혹은 사회적 단위를 일컫는 ‘공동체’라는 개념이야말로 신화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Beckwith 1998, 257). 즉 현대의 어느 지역이나 단체를 공동체라는 말로 표현하려할 때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처럼, 중세의 어느 도시나 교회를 일컬을 때도 이 개념은 사실상 적절치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공동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과는 달리 그 내부가 진실로 모든 면에서 동질적이고 단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4) 가령 성찬 예식이 교회의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성체를 매개로 하는 신자들간의 ‘한 몸됨,’ 연합성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그 ‘몸’을 차지하거나 독점하려는 인간들의 욕망 때문에 성체는 신자들의 통합보다는 분열을 더욱 조장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로마 교황청은 성찬 예식을 제도화함으로써 빵과 포도주를 예수의 살과 피로 성변화(transubstantiation)시킬 수 있는 성직자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성찬은 성직자들만이 집례할 수 있는 거룩한 직무였기에 성직자들의 지위를 공고히 만드는 예식이기도 하였다. 성직자들은 성찬 예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성찬이 지닌 신비한 힘에 대해 논하는 많은 담론과 예화를 생산, 유포하였다. 성체는 병든 자를 치료하고 굶주린 자를 살리며 오염된 것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가르쳐졌다. 성체축일 행렬은 성체가 지닌 이러한 힘을 가시적으로 과시하는 행사였다. 성체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속인들의 요구와 속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하는 성직자들의 요구가 맞물리면서 성체축일 행렬은 시의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성직자들은 성체를 성체 현시대(monstrance) 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들고 마을 혹은 도시의 중요한 구역 전체를 돌았다. 그러면 도시의 경우 각 길드들은 성직자의 뒤에 열을 지어 따라갔다. 문자 그대로 성직자는 속인들의 인도자였고 속인들은 성직자의 지도를 받는 존재임이 행렬이라는 행사를 통해 드러났다.

성체가 갖는 구원의 능력과 신비한 힘이 강조되면서 성체를 관리하고 의식을 집적하는 성직자들의 지위가 강화되는 효과는 있었겠지만 예기치 못했던 현상도 생겨났다. 신비한 힘을 지닌 이 성체에 가까이 가기 위해 신도들이 노력하게 되면서 성체를 둘러싸고 경쟁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길드 조직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따라서 성체축일 행렬도 길드별로 순서가 정해지는 도시 지역일 경우 이 문제가 심각했다. 성체축일 행렬 때 시민들이 행진하게 되면 누가 그 성체에 가까이 서게 되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도시 구성원 전체가 행렬의 참여자 혹은 관람자로 참여하는 성체축일 행렬에서 성체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해있는가 하는 것은 각 길드와 개인의 현재의 권력과 지위에 대한 가시적 징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몸은 개인의 몸 안으로 들어가 결합되어 그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권력의 징표로서 각 개인의 몸을 비추어주는 후광과 같은 존재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된다. 성체축일 행렬은 개인과 길드의 위신에 가시성을 부여하는 행사가 되었다. 

성체축일 행사에 왜 행렬 이외에도 수많은 연극 공연이 추가되었는가 하는 문제 역시 ‘공동체’ 내부에서의 힘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클라퍼(Lawrence Clopper)는 자국어 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정치적, 종교적 긴장이 가득했던 시기라고 설명한다. 리차드 2세의 폐위와 리차드 3세 때의 반란 등 정치적 충성심의 문제가 매우 중요했던 시기일 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속인들의 문자 해독력의 증대는 성직자 계층에게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Clopper 1999, 746). 성직자들은 비록 교리적 의미의 마지막 중재자는 성직자라고 아직은 주장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예전처럼 단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성직자의 특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성직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제식의 집전을 강조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속인들이 자신의 영성을 개발하는데 더 많은 재량권을 주는 것이었다. 많은 교훈적 책자들이 번역되고 신구약 양쪽에 걸쳐 성경 이야기들이 번역되었다. 더 이상 벌게이트(Vulgate)의 번역을 위해 성직자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 속인들은 자국어로 된 종교서적을 더욱 읽고 싶어했고, 더 많이 읽고 알게되자 종교적 행위에 더 많이, 더 개인적으로, 더 완전히 참가하기를 원했다.5) 클라퍼에 의하면 자국어로 쓰여진 성경을 극화하도록 성직자들이 허용했던 것은 성직자들이 속인들의 종교활동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Clopper 1999, 747).6)

성체축일극을 공연했던 도시들 중에서도 특히 순환극 형식으로 성체축일극을 공연했던 도시들은 모두 시민 조직이 도시의 통치권을 갖고 있던 곳들이고, 14세기 말 성체축일 순환극이 제도화되기 이전에 이미 중요한 시민적 자유를 획득한 곳들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7) 즉 성체축일 순환극이 상연되었던 요크나 코벤트리(Coventry) 같은 영국 북부 도시들은 도시 행정권의 중심이 상공업 길드 조직에 있었던 곳들이고, 시민 통치권과 교회통치권이 경쟁관계에 있거나 상공업 길드보다는 종교적 길드가 더 우세했던 링컨(Lincoln)이나 노리치(Norwich)와 같은 지역에서는 성체축일에 연극 공연이 있기는 하더라도 순환극 형식으로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성체축일 순환극 상연이 도시의 자치권 문제와 어떤 방식으로든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시민에게 자치권이 있었던 도시에서는 시민 자신이 시민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으며 성직자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도시 구성원들의 종교 교육을 감당할 수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증명할 필요를 안고 있었다 (Clopper 1989, 703-36). 따라서 이러한 도시의 지도부는 단편적인 성경극보다는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를 훨씬 더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대규모의 공연 양식인 순환극의 공연을 시도했다. 즉 성체축일에 설교되던 강론의 내용을 모두 극화한 순환극의 공연을 통해 도시 지도부의 종교적, 행정적 역량을 과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성체축일 순환극의 공연소가 시의 자치 영토를 확인시키는 지역에 설치되었다는 점은 바로 도시 공동체의 확립과 성체축일 순환극 사이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몸은 이제 원래의 교리적 의미를 넘어서서 성직자와 속인들간의 힘의 경쟁의 장이 되었고, 성체축일 순환극은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의 전유의 현장이었다.

속인들의 성경 해독 능력에 대한 승인과 찬미는 성체축일 순환극의 주된 주제 중 하나이다. 가령 스티븐즈가 요크 순환극에서 물리적으로나 극적으로 중심에 있다고 평했던 「예루살렘 입성」은 그 좋은 예이다. 이 극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소식을 듣고 그를 맞을 준비를 하는 시민들의 대사를 통해,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언하는 성경 구절들을 정확히 해석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150-54). 즉 속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성직자 못지 않은 정확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 지식은 성직자나 속인 모두에게 열려진, 명료한 것으로 제시된다 (Nisse' 439).8) 또한 극에서는 예수에게 치료를 받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시의 지도층의 이익에 충실히 봉사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문지기를 비롯하여 시의 지도부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구원자로서의 예수의 성격을 인식하고 예루살렘 입성을 적극 환영하는 모습으로 제시된다. 이것은 사실 성경에서 바리새인을 비롯한 예루살렘 성의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시민들의 호산나 외침 속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입성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며, 혹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는 설명과는 배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크 순환극에서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시민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의미를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징표로 해석된다. 극에서 시민들은 예수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을 정확히 지적하고 그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 극이 의도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속인이 신구약을 꿰뚫는 성경 해석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확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성체 축일, 즉 그리스도의 몸의 축일에서, 성찬 예식이 처음 제도화되었을 때와 같은 교회 공동체의 의식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려워졌다. 머빈 제임스(Mervyn James)가 논했던 것과 같은, 시민 모두가 참여하여 하나된 전체로서의 공동체의 모습을 구현하고 구축하는 성체 축일의 공동체적 의미는 이상으로서만 남게 되었다. 도시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그리스도의 몸, 성직자와 속인을 포함하는 모든 신자들의 공동체의 표상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 대신, 그리스도의 몸은 이제 성직자 계급과 속인, 또 속인들 내부에서 권력자와 비권력자를 구분짓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는 상징으로 변화하게 된다.



IV. 몸의 의미의 전유와 재전유


성체축일 순환극이 천지 창조부터 마지막 심판까지를 포괄하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갖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 중 성체축일에 설교되던 강론 자체가 매우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즉 이날의 강론이 기독교 교리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갖는 상징적 중심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구약 성경의 역사적 사건들과 신약의 사건, 그리스도의 몸의 수난․부활과 성찬식을 연결하는 매우 통시적이고 우주론적인 내용을 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일치성, 예형(type)과 대형(antitype)의 예시 등이 강론의 주된 강조점이었다. 그런데 실제 연극의 공연에서는 이러한 점이 무시되기 쉬웠다. 그보다는 오히려 연극의 무대인 도시의 각 장소들과 공연되고 있는 연극의 내용 사이의 상관관계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요크 순환극 중 ‘가죽일하는 자들’(Skinners)이 공연했던 「예루살렘 입성」이다. 이 극은 요크 순환극의 공연 주체들의 주된 관심사가 시민적 축제이고 자기 찬미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Stevens 50). 요크 시에 왕이 행차할 때 방문하는 여정을 따라, 「천지창조」부터 시작하는 순환극의 공연무대들이 순서대로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입성」이 공연될 무렵이면 관객들은 시의 중요 지역을 이미 상당 부분 돌고 난 후였다. 나귀를 타고 예수 역을 맡은 배우가 등장하면 공연 무대 앞쪽 거리 이곳 저곳에는 가죽일 하는 자들 중 일부와 시민들이 합세하여 예수의 입성을 환영하는 것이 공연의 일부 내용을 이루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예수는 거리에 있는 병든 자와 눈먼 자를 치료하며 점차 전진하여 무대 수레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을 만나 인사를 받는 것으로 극은 끝나게 되어 있다. 극본에서는 단지 시민이라고만 언급되어 있지만, 시민 역을 맡은 길드 구성원은 사실상 왕이 요크시에 행차했을 때 맞아들이던 시장이나 다른 시민 대표들(alderman)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예수를 영접하는 이들 시민 대표들이 반복적으로 “Hayll"을 외치며 시작하는 대사들은 요크 시에서 대표들이 왕을 영접할 때의 어투와 매우 흡사하다. 따라서 관중들은 이 장면에서 의심할 바 없이 왕의 입성 장면을 연상하게 되었을 것이다. 관객 시민들은 무대 위의 시민의 연기를 보며 그들이 현실 속에서 보았던 왕의 입성 장면과 얼마나 흡사했는지, 누구의 연기가 실제 시민 대표 누구의 모습과 흡사한지 여부를 자연스럽게 비교하며 연극을 즐기게 된다. 도시 자체를 연극의 무대로 만듦으로써 요크시는 역사적 도시 예루살렘으로 바뀌게 되고, 예수의 행진은 다시 요크시에 입성했던 리차드 왕의 행차와 치환된다. 요크시와 예루살렘이 겹쳐지는 것이다 (Beckwith 2001, 26). 그러는 가운데 믿음의 구조와 교리적 연결성과 같은 종교적 관심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왕과 예수의 중복성과 차별성, 관객과 배우들이 벌이는 극적 요소, 그리고 현실의 사회 역학 구도가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몸 대신 현실의 정치와 사회적 구도에 더욱 눈을 돌리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그리스도의 몸을 가시화하려던 시도였던 성체축일극은 결국 인간사회의 역학관계를 가시화하도록 만들었던 셈이다.

그런데 「예루살렘 입성」이 보여주는 도시의 사회적 역학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우선 스티븐즈가 잘 지적하고 있듯이, 왕이 입성하여 시가 행진을 하게 되면 시 대표들은 도시의 가장 화려한 면만을 보여 주며 시의 위용과 번영을 자랑하게 되는 반면, 예수가 시가 행진 중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병든 자들이고 예수가 걷는 길은 곧 그가 수난을 받으며 걸어야 할 바로 그 길이기도 하다. 즉 요크 시는 왕을 영접하는 크고 화려한 도시인 동시에 타락과 부정이 있는 곳, 구원이 필요한 곳으로서 제시된다. 또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와 열 두 제자의 행색은 요크 시에 입성하는 왕과 그의 종자들이나, 성체축일 행렬 때 앞에 나서는 도시 지도부들과는 달리 매우 초라하다(Stevens 57-8). 이 대목에서 우리는 1415년 『행렬 순서』(Ordo Paginarum)에 ‘가죽일하는 자들’ 공연 부분에 기록되어 있던 ‘여섯 명의 부자와 여섯 명의 가난한 자가 필요’하다는 지시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Nisse' 437). 이러한 무대 지시문은 당대 요크 시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인 길드와 수공업자 길드 사이의 점점 깊어지는 갈등과 부의 편재 현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Swanson 110, Beckwith 2001, 52). 그렇다면 가죽일하는 자들이 배우가 되어 연기하는 예수 일행의 초라한 행색은 요크 시에서 열세의 위치에 놓여 있던 수공업자 길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무대 위에서 점쟎게 예수 일행을 맞는 시민의 모습은 요크 시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던 상인 길드 출신의 지도층의 모습을 일정 부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역사 속의 예수와, 현실 속에서 점차 양극화 경향을 보이며 분리되는 두 계층의 모습을 중첩하여 보여 줌으로써 극이 곧 강력한 현실 비판으로 변환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와 같은 변환은 순환극의 해석에 있어서 중대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즉 애초에 순환극 공연이 신학적으로 허용되었던 것은 이 연극 공연의 몸의 상징 체계의 독특성 때문이었다. 사실 유한한 인간의 몸이 절대자 신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이라는 존재는 (더구나 기독교의 신학 체제에서는) ‘몸’을 지니지 않은 영적이 존재로 믿어지기 때문이다. 무한자이며 영적인 존재인 신을 유한자이며 육을 지닌 인간이 표현한다는 것은, 종교개혁이후의 신학에서는 거의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신성 모독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크 순환극의 경우에는 20여명의 그리스도, 12명의 성모 마리아, 그 외에도 여러 명의 하나님과 두 세명의 사탄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이 무대, 저 무대를 쫓아가서 공연을 보면서 서로 별로 닮아 보이지 않는 여러 명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만나게 된다. 공연 주체나 관람객들이, 그리고 이 공연을 책임지고 있는 시 당국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은 이 배우들이 하나님 혹은 성모 마리아의 몸에 대한 기호(sign) 혹은 기표일 뿐, 그들이 연기하는 신성한 혹은 사악한 존재의 구현(impersonation)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공연 중에 벌이는 행위는 모방적인 재현(mimetic representation)이 아니라 일종의 제의적인 행위라는 의식이 있었던 셈이다. 배우는 하나님이나 예수님, 성모 마리아가 되는 것(to become)이 아니라 그들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기호라고 생각되었다.9) 즉 관객들은 순환극을 관람하며 배우의 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몸이 상징하는 것을 본다는 무언의 약속, 잠재된 전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입성」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의미의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곧 인간의 몸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려던 시도가 결국 그리스도의 몸의 이름을 빌어 인간의 몸들이 이루는 세계를 재현하는 것으로 바뀌었음을 뜻한다. 인간의 몸―몸짓, 연기, 목소리―은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 속의 인물들을 상기시키고 이것은 다시 인간이 몸담고 있는 현실 사회의 몸―조직체, 단체, 체계―의 모습에 대한 재현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의 몸 속에 담겨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경배하는 축일을 만들겠다는 애초의 목적은 상당히 변질되어, 그리스도의 몸의 상징성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마련된 순환극의 많은 에피소드들이 현실 속의 인간의 정치․사회․경제적 관계의 재현의 장으로 바뀐 셈이다.

그리스도의 몸, 기독교의 구원의 메시지보다는 인간의 몸, 인간의 욕구와 현실 인식 및 그 재현을 향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순환극으로는 웨이크필드 순환극을 들 수 있다. 가령 『아벨 살해』(Mactacio Abel)의 경우는 그 좋은 예이다. 이 극에서 십일조를 거부하는 카인의 신앙 자체에 대해서는 비록 관객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단한 삶을 불평하는 카인의 대사는 아마도 삶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기독교 교리만을 되풀이하는 아벨의 대사보다는 훨씬 피부에 와 닿았을 것이다. ‘악인’ 카인과 그의 종자 가르시오(Garcio)의 대사는 당대 임차농들이 겪었을 삶의 애환을 잘 보여준다. 귀족이나 대지주들, 그리고 이들의 하수인들이 임차농에게 부과하는 폭력적인 억압 앞에 불평하면서도 억척스럽게 살아 남고자 애쓰는 카인이나 가르시오의 모습은 매우 현실적이고, 그런 만큼 매력적이이다. 특히 카인과 아벨의 대립은 인크로져 운동을 둘러싸고 15세기 요크셔 지방에서 곪아가고 있던 임차농과 목양인 사이의 경쟁관계를 보여준다. 카인의 분노는 농부들의 가난을 상징하며 그가 아벨에게 분노를 터뜨릴 때 그것은 웨이크필드 지방의 관객들이 여러 모로 공감하는 경제적 분노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Stevens 128-9).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가 중심이 되어야 할 극에서 인간의 몸의 고통이 전면에 등장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인의 다음과 같은 대사는 의미있다.


흥, 동생아, 왜 내가 십일조를 해야하지?

나는 매 해 살기가 더욱 힘들어는데.

내 얘기를 들어봐, 다른 게 아냐.

내가 버는 것은 아주 적어.

내가 마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나는 하나님께 아주 오랫동안 불평을 할 수 있어,

왜냐하면, 나를 비싼 값을 치르고 사셨던 그분에 대해 말하자면,

그 분은 내게 주신 게 없는 것 같거든.10)


위의 대사에서 카인은 자신의 ‘마른 몸’을 현실의 고통의 상징으로 제시한다. 무대에서 문자 그대로 인간의 몸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스티븐즈의 다음의 논평은 매우 의미있다.


웨이크필드 저자는 그 지역의 상업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다만 그의 순환극을 봉건 군주와 봉신 양쪽의 비열함을 그대로 반영하도록 만들었다. 이 순환극에서 만약 어떤 기조가 지배하고 있다면, 그리고 특히 웨이크필드의 거장(Wakefield Master)이 쓴 것이라고 전통적으로 알려진 극에서 그러하다면, 그것은 불일치의 기조, 가난한자가 불공정에 대해 외치는 기조, 농부들이 가난에 대해 울부짖는 기조, 궁정이 모두를 압제하는 기조,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Stevens 127).11)


스티븐즈의 위의 발언은 웨이크필드 순환극이 현실과 맺는 관계를 적절히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순환극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몸과 인간의 몸의 갈등관계를 잘 보여준다. 즉 궁극적으로 웨이크필드 순환극이 그리스도의 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극의 면면에서 현실 속의 불공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웨이크필드 순환극에서의 이러한 현실비판의 목소리는 요크 순환극에 비하면 너무나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가령 앞서 논했던 요크 순환극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는, 현실에 대한 암시는 극 중 여러 장치를 통해서 매우 조심스럽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경제적 관계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은 필립과 문지기와의 대화에서 요크시의 가난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유하는’(comen) 당나귀에 대해 논할 때뿐이다 (57-67행). 이에 비해 웨이크필드의『아벨 살해』는 경제적 이해관계나 종교적 관습에 대한 불만을 보다 자유롭게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위의 카인의 대사에서도 보이듯이 인간의 몸은 그 자체만의 독립된 목소리를 갖지는 못한다. ‘나를 비싼 값을 치르고 사셨던 그분’이라는 대사는 결국 그리스도의 몸의 십자가의 수난과 그 몸의 수난과 죽음․부활을 통한 구원이라는 극의 궁극적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이 대사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늘 받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대사야말로 순환극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상징을 중심에 두고 만들어진 연극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웨이크필드 순환극은 서머게임(somergames) 같은 중세의 민속 놀이나 민속극의 요소들을 전용함으로써 그리스도가 그의 몸을 통해 인류를 구원했다는 큰 메시지 안에 현실의 목소리를 끼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Clopper 2001, 177-79). 극 중 대사 속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관객을 하늘로 이끌고, 현실 속의 인간 삶의 고통을 토로하는 대사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보다는 인간의 몸에 관심을 두도록 만든다.

결론적으로 성체축일 순환극은 종교 자체가 갖는 요구, 성직자의 요구, 시민의 요구가 모두 결합되어 탄생한 연극이라 할 수 있다. 각각 다른 필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요구가 순환극이라는 접점 속에서 상호 타협을 이루었다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의 구원의 메시지는 연극 속의 인간의 몸이라는 매개를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몸에 의지하고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현실 속에서의 갈등을 표출할 수 있는 계기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경배하는 극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성직자들은 기독교 교리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구체적 상징을 통해 재조직하여 속인들의 이해를 돕고 그들의 신앙심을 고양하며 성직자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기 위해 성체축일 행사를 제정하고 장려하였다면, 시민들은 인클로저 운동, 지주의 수탈, 도시의 자치권 확립 등과 같은 역사적 상황과 사회구도 속에서 자신의 모습과 욕구의 재현의 매개로서 순환극을 필요로 하였다. 성체축일 순환극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사회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변모하며 적응해갔는지, 그리고 시민들이 종교적 교리와 행사를 통해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드높여 갔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값진 장르라 할 수 있다.


(호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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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orpus Christi Cycle and the Politics of the Meaning of the "Body of Christ"


Yejung Choi (Hoseo University)


This article purports to answer a question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religion and society through an analysis of the Corpus Christi Cycle. The main argument of this article is that the meaning of the "Body of Christ" which is the central figure in the Corpus Christ Cycle was not fixed at all but has always been changed in the course of history. The Corpus Christi Cycle is a good example of the complex and multiple signification of the Body of Christ.

This article first surveys the historical origin of the Corpus Christ Feast. It examines the process of the transmutation of the meaning of the Body of Christ and reveals that the meaning of the Body of Christ was constructed as much by the practical need of the clergy as by the basic principle of Christianity. Once the Corpus Christi Feast was established as a public holiday by Rome, the Body of Christ came to have another meaning. As the clergy taught that the Body of Christ had a very special value and efficacy, the proximity to the Body of Christ during the Corpus Christi Procession became a visible sign of power and authority on the part of the lay people. In the cities where the civic oligarchy had achieved autonomy, the Body of Christ was appropriated by the civic oligarchy who desired to show off their religious leadership as well as their political and economical leadership. Through the performance of the Corpus Christi Cycle the civic government could prove that it could offer religious education to the lay people and that the city under the rule of the civic government had a good deal of religious fervor. On the other hand, as the city became the backdrop of the drama, the city itself played a role. When the play shows a scene which reminds of a royal procession in the same place where the king used to visit, the contemporary political reality is foregrounded rather than the biblical hermeneutics underlying the scene. Similarly, when the actors who are the guildsmen of the city make complaints about the hardships they suffer, the scene suggests to the audience the hardships they are experiencing in reality. Human body and the guildsmen's desire gets more attention than the Christ's Body and the message of its saving grace.

In the Corpus Christi Cycle, the meaning of the Body of Christ is compromised by the politics of the three different agencies of the play: the clergy, the civic government and the guildsmen or the common citizens. And the Body of Christ comes to have a more complex and multi-layered meaning.




Key Words: 성체, 성체축일, 순환극, 몸, 도시, 공동체, 재현


1) 콜비(V. A. Kolve)는 성체축일극에 대한 선구적 저서를 출간하면서 천지창조부터 마지만 심판에까지 이르는 요크와 체스터 등의 성체축일극의 포괄성에 주목하였다. 그는 구약과 신약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공연 형식에 아우를 수 있는 신학적 원칙이 있으며 의미의 통일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의미의 통일성을 만들어 내는데 핵심적인 에피소드를 성체축일 순환극에서 분류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그였기에 그는 온전한 순환극 형식을 갖추지 않은 성체축일극은 불완전한 형태로 보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2) 벤슨(C. D.Benson)과 로버트슨(Elizabeth Robertson)은 그들이 편집한 책 Chaucer's Religious Tales의 1면에서 왜 그들이 「신학생의 이야기」, 「법률가의 이야기」, 「수녀원장의 이야기」, 「두 번째 수녀의 이야기」를 종교 이야기로 묶었는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이야기들이 ‘좀 더 실제적인 도덕성 대신 내세적인 영성을 기리고 있고’ 이 이야기들은  ‘초월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답변은 물론 초서의 작품에 대한 견해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세 기독교의 성격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중세 기독교의 성격을 이렇게 ‘초월성’으로 규정하는 것의 오류에 대한 David Aers의 신랄한 비판을 참고할 것.


3) 코비알카는 성찬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을 각각 육체적, 정신적, 교회적 이해 혹은 접근이라고 명명한다 (3장).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이 공동체라는 단어를 자꾸 사용하게 되는 것은 그 단어가 설명해줄 수 있는 용도가 여전히 일정부분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벡위쓰는 역시 지적한다.


5) 니세(Ruth Nisse')는 요크 순환극은 자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고 읽고 설교할 것은 주장하는 롤라드들(Lollards)의 영향 아래 쓰여진 것으로서 극의 대사에 롤라드의 가르침의 흔적이 배어 있다고 주장한다.


6) 클라퍼는 사실상 이 측면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속인들이 축제 행사를 갖고 즐기려는 욕구를 갖고 있는데 이것을 언제까지 억누를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속인들에게 축제적 표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성직자들이 성경극을 허용했다고 말한다. 게임, 축제, 여흥으로서의 중세 연극의 개념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그의 2001년 저작을 참조할 것.


7) 이에 관해서는 졸고 ꡔ안과 밖ꡕ 9집 참조.


8) 이와 유사하게 벡위쓰는 요크 순환극에서 그리스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권위와 그 권위를 확립시키는 권위, 다시 말하면 교회와 신의 권위 사이에 맞대면이 이루어지면서 이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Beckwith 1996, 269-72). 


9)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클라퍼 1999년 743쪽, 혹은 클라퍼의 2001년 책 1,2, 3장 참조


 10) Martin Stevens and A. C. Cawley eds. The Towneley Plays. vol. 1 The Early English Texts Society. (Oxford: Oxford UP, 1994) Play 2. 110-117 행


11) 이와 함께 스티븐즈는 웨이크필드 저자는 극을 통해 요크셔 지방의 썩고 비참한 현실을 구원할 자가 필요하며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