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왕 세계의 종언





최 애 리






ꡔ아더왕의 죽음ꡕ (La Mort le Roi Artu 혹은 간단히 La Mort Artu)은 ꡔ랑슬로-그라알ꡕ (Lancelot-Graal) 연작의 제3부로 씌어진 작품이다. ꡔ랑슬로ꡕ, ꡔ성배 탐색ꡕ (La Quête del Saint Graal), ꡔ아더왕의 죽음ꡕ으로 이루어지는 이 3부 연작의 앞머리에 로베르 드 보롱(Robert de Boron)의 ꡔ요셉ꡕ (Josèph)과 ꡔ메를렝ꡕ (Merlin)에 상응하는 ꡔ성배 사화ꡕ (L'Estoire dou Saint-Graal)와 ꡔ메를렝ꡕ을 덧붙인 것이 널리 알려진 ꡔ불가타 연작ꡕ (le Vulgate cycle)으로, 그렇게 해서 성배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더왕의 탄생과 즉위, 기사들의 모험, 성배 탐색, 아더왕의 죽음에 이르는 전체적인 구도가 완성된다. 다시 말해 로베르 드 보롱(Robert de Boron)이 그라알의 기원을 그리스도의 수난에까지 소급시킴으로써 아더왕 이야기의 시발점을 찾았다면,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그 긴 이야기를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ꡔ랑슬로-그라알ꡕ의 창작 연대가 어림잡아 1215-1230년간이므로, 그 종결부인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1230년경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 작품의 서문에 의하면, 성배의 모험들을 기술하였던 저자 월터 맵(Gautier Map)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헨리 왕2)의 명에 따라, 앞서 이야기되었던 인물들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진술은 작품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상투적인 장치이다. 실제로 헨리 왕이나 월터 맵은 작품의 창작 연대 이전에 사망한 인물이며,3) ꡔ성배 탐색ꡕ과 ꡔ아더왕의 죽음ꡕ처럼 판이한 두 작품이 동일인에 의해 씌어졌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ꡔ랑슬로ꡕ ꡔ탐색ꡕ ꡔ죽음ꡕ 모두가 허구일망정 동일인을 작가로 내세웠다는 것은 연작을 이루는 작품들 간의 연계성을 보장하려는 의도를 말해주며, 이러한 의도의 통일성은 연작 전체에 걸쳐 확인된다. 그래서 프라피에(J. Frappier)는 이 연작이 동일한 ‘건축자’에 의해 설계되었으되,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작가가 그 설계를 실행에 옮겨 각각의 작품을 썼으리라는 가설을 제출하였으며,4) 이러한 추정은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연작 내의 다른 두 작품과 분명히 구분되는 동시에, 연작 전체의 구성에 비추어 그 의의를 갖는 작품이다. 흔히 지적되는 대로, ꡔ랑슬로ꡕ와 ꡔ성배 탐색ꡕ이 각기 궁정풍 사랑에 기초한 세속 기사도의 이상과 영적 기사도로 대변되는 그리스도교의 이상을 그린 것이라 한다면,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그러한 이상들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세계, 신의 은총이 부재한 가운데 인간적인 정념들이 파국을 향해 치달아가는 세계를 그려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전 비극에 못지 않은 비극으로도 평가되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결말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전에도 아더왕의 죽음과 왕국의 몰락을 이야기한 작품들은 있었지만, 거기에는 한 세계가 지나가 버린다는 비장함은 있었을지언정 그 세계가 표상하였던 가치 질서 자체가 붕괴해버린다는 비극성은 없었다. 드높은 기사도의 이상과 종교적 체험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구가하였던 전작들로부터, 단순한 전사나 쇠망이 아니라 배신과 복수와 반역이라는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또한, 흥미로운 것은 ꡔ아더왕의 죽음ꡕ과 더불어 아더왕 문학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다는 사실이다.5) ꡔ랑슬로-그라알ꡕ 연작의 구성은 마치 크레티엥 드 트루아의 ꡔ수레의 기사ꡕ(Le Chevalier de la Charrette)와 ꡔ그라알 이야기ꡕ(Conte du Graal)에서 미진했던 이야기들을 각기 발전시키고 그 후일담을 ꡔ아더왕의 죽음ꡕ으로 매듭짓는 것과도 같으며, 이같은 전개는 아더왕 문학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즉, 아더왕 문학은, 랑슬로 및 그라알에서 출발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궁정풍 사랑에 기초한 기사도의 이상을 정립하고 나아가 그리스도교적․역사적 지평을 획득한 뒤에, 아더왕의 죽음과 왕국의 몰락을 서술함으로써 끝을 맺는 것이다.6) 그리하여, 더이상의 전개가 불가능해진 아더왕 문학은 막연히 전설적인 시간 속에 머물면서 비슷비슷한 인물과 사건들을 반복하거나7) 아니면 ꡔ랑슬로-그라알ꡕ의 앞부분에 ꡔ성배 사화ꡕ와 ꡔ메를렝ꡕ이 덧붙여져 ꡔ불가타 연작ꡕ을 이루게 되는 예에서 보듯이 오히려 아더왕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8) 요컨대,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ꡔ랑슬로-그라알ꡕ 연작뿐 아니라 아더왕 문학 전체의 종결부에 해당하며, 실제로 그 이후에 씌어진 작품들은 명백한 쇠퇴 징후를 드러내는 것을 볼 수 있다.9)

그러므로,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첫째, ꡔ랑슬로-그라알ꡕ 연작이 ꡔ아더왕의 죽음ꡕ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둘째, ꡔ아더왕의 죽음ꡕ 이후 아더왕 문학이 쇠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다시 말해, 아더왕의 세계가 붕괴하게 되는 작품 내적․외적 요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아더왕의 죽음이란 이 작품에서 처음 이야기되는 것이 아닌 만큼, 그러한 의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전의 작가들이 아더왕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지었던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나서, ꡔ아더왕의 죽음ꡕ에서 왕국 몰락의 원인 및 과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본 다음, 아더왕 문학의 쇠퇴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10)



1. 이전 작품들의 결말


아더왕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일찍이 아더왕 문학의 효시라 할 12세기 중엽의 연대기들 즉 조프리 오브 몬머스(Geoffrey of Monmouth)의  ꡔ영국왕 열전ꡕ (Historia regum Britanniae)과 그것을 불어로 옮긴 우아스(Wace)의 ꡔ브뤼트ꡕ (Brut)에서부터 발견된다. 아이네아스의 증손자 브루투스가 브리튼 섬을 정복한 때11)로부터 역대 왕들의 치세를 차례로 서술한 이 연대기들은 아더왕에 대해서도 그의 즉위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이야기하고 있다.12) 왕들의 치세를 주로 전쟁의 기록으로 일관한 이 연대기들에서 아더왕은 무엇보다도 전장(戰將, dux bellorum)으로 그려지며,13) 따라서 그가 전쟁터에서 죽었다고는 해도 그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마디로, 그의 죽음은 다른 왕들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흥망성쇠하는 역사의 한 대목일 뿐, 거기에 특별한 비극성은 부여되지 않는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우선, 로마와의 전쟁은 피치 못한 것이 아니라 왕국의 정당한 방위를 위한 것인 동시에 브리튼 왕이 다시금 로마의 제위에 오르리라는 예언의 성취를 위한 것이고, 나아가 이교도들에 대한 성전(聖戰)의 성격을 띤다.14) 또, 승전 후 로마로 진격하려던 차에 본국의 내전 소식을 듣게 된다는 아이러니도 굳이 비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라기보다는 영광스러운 예언을 가능한 한 실현하되 실제 역사와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15) 끝으로, 왕비와 사통한 모르드레드의 반역이라는 것은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 기술되며, ꡔ아더왕의 죽음ꡕ에서처럼 모르드레드가 아더의 사생아, 그것도 근친상간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든가 하는 치명적인 인과의 분위기는 없다.16)

뿐만 아니라, 이 연대기들에서는 아더왕의 죽음이 곧바로 왕국의 멸망이나 이야기의 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치명상을 입고 아발롱 섬으로 실려간 아더왕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고 예언되며, 브리튼 왕국은 아더왕이 지정한 후계자에 의해 계승된 후 1세기여에 걸쳐 서서히 쇠망해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마지막 왕 카드왈라더는 민족의 멸망이 신의 징계에 의한 것이라고 통탄하면서 역병으로 황폐해진 브리튼 섬을 떠나지만, 그에게 임한 천사의 음성은 메를렝이 아더에게 예언했던 시기가 오면 브리튼 족이 다시금 제 땅을 다스리게 되리라며 왕국의 회복에 관한 전망을 재확인한다. 그런 가운데, 이야기는 카드왈라더의 아들과 조카가 유민들을 이끌고 섬으로 되돌아가 웨일즈 족의 시조가 되고, 브리튼의 주도권을 잡은 색슨족이 새로운 왕조를 이끌어가게 된다는 데서 끝을 맺는다. 아더왕 이후에도 브리튼 왕국은 존속하며, 왕국이 몰락한 후에도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연대기적 맥락에 비추어본다면, 아더왕의 궁정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나는 경이로운 모험들을 그린 크레티엥 드 트루아의 소설들은 아더왕 치세 동안의 예외적인 평화기 즉 ‘12년간의 평화’17)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크레티엥은 연대기 작가들이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바로 그 시기의 이야기를 하는 대신, 연대기에서 다루어졌던 내용 즉 아더왕의 탄생과 즉위, 전쟁들, 죽음과 왕국의 몰락 등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크레티엥이 그리는 아더왕의 세계는 시작도 종말도 없는 것이, 마치 영원히 계속될 전설 속의 세계와도 같다.18) 그의 작품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ꡔ그라알 이야기ꡕ만이 아더왕의 아버지 우터펜드라곤19)이나 아더왕이 최근에 치렀다는 전쟁20)에 언급하며, 페르스발이 해야 할 질문을 하지 않은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땅이 황폐해지리라든가 또는 고벵이 찾아야 할 피 흐르는 창이 로그르 왕국을 파괴하리라든가 하는 예언들을 통해 아더 왕국의 종말을 시사하지만,21) 실제로 그러한 파국이 어떤 것이 될는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만한 단서가 전혀 없는 채,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마찬가지로, 크레티엥 이후 그라알 이야기의 ꡔ속편ꡕ들을 위시한 다양한 운문 소설들에서도 아더왕의 세계는 “12년간의 평화”라는 연대적 틀과는 무관하게 브리튼 설화의 전설적인 시공간에 속한다. 그라알의 운문 ꡔ속편ꡕ 작가들 중에서 이야기를 마무리지은 유일한 작가는 마네시에(Manessier)이지만, 그 역시 그라알 모험의 종결에서 작품을 끝내고 있으며, 아더왕 세계 자체의 존속 여부는 문제삼지 않는다.

크레티엥 이후 다시금 아더왕의 죽음이 이야기되기 시작하는 것은 로베르 드 보롱의 3부작에서부터이다. ꡔ요셉ꡕꡔ메를렝ꡕꡔ페르스발ꡕ의 3부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연작 중 로베르 자신에 의한 제3부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그가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했을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ꡔ요셉ꡕ 및 ꡔ메를렝ꡕ의 작중 예언들은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케 해준다. 즉, 한편으로는 세번째 그라알 지기(gardien du Graal)가 나타나 그라알 모험을 완수하리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더왕이 브리튼 왕으로서 프랑스 왕이자 로마 황제가 될 세 번째 사람이라고 예언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3부작은 그라알 모험의 성취와 아더왕 치세의 종결을 일치시킴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 한 것으로, 이같은 구성에 힘입어 아더왕의 대륙 원정과 죽음이라는 연대기적 사실들은 소설적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서 비로소 종말의 필연성이 도입되는 것이다.

로베르 연작의 제3부에 해당하는 작가 미상의 산문 ꡔ페르스발ꡕ (Perceval)은 이러한 소설과 연대기의 수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기 위해 작가는 그라알 모험의 성취야말로 아더 왕국 몰락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페르스발이 그라알 성에 되돌아가 해야 할 질문을 수행함에 따라 어부왕의 오랜 병이 치유되고 브리튼 땅에서 마(魔, enchantements)가 사라지자, 경이로운 모험 또한 사라지고22) 그에 낙담한 기사들은 궁정을 떠나려 한다. 그리고 이것이 아더왕으로 하여금 프랑스 원정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이 되며, 그로 인해 로마의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 뒤이은 파국 등이 오게 된다. 말하자면, 소설은 더 이상의 경이로운 모험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연대기적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금 전장으로서의 아더가 등장하게 되거니와, 그의 죽음은 비극적인 것도 아니고 죄의 결과도 아니다. 그의 시대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나 브리튼 역사에 있어서나 영광스러운 예언이 성취되는 시대이며, 그의 전쟁들은 성전의 성격을 띤다.23)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히 연대기적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연대기의 역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과는 달리, 산문 ꡔ페르스발ꡕ은 아더왕이 세상을 떠나 아발롱 섬으로 실려가고24) 그 소식이 그라알 성에 전해지고 뒤이어 메를렝이 그의 깃집(Esplumoir)25)에 칩거하여 세상의 종말을 기다린다는 데서 이야기를 마감한다. 아발롱 섬이나 그라알 성, 깃집 등은 모두가 발화(發話)의 근원이 그 너머로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소실점과도 같아서, 이후로는 간혹 아더왕을 보았다거나 하는 풍문이 떠돌 뿐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이라는 성사적 사건에서 출발한 3부 연작은 세상의 종말을 가리켜 보이면서 끝맺게 되는 것이다.

ꡔ페를레스보스ꡕ (Perlesvaus)에서는 로베르의 3부작에서 도입되었던 이같은 종말론적 구도가 양상을 달리하여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저한 차이는 그라알 모험의 성취와 아더 왕국의 붕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라알 모험 성취 후 줄거리는 둘로 나뉘어, 한편으로는 아더왕과 그의 적들 간의 정치적 갈등이, 다른 한편으로는 페를레스보스의 계속되는 싸움이 이야기된다. 이같은 구도는 명백히 알레고리적인 의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그라알 모험 성취 이후의 후반부는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이 성취된 이후 세상의 운명과 종말론적 예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더 왕국이 쇠망해가는 과정은 연대기적 전통과는 무관하게 그려진다. 아더왕이 치르는 전쟁들은 연대기에서 말하는 대륙 원정이 아니라 일련의 내분과 외침으로 인한 것이며, 아더왕을 배반하는 것은 왕비와 사통한 모르드레드가 아니라 왕자를 암살한 케우이다.26) 왕의 외아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 왕국 분열의 발단이 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환기함으로써 왕국의 몰락이 죄의 결과임을 시사하는 바, 이전 작품들에서와는 달리 아더왕의 시대가 타락한 시대로 그려진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아더왕의 적들이 배역자와 손잡고 ‘새로운 법’을 파괴하려 하는 이교도들이라는 사실은 그의 전쟁에 성전의 성격을 부여하며, 따라서 아더왕 자신은 여전히 의로운 편에 서게 된다.

이러한 전개는 동일한 알레고리적 의도를 취하지 않는 다른 작품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아더왕 이야기의 마무리짓기라는 견지에서 연대기 전통과는 다른 한두 가지 시사점을 제공한다. 즉, 그것은 아더 왕국의 몰락을 단순히 그라알 모험의 에필로그로서가 아니라 독립된 이야기로 전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또 처음으로 그 몰락 원인을 내부 분열에 두는 동시에 거기에 죄성을 부여하였다. 하지만, 이야기는 아더왕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페를레스보스에게로 넘어가, 마침내 그가 그라알 성을 떠나 영원한 세계를 향해 출발한다는 데서 끝을 맺는다. 이후로 그라알 성은 폐허가 되었으며 그리로 가는 길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고, 어쩌다 그곳에 가게 된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거나 혹 돌아오더라도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고 말해진다. 산문 ꡔ페르스발ꡕ에서와 마찬가지로, 발화의 근원이 잠적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더왕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야기는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으며,27) 단지 출전으로 인용된 요제푸스의 역사책이 발견된 장소가 아더왕의 시신이 묻혀 있는 아발롱 섬이었다고 하는 새로운 증언을 제출한다. 아발롱 섬28)을 “모험의 땅 가장자리에 있는 성스러운 사원”과 동일시한 것은 분명 아더왕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글래스턴베리 사원29)과 전통적으로 아더왕의 마지막 행선지로 알려진 아발롱을 일치시키려는 의도의 소산일 터이다. 그리하여 이후로 아더왕의 최후에 관해서는 귀환 혹은 영면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게 되는 것이다.30)

이상의 작품들이 아더왕 이야기의 결말에 관해 제시하는 몇 가지 가능성들은 ꡔ랑슬로-그라알ꡕ에서 새로운 양태로 결합되기에 이른다. 연작의 결말에 해당하는 ꡔ아더왕의 죽음ꡕ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되겠지만, 아더 왕국의 붕괴를 알리는 전조들은 이미 ꡔ성배 탐색ꡕ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31) 물론 ꡔ성배 탐색ꡕ에는 왕국의 몰락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그라알 모험의 성취와 아더 왕국의 종말을 일치시키는 로베르 드 보롱의 구도가 그대로 계승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작품 서두에서부터 그라알의 모험은 아더 왕국의 경이로운 모험들을 종식시키리라고 예언되며, 실제로 작품 말미에 이르면 로그르 왕국에서는 더 이상 모험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이야기된다. 또한 아더왕도 성배 탐색이 원탁의 기사들을 앗아가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며, 이같은 예감은 탐색에서 많은 기사들이 목숨을 잃으리라는 수차의 예언들을 통해 재확인된다. 그런가 하면, 로베르의 연작 내지 산문 ꡔ페르스발ꡕ에서는 거론되지 않았던 시대의 타락상, 죄에 대한 신의 분노 등이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되는데,32) 타락이 아더왕 시대로 옮겨진다는 점에서는 ꡔ페를레스보스ꡕ와 같지만, ꡔ페를레스보스ꡕ에서와는 달리 ꡔ성배 탐색ꡕ에서는 죄의 책임이 아더왕의 적들이 아니라 왕이나 왕국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더왕 시대에 대한 이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기사도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다. ꡔ성배 탐색ꡕ이 누누이 강조하는 바, 성배를 추구하는 천상 기사도와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지상 기사도 간의 대립이야말로 전자의 완성에 뒤이어 후자의 몰락이 오게 될 이유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성배가 브리튼 땅을 떠날 때에는 로그르 왕국 사람들이 그들의 죄로 인해 성배를 잃게 되었다고 이야기되는 것이다.



2. ꡔ아더왕의 죽음ꡕ


이상에서 우리는 ꡔ아더왕의 죽음ꡕ 이전의 텍스트들에서 아더왕 이야기의 마무리짓기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던가를 살펴보았다. 공통된 사실은 아더 왕국이 영속하지 못하고 붕괴한다는 점이지만, 그 원인과 과정 및 거기에 부여되는 색채는 조금씩 달랐다. 그렇다면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다시 말해, ꡔ아더왕의 죽음ꡕ에서 아더 왕국은 왜 어떻게 하여 몰락하는가? 이전 작품들에 비추어볼 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즉, 그라알 모험의 종결과 왕국의 내부 분열이 그것이다. 그라알과 더불어 경이로운 모험이 사라졌다는 것이 몰락의 배경을 이루는 원인이라면, 왕국의 내부 분열과 그에 따른 파국은 좀더 구체적인 현상으로 드러나는 인과의 과정에 해당한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아더 왕국의 몰락은, 비록 그라알 모험과의 직접적 관련은 이야기되지 않지만, 사실상 그라알 모험의 종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산문 ꡔ페르스발ꡕ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라알 모험의 성취는 마를 근절함으로써 경이로운 모험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ꡔ아더왕의 죽음ꡕ의 전반부는 그러한 모험의 부재, 경이로운 저세상(l'Autre Monde merveilleux)의 부재를 확연히 드러내준다.33) 성배 탐색으로 인해 많은 기사들을 잃고 침체한 궁정에서는 모험의 경이와 기사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지만, 그것들은 오히려 그 부질없음을 재확인시켜줄 뿐이다. 산문 ꡔ페르스발ꡕ에서 아더왕이 기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대륙 원정을 시작하듯이, ꡔ아더왕의 죽음ꡕ에서 아더왕은 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무술 시합을 연다. 즉, 외부 원정 대신 내부 회복의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같은 회복의 의지는 아더왕뿐 아니라 랑슬로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그가 기마 시합에 무명 기사로 출전하겠다는 것은 ꡔ성배 탐색ꡕ에서 그 헛됨이 드러났던 지난날의 명성을 반납하고 새로이 출발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하지만, 이같은 의지는 번번이 좌절되며, 전에는 경이로운 모험을 예고하던 이야기 요소들이 이제는 그것들이 불러일으킨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출정하지 않을 듯이 궁정에 남았던 랑슬로가 일행으로부터 떨어져 뒤늦게 출발하는 장면이나 배신(陪臣)의 아름다운 딸을 만나게 되는 장면 같은 것은 크레티엥의 ꡔ에렉과 에니드ꡕ를 연상시키면서 무엇인가 새로운 모험이 시작될 듯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랑슬로의 모험은 그러한 출발이 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한편으로는 에스칼로 아가씨의 실연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니에브르의 질투를 야기하며, 랑슬로 자신도 무술 시합에서 심한 부상을 입게 된다. 또한, 어느 날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아더왕 일행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뿔나팔 소리를 따라가다가 한 아름다운 성에 이르게 되는데, 그 휘황한 불빛과 비단의 광휘는 다시금 경이로움을 자아내지만,34) 왕은 거기서 더이상 그라알 성에서와 같은 신비한 모험을 만나는 대신 랑슬로와 그니에브르의 불륜을 확인하게 될 따름이다. 뒤이어, 랑슬로에 대한 에스칼로 아가씨의 연모라는 사건의 결말에서도, 어느 날 카말로트 성으로 신비한 배가 흘러오는 장면은 ꡔ제1 속편ꡕ에서 달밤에 흰 배가 흘러오는 장면이나 ꡔ성배 탐색ꡕ의 서두에서 신비한 섬돌이 흘러오는 장면을 연상시키면서 역시 새로운 모험에의 기대를 일으키지만,35) 값진 비단으로 덮인 그 배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에스칼로 아가씨의 시체이다. 말하자면, 이제 저세상에서 오는 기별은 더이상 새로운 모험의 시작이 아니라 모험의 좌초과 죽음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험이 없다고 해서 왕국이 몰락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아더왕 소설들에서 모험이 갖는 의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모험이란 경이로운 저세상으로부터의 부름에 응하는 것이며, 저세상의 적들을 굴복시켜 아더왕의 궁정에 속하게 하는 것, 경이로움(le merveilleux) 또는 마(l'enchantement)라는 말로 막연히 지칭되는 어떤 초자연적 요소를 궁정적 질서에 복속시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모든 모험이 지향하는 바 아더왕의 궁정이 추구하는 질서란 초자연적 세계 즉 궁정을 둘러싼 미지의 세계를 순치(馴致)하는 중심적 질서로서 존재하며, 따라서 그처럼 순치해야 할 세계가 없다면 모험이 그치는 것은 물론이고 아더왕 궁정의 존재 의의도 사라지게 된다.36) 두 세계 간의 이같은 관계 변화는 아더왕의 대륙 원정에서 셍-미셸의 괴물에 관한 에피소드가 생략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전의 연대기적 전통에 따르면 대륙 원정을 위해 고올로 건너간 아더왕은 전투에 앞서 셍-미셸의 괴물 거인을 처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아더왕이 전장으로서의 면모 외에 초자연의 순치자로서의 면모를 지녔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런데, 그라알 모험의 종결로 인해 모든 경이로운 모험들이 사라졌다는 설정과 더불어, 아더왕의 대륙 원정에서는 그러한 에피소드가 사라져버린다.37) 한 마디로, 모험의 종식은 아더왕의 궁정이 더이상 미지의 외부 세계를 다스리는 규범적 질서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ꡔ아더왕의 죽음ꡕ에서 왕국이 몰락하는 이유는 그것뿐이 아니다. 산문 ꡔ페르스발ꡕ에서는 모험의 부재가 곧바로 대륙 원정과 왕국의 몰락으로 이어지지만, ꡔ아더왕의 죽음ꡕ에서 왕국은 원정에 앞서 내분으로 인해 이미 붕괴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아더왕 궁정의 질서는 비단 그것이 순치할 초자연적 세계가 없어서뿐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더이상 존속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전반부는, 모험을 회복하려는 시도와 그 좌절을 보여주는 동시에, 궁정적 질서의 동요와 붕괴를 치밀한 극적 결구를 통해 그려나간다. 한편으로는 랑슬로와 그니에브르의 불륜에 대한 왕의 의심과 다른 한편으로는 랑슬로와 에스칼로 아가씨의 관계에 대한 왕비의 의혹이 갈마들다가, 의심을 사실로 확인한 왕이 번민하는 가운데 랑슬로의 변함 없는 사랑을 확인한 왕비는 다시금 걷잡을 수 없는 불륜에 빠져들고, 마침내 발각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놓인 왕비를 구하려던 랑슬로는 실수로 고벵의 동생 가에리에트를 죽이고 만다. 그리하여, 왕의 분노와 고벵의 복수심이 불러오게 되는 파국이 작품의 후반부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분열의 발단은 랑슬로와 그니에브르의 사랑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일찍이 궁정풍 사랑의 전범으로 제시되었던 이 사랑은 이제 가감의 여지 없는 불륜으로 제시된다. 그것은 더이상 기사도를 고양하는 궁정풍 사랑이 아니라 트리스탕과 이죄의 반사회적이고 파괴적인 정념적 사랑(amour-passion)에 더 가까우며,38) 궁정풍 사랑이 이처럼 실추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떠받치고 있는 궁정적 가치관 전체의 위기를 시사한다. 독사과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왕비를 구하고 평화를 되찾을 기사가 랑슬로 ― 이미 왕에게는 왕비와의 불륜이 알려진 ― 밖에 없다는 사실은 궁정의 질서가 실상 불륜에 빚지고 있음을 시사함으로써 그 허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랑슬로의 불륜이 의심받기 시작하여 발각당하기까지에 해당하는 작품의 전반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밖에도 궁정의 조화로운 단결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랑슬로를 시기하는 아그라벵의 밀고, 그니에브르를 증오하는 모르간의 계책,39) 고벵에 대한 독살 시도와 뒤따른 실수 및 복수의 요구40) 등, 이제 아더왕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은 저세상의 경이로움이 아니라 악의와 불운이다.41) 그리하여, 작품의 전반부가 끝날 때쯤이면 궁정은 더이상 궁정적 이상의 발현인 ‘기쁨’의 장소가 아니라 슬픔과 분노의 장소가 된다.

나아가, 작품의 후반부에서 아더왕의 세계는 랑슬로와의 전쟁, 로마와의 전쟁, 모르드레드와의 전쟁 등 잇단 무력 충돌을 거치면서 이른바 “영웅들의 황혼”42)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처럼 물리적인 궤멸의 저변에 있는 것 또한 궁정적 가치관의 와해이다. 앞서 랑슬로와 그니에브르의 불륜을 통해 드러났던 그 위기는 아더와 고벵의 태도에서 한층 증폭된다. 궁정적 가치를 대표하는 덕목들 중 하나는 절도(mesure)인데, 아더와 고벵은 모두 과도함(outrage)과 무절도(démesure)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맹목적인 분노에 사로잡힌 왕은 랑슬로의 겸손하고 희생적인 제의들을 모두 물리치며, 복수심에 이성을 잃은 고벵은 그의 봉신이 되겠다고까지 자신을 낮추는 랑슬로에게 끝까지 도전하다가 치명상을 입는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죽은 고벵은43) 모르드레드와의 결전을 앞둔 왕의 꿈 속에 나타나 랑슬로의 도움을 청하라고 간언하지만, 왕은 랑슬로가 봉신으로서의 우의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을 굽히기보다는 차라리 자멸하는 길을 택한다. 그는 꿈의 전조나 메를렝의 예언을 통해 자신의 죽음과 몰락을 예견하면서도, 끝끝내 결전을 향해 가는 것이다.

이같은 궁정적 가치관의 붕괴는 모르드레드의 반역에서 극대화된다. 모르드레드는 궁정적 가치들인 신의와 관후함(largesse)과 사랑이 어떻게 빗나가 가공할 죄악을 낳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에게 섭정을 맡긴 주군의 신의는 반역을 위한 기회로 이용되고, 주군의 아내를 사랑한다는 궁정풍 사랑의 공식은 불륜 내지 근친상간의 욕망으로 발전하며, 주군의 명예와 봉신에 대한 애정의 표현인 관후함은 회유와 지배의 수단이 된다.44) 모르드레드의 반역이나 왕비와의 사통은 일찍이 연대기에서부터 이야기되었던 것이지만, 모르드레드가 아더왕의 근친상간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전례 없는 설정은45) 아더왕 궁정의 질서를 그 근본에서부터 위협하는 것으로, ꡔ성배 탐색ꡕ에 이어 아더왕 및 그의 궁정에 죄성을 부여하는 이같은 시각은 궁정적 가치관 전체에 대한 짙은 회의를 수반한다. 비록 아무도 ꡔ성배 탐색ꡕ에서처럼 영적 기사도에 비추어 세속 기사도를 공공연히 정죄하지는 않지만, 아더는 모르드레드의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을 요구하며 만일 자신이 패한다면 그 또한 신의 심판이리라고 공언한다. 그리고 결국 아더의 창에 찔린 모르드레드의 상처에는, 예언되었던 대로,46) 신의 진노의 표징인 저녁 햇살이 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가치 질서의 붕괴는 이렇듯 맹목적인 정념들과 통제되지 않은 사욕들의 노출로 이어져 파멸을 부르게 되거니와, 거기에는 단순히 인간적인 맹목성 이상의 것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가령, 아더왕이 자신의 몰락을 예견하고 또 죄에 대한 신의 심판을 각오하면서 모르드레드와의 결전을 고집한다고 할 때, 그는 맹목적이기는커녕 너무나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가 고집을 꺾고 랑슬로에게 지원을 요청했더라면 사태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든가 하는 것은 순전히 논리적인 가능성에 불과하며, 결전에 앞서 그가 꾸는 꿈은 그러한 가능성을 배제한다. 꿈 속에 나타난 운명의 수레바퀴는 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돌아 그를 메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후반부에서 엄습하기 시작하는 것은 숙명의 분위기이다. 작품의 전반부를 지배하는 정념들이 당사자의 의지를 넘어서는 불가항력으로 그려진 데 이어, 후반부에서는 인간의 의지와 지각을 초월하는 신적인 예정과 심판이라는 개념이 내비친다. 아더왕은 이미 오래 전의 꿈을 통해 자신이 낳은 사생아로부터 해를 당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바로 모르드레드라는 사실은 충격적인 깨달음으로 말해지며,47) 아더왕과 모르드레드의 결전지가 될 살리스뷔리(솔즈베리) 평원의 선돌에 오래 전부터 새겨져 있던 메를렝의 예언은 치명적인 대결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낸다. 그리고 보면, 정념이든 숙명이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며, 이처럼 인간의 한계와 무력함이 부각되는 것은 앞에서 지적했듯이 아더왕 궁정이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순치력을 상실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제 세계는 다스려지지 않는 낯설음이며 인간의 내면 또한 그러한 것이다.



3. 아더왕 세계의 종언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아더 왕국의 몰락 원인은 결국 아더왕의 궁정으로 표상되는 가치 질서가 더이상 초자연적 외부 세계나 궁정이라는 내부 세계를 다스리는 규범으로서 존속하지 못하게 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 질서는 비단 허구적인 세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당대 사회가 표방하던 중요한 이데올로기들 중의 한 가지를 반영하는 것이고 보면, 아더 왕국의 몰락이란 단순히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 이상의 의의를 갖는다. 더구나, ꡔ아더왕의 죽음ꡕ과 더불어 아더왕 문학의 전성기도 끝난다는 사실은 그것이 분명 당대적 현실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ꡔ아더왕의 죽음ꡕ이 씌어지던 1230년경의 현실 사회에 일어난 변화란 어떤 것이었던가? 그것은 봉건 제도의 쇠퇴, 왕권 강화, 귀족 계급의 위축 등으로 간략히 지적될 수 있거니와,48) 그러한 현상들의 배후에 있는 좀더 중요한 변화는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의 갈등과 대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그리고 실은 아더왕 문학 전체가, “이데올로기들의 교차로(les carrefours idéologiques)”로서, 당대인들의 가치관 및 사고 방식에 일어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49)

주지하듯이, 12세기 후반에 시작되는 이른바 봉건 제2기에는 기사들이 귀족 계급으로 자리잡는 봉건적 사회 구조가 정착되는 동시에 그 피라밋식 인적 관계에 근거한 권력 집중을 통해 왕권 강화가 일어난다. 이를 정당화하는 방편으로 채택된 것이 흔히 정치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augustinisme politique)라고 불리우는 그리스도 교회의 국가관 즉 정치란 신국(神國) 건설을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 생각으로, 샤를마뉴를 중심으로 하는 초기의 무훈시들은 이처럼 교회적 이데올로기로써 봉건 사회를 다스리는 예를 잘 보여준다. 왕은 현실적으로는 봉건적 세력 구조 내에서 ‘대등한 자들 중의 일인자(primus inter pares)’이지만 이념적으로는 신적 권세의 중개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며, 따라서 봉건 영주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힘의 논리에 앞서 신의 뜻에 대한 순종의 의무이다. 또한, 이러한 체제 내에서 왕이나 기사들의 소임은 교회를 수호하고 약자들을 보호한다는 종교적인 견지에서 비로소 정당화되는 것으로, 이렇듯 봉건 전사 사회가 그리스도교화되는 것은 크게 보아 교회 개혁의 여파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봉건적 이데올로기와 교회적 이데올로기는 현실적으로 융화되기 어려웠으니, 그러한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세속적인 절충안으로 등장한 것이 아더왕 소설들을 통해 표출되기 시작한 궁정적 이데올로기(idéologie courtoise)이다. 특히 그것은 교회 개혁의 파급과 새로운 여건 변화들로 인해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된 기사 계급의 방어 기제로서, 아더왕 문학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구현하는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50) 아더왕 문학이 씌어진 시기가 기사 계급의 실제적 전성기보다 다소 늦은 것도 이로써 설명이 될 터이다. 다시 말해, 아더왕 문학이 그려 보이는 기사도의 이상은 다분히 회고적인 이상이며, 그리하여 그것은 아득한 전설의 아더왕 세계를 배경으로 하여 그려지는 것이다.51)

약화되어가는 기사 계급의 이상이 투영된 이같은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의의는 그것이 봉건 전사들의 윤리를 승화시키되 어디까지나 세속성의 영역에 머물려 했다는 데 있다.52) 그것은 봉건적 힘의 관계를 윤리적 관계로 고양시키는 동시에 그리스도교적 덕목들을 세속적 덕목들로 탈(脫)신성화함으로써, 양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였으니, 그러한 질서의 기본적인 준거는 개인의 가치이다.53) 왕이 봉건 세력들을 제압하고 주군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나 영적 권세의 대변자가 되는 것은 “예모, 고귀함, 미덕, 관후함(corteisie, noblesce, vertu, largesce)”54) 등 그 자신의 가치(valeur) 덕분인 것이다. 이처럼 개인의 가치를 사회적 관계의 기초로 삼는 사회에서 개인은 자기 실현과 집단 소속이라는 상반된 의지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게 되며, 또한 주군과 봉신 간의 관계는 단순히 강자와 약자 간에 맺어지는 봉사의 교환 관계나 신적인 위계질서 내의 상하 관계라기보다는 상호존중과 우의의 관계가 된다. 그리하여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이 공히 추구하게 되는 가치의 핵심은 ‘우의(amor)’나 ‘명예(onor)’라는 말로 표현되는 윤리적․심미적 이상으로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55)

하지만, 궁정적 이데올로기가 노정하는 세계는 더이상 단순명료한 세계가 아니다. 초기 무훈시들의 세계가 확신에 찬 세계 즉 권세는 신으로부터 오고 주군과 봉신 사이에는 완벽한 합의가 이루어지며 모든 전쟁은 이교도에 대한 성전이 되는 세계였던 것과는 달리,56) 아더왕 소설들이 보여주는 세계는 막연히 마성을 띤 의문의 세계이며 궁정적 질서는 그러한 마성과 부단히 마주하여 재확립되어야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더왕 문학의 전성기인 12세기 후반에서 13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는 봉건적 무질서로부터 중앙집권적 국가 질서가 창출되는 대변혁의 시대인 동시에, 그러한 변혁이 수반하는 의문들 즉 세계와 인간과 사회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들을 해결해야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더왕 소설들은 현실적 변혁이 제기하는 의문들에 대한 다양한 답변 모색이며, 아더왕의 세계에서 경이로운 저세상이란 그러한 의문들이 상상 세계 속에서 초자연으로 전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더왕 문학의 대대적인 유행은 그 경이로운 이야기 자체의 매력뿐 아니라 이같은 문제의식의 추구에서도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궁정적 이데올로기는 현실 여건들에 기초한 확고한 이념 체계라기보다는 심미적으로 고양된 유토피아적 이상에 가까웠으니,57) 현실적으로는 취약성을 면하기 어려웠다.58) 궁정적 이데올로기가 구축되는 현장이었던 아더왕 문학은 그 한계와 소멸 또한 보여준다. 아더왕 문학의 효시가 된 12세기 중엽의 연대기들은 궁정적 이데올로기가 이룩한 드문 조화를 예시하지만, 그러한 이상은 세기말의 크레티엥 드 트루아에 이르면 이미 균열하기 시작한다. ꡔ에렉과 에니드ꡕ가 보여주는 바 사랑이라는 개인적 추구와 기사 사회에의 참여라는 집단적 추구 간의 조화로운 통합은 뒤로 갈수록 불가능한 것이 되어, ꡔ사자의 기사ꡕ에서 이벵이 로딘의 사랑을 되찾는 것은 잠정적 화해에 불과하며, ꡔ랑슬로ꡕ는 사랑을 얻은 랑슬로가 궁정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통해59) 근본적 딜렘마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다시 말해, 궁정은 외부 세계로 표상되는 다양한 원심력들을 포섭하는 질서로서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처럼 질서를 벗어나는 이질적인 요소들,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들로 가득 찬 세계의 진상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하여 ꡔ그라알 이야기ꡕ에서는 그 미지의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단초로서 그라알이 등장하게 되거니와,60) 이후 아더왕 소설들이 그라알이라는 의문의 기호를 중심으로 편극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라알의 등장과 더불어 아더왕의 궁정은 중심적 위치를 잃게 된다. 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더이상 아더왕의 궁정이 아니라 어부왕의 궁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라알을 그리스도교의 성유물로 해석하는 로베르 드 보롱 이후 모험의 중심은 점점 더 아더왕의 궁정에서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산문 ꡔ페르스발ꡕ에서 그라알의 모험을 성취한 페르스발은 아더왕의 궁정으로 돌아오는 대신 그라알 성을 계승하며, ꡔ페를레스보스ꡕ에서는 주인공이 궁정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아더왕이 그라알 성으로 순례를 떠난다. 또한 ꡔ성배 탐색ꡕ에서는 아더왕이 탐색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탐색의 성취는 브리튼을 떠나 머나먼 사라즈 땅에서 이루어지며, 탐색을 완수한 기사들 중 한 명은 궁정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귀환은 궁정의 질서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라알의 신비는 개개인의 영혼에 밝혀질 뿐 더이상 지상의 왕국이라는 황무지를 회복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아더왕의 궁정이 구심력을 잃는 것은 기사 계급의 위상을 상대적으로 높이려는 의도의 소산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궁정적 가치 질서의 무력함이다. 아더왕의 궁정이 다스려야 할 미지의 외부 세계가 그리스도교적인 의미로 수렴될 때, 궁정적 이데올로기가 지향하는 세속적 가치들은 사실상 힘을 잃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당시의 영성적 분위기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으니, 종교적 진정성과 내면성이 차츰 확대됨에 따라, 계시된 진리와 그에 위배되는 세속적 가치들과의 애매한 공존은 더이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61) 다시 말해, 궁정적 이데올로기는 교회적 이데올로기를 대신하여 봉건적 무질서를 다스리는 세속 질서를 수립하려 하였지만, 결국에는 신학적 차원의 결여로 인해 파산한 것이라고 하겠다. ꡔ랑슬로-그라알ꡕ 연작은 이같은 상호대립적인 가치들의 공존에서 출발하여 그것들이 갈등과 파탄에 이르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62) 세속적 모험의 세계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성화시킨 것은 말하자면 궁정적 이데올로기가 봉착한 난국으로부터 ‘위쪽으로의 탈출’을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거니와,63) 남겨진 세계 즉 더이상 초월적 가치에 의해 지탱되지 않는 세계는 무질서의 현장이 될 수 밖에 없다.64) 아더왕과 제후들 사이에는 이상적인 합의 대신 왕의 독단이 지배하고, 국가보다는 가문의 이해 관계가 우선되는 등, ꡔ아더왕의 죽음ꡕ이 보여주는 세계는 힘의 논리가 횡행하는 세계이다. 물론 이같은 봉건적 무질서가 당대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행을 자초하는 왕의 전횡이나 대귀족 계급의 봉건적 세력 대결은 오히려 그 전도된 모습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의 왕권 강화 및 귀족 계급의 몰락을 증언해준다.

결론적으로 말해,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전반에 이르는 약 1세기 동안 아더왕 문학은, 기사 계급의 이상을 구현하는 동시에 급변하는 사회가 제기하는 의문들에 대한 다양한 답변을 모색함으로써 그들의 필요에 부응하였지만, 궁정적 이데올로기가 한계에 부딪치고 기사 계급이 몰락함에 따라 쇠퇴하였다고 할 수 있다.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그러한 한계 상황을 아더왕 세계의 종말이라는 허구를 빌어 표현한 것으로, 거기에서 우리는 한계에 이른 궁정적 이데올로기가 교회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변혁의 시대에 살며 나름대로의 이상과 현실 인식을 추구하였던 기사 계급의 모색은 그리하여 비극으로 끝이 난다. ꡔ아더왕의 죽음ꡕ의 결말에서 아더왕이 아발롱섬으로 실려갔다는 귀환설에 뒤이어 검은 사원(Noire Chapelle)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영면설이 기록되는 것은 그러한 사태의 반영인 셈이다. 아더왕의 전설은 이후로도 얼마든지 되풀이되겠지만, 아더왕은 이미 죽었고 기사들의 영광스러운 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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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hsler, R., Clôtures du cycle arthurien, Etude et textes, Genève, Droz, 1996.








RÉSUMÉ


La Mort le Roi Artu: La clôture du monde arthurien


Aerie Choi


La Mort le Roi Artu, la troisième partie du cycle triptyque Lancelot-Graal ou bien la cinquième et la dernière partie du Vulgate cycle, marque en effet la fin de l'histoire du royaume arthurien ainsi que de la littérature arthurienne. Comment se fait-il que les deux oeuvres précédentes du cycle(le Lancelot et La Quête del Saint Graal), qui montrent respectivement l'apothéose de la chevalerie terrienne et celle de la chevalerie céleste, se suivent de la chute tragique du royaume? Et comment se fait-il que cette fin de l'histoire se coïncide avec la fin de la littérature arthurienne elle-même? Car après cet achèvement du cycle, il n'y a guère que de radotages de ce qui fut déjà relaté.

Pour répondre à ces questions, nous avons d'abord examiné comment les textes arthuriens avant La Mort, depuis l'Historia Regum Britanniae jusqu'à La Quête, conçoivent la fin du royaume arthurien. Et puis, à la lumière de ces données antérieures, nous avons relevé les raisons pour lesquelles la cour arthurienne s'effondre: d'une part, la disparition des aventures après l'accomplissement du Graal lui fait perdre son pouvoir régulateur des relations entre la société des chevaliers et l'Autre Monde surnaturel; d'autre part, la déchéance de l'idéal courtois, y entraînant le conflit et le trouble, en prive de son fondement même. En un mot, le monde arthurien s'écroule parce que le système des valeurs qu'elle représente n'opère plus comme la norme de l'Autre Monde surnaturel ni du monde intérieur qu'est la cour.

Etant donné que ce système des valeurs correspond à celui que les gens de cette époque, surtout la classe chevaleresque, se donnaient pour idéal, il est évident que son déclin tient au changement foncier de la conscience. En conclusion de notre étude, nous avons recensé les idéologies concurrentes de l'époque pour en démontrer les nécessités et les défauts. L'idéologie courtoise, qui se veut être l'alternative à l'idéologie féodale ainsi qu'à l'idéologie ecclésiastique, essaie de poser la morale séculière qui puisse contrôler les forces brutales dans la société des guerriers sans recourir aux normes théologiques. Mais son autonomie s'avère précaire: par manque de la dimension spirituelle, il s'agit plutôt d'un idéal esthétique que de l'idéologie positive. C'est pourquoi la littérature arthurienne, l'expression par excellence de l'idéologie courtoise, arrive à son terme.




Key Words: 아더왕의 죽음, 그라알/성배, 궁정풍 사랑, 궁정적 이데올로기.


1) J. Frappier, Etude sur La Mort le Roi Artu, 1936, p.20, p.138에서는 연작 전체의 창작 연대를 1215-1235년으로, ꡔ아더왕의 죽음ꡕ의 창작 연대를 1230-1235년으로 보았다. 그러나, R. S. Loomis, ed., Arthurian Literature in the Middle Ages, 1959, Chap. 22: The Vulgate Cycle, p. 294, p.317에서는 프라피에도 연작의 창작 연대를 1215-1230년으로 보는 일반적 합의를 따르고 있으며, 그렇다면 ꡔ아더왕의 죽음ꡕ의 완성 연대는 1230년경이 될 것이다.


2) 영국왕 헨리 2세 (1133-1189)를 가리킨다.


3) 헨리왕은 1189년에, 월터 맵 (고티에 맙)은 1210년경에 사망했다.


4) Frappier, op. cit., 1936, pp.142-146.


5) D. Boutet, Charlemagne et Arthur, ou le roi imaginaire, 1992, p. 9-10에서는 아더왕 문학의 쇠퇴기를 13세기 중엽으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1230-1235년에 씌어진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아더왕 문학의 대단원으로 보기에 다소 이르지 않은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후 약 15-20년 동안 씌어진 ꡔ불가타 연작ꡕ의 앞부분, ꡔ불가타 이후 연작ꡕ, 산문 ꡔ트리스탕ꡕ 등은 사실상 아더왕 문학의 쇠퇴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J. Maurice, La Mort le Roi Artu, 1995, p.25에서는 ꡔ아더왕의 죽음ꡕ과 더불어 “한 문학적 전통이 끝나버린다”고 하였다.


6) 물론, 브리튼 설화가 갖는 이야기의 가능성이 크레티엥의 작품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크레티엥 이후에도 고벵이나 그 밖의 기사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양한 운문 소설들이 씌어졌으며 (이 운문 작품들에 대해서는 R. S. Loomis, op. cit., Chap. 28: Miscellaneous French Romances in verse, pp. 358-392 참조. 총 18편 중에서 8편이 ꡔ아더왕의 죽음ꡕ 이전에, 4편이 그것을 전후한 시기로부터 1250년 사이에, 그리고 나머지 6편은 13세기 중반 이후에 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문 소설로는 그라알의 모험을 다른 많은 모험들의 일환으로 포섭함으로써 ꡔ랑슬로-그라알ꡕ에 대해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려 한 산문 ꡔ트리스탕ꡕ 같은 작품도 씌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들은 아더왕 문학의 그리스도교화 및 역사화에 견줄 만한 일관된 노선을 찾지 못하여, 뒤로 갈수록 작품의 구심력을 잃고 산만해진다.


7) 앞의 주에서 언급되었던, 크레티엥 이후 운문 소설들이 대개 그렇다.


8) 불가타 연작의 처음 두 작품들인 ꡔ성배 사화ꡕ와 ꡔ메를렝ꡕ은 시기적으로는 ꡔ랑슬로-그라알ꡕ 이후에 덧붙여진 것이지만, ꡔ메를렝ꡕ은 로베르 드 보롱의 작품을 답습한 것이고 ꡔ사화ꡕ는 로베르의 ꡔ조셉ꡕ과 ꡔ랑슬로-그라알ꡕ 중 ꡔ탐색ꡕ의 요소들을 종합한 이야기이므로 새로운 전개라고는 보기 어렵다. 한편, 이러한 시간적 역행은 ꡔ랑슬로-그라알ꡕ뿐 아니라 산문 ꡔ트리스탕ꡕ에 대해서도 일어난다. ꡔ불가타ꡕ 및 ꡔ불가타 이후ꡕ 연작이 나온 뒤로 편작(compilation)이 아닌 거의 유일한 작품인 ꡔ팔라메데스ꡕ 역시 트리스탕의 아버지 세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9) 1235년경 완성되었을 ꡔ불가타 연작ꡕ에 이어, 1230-1240년경에는 ꡔ불가타 이후 연작ꡕ이 씌어졌다. ꡔ불가타 연작ꡕ에서 ꡔ랑슬로ꡕ를 제외한 부분들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새로운 연작은 불어 사본으로는 ꡔ메를렝ꡕ 이외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15세기 영국 작가 토마스 맬로리의 번안이나 스페인 및 포르투갈의 사본들을 통해 어렴풋이 재구성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연작들은 중세인들의 이른바 대요(somme) 취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13세기 중반 이후 아더왕 문학은 여전히 유행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이러한 대요들의 편작에 그친다.


10) ꡔ아더왕의 죽음ꡕ은 J.Frappier, La Mort le Roi Artu, Droz, 1964로 편집되었다. 현대어역으로는, G. Jeanneau, La Mort du Roi Arthur, UGE, 10/18, 1983; M.-L. Ollier, La Mort du Roi Arthur, UGE, 10/18, 1992; S.Monique, La Mort du Roi Arthur, Champion, 1991 등이 있다.


11) 기원전 약 1100년경.


12) 조프리는 아더왕의 사망연도를 주후 542년이라고 명시하였으며, 우아스도 이를 따랐다.


13) 아더왕의 치세 역시 대영주들을 제압하기 위한 내전과 색슨족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 아일랜드 원정과 고올 원정 (조프리는 아더왕이 첫번째 원정에서 아일랜드와 아이슬랜드를, 두번째 원정에서 노르웨이와 ‘고올’을 정복했다고 하는 반면, 우아스는 첫번째 원정에서 아일랜드와 고틀랜드를, 두번째 원정에서 ‘프랑스’를 정복했다고 한다), 로마와의 전쟁과 모르드레드의 반역으로 인한 내전 등 전쟁의 연속으로 기술된다. 연대기에서 오히려 예외적인 것은 평화기여서, 아일랜드 정복 후에 “12년간의 평화”를 누렸다고 이야기되는데, 그 시기 동안 궁정 예법이 수립되고 아더의 명성의 땅끝까지 퍼져나갔다든가 (조프리) 혹은 온갖 경이로운 일들이 일어났다든가 (우아스) 하는 간략한 언급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기록되지 않는다.


14) 로마의 동맹국들이 거의 모두 이교 국가들이며, 따라서 브리튼 대 로마의 대결은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와 동방 이교 세계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15) R. Trachler, Clôtures du cycle arthurien, 1996, p. 20.


16) 모르드레드와의 전쟁이 부자 간의 전쟁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모르드레드와 제휴한 것이 색슨족을 위시한 이교도들이라는 사실은 다시금 아더의 정당성을 지지한다.


17) 주 13 참조.


18) ꡔ에렉과 에니드ꡕ에서 ꡔ그라알 이야기ꡕ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모험들만 하더라도 12년이라는 기간 안에 전부 포함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9) 페르스발의 어머니에 따르면, 우터펜드라곤이 죽은 뒤 현사 (賢士, prudhomme)들은 유업을 잃었고 그들의 땅은 황폐해졌으며 가난한 자들은 더없이 비참한 처지가 되어, 달아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달아났으며 페르스발의 아버지도 서둘러 황무한 숲 (la Gaste Fôret)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20) 페르스발에게 아더왕 궁정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숯장수에 따르면, 아더왕은 전군을 이끌고 섬들의 왕 리옹 (Rion)과 싸워 이겼고, 왕의 동지들은 제각기 자기 성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21) 그 밖에, 고벵이 오른팔과 주먹을 잃게 되리라는 저주도, 그것을 말하는 자가 다분히 경이로운 저세상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예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2) 그라알 모험의 완수와 더불어 마가 사라지고 따라서 모든 경이로운 모험들이 종식된다는 말을 뒤집으면, 모험은 마에서, 마는 그라알 모험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된다. 즉, 아더왕 세계에 일어났던 경이로운 모험들은 그라알로 인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문 ꡔ페르스발ꡕ의 작가는 마의 종식을 말할 뿐, 그 시발에 관해서는 명백히 말하지 않는다.


23) 프랑스 정복은 압제자로부터의 해방으로 그려지며, 로마 황제나 모르드레드와의 전쟁에서는 적들이 이교도와 동맹을 맺고 그리스도교와 멀어졌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24) 아더의 피신처인 아발롱과 ꡔ요셉ꡕ에서 그라알 지기들의 목적지로 이야기되었던 아바롱 골짝이 동일한 장소를 가리키지 않으리라는 지적도 있으나, 아발롱(Avalon)과 아바롱(Avaron)을 상이한 지명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25) Esplumoir라는 말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며, 대체로 “새매가 깃갈이를 하는 새집”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메를렝은 새인지? 마리 드 프랑스의 ꡔ요넥ꡕ(Yonec)에서 보듯 저세상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 존재들은 종종 새의 형상을 띤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는 매우 흥미로운 세부이다.


26) 크레티엥의 ꡔ수레의 기사ꡕ를 참조하였건 아니면 이미 씌어지기 시작한 산문  ꡔ랑슬로ꡕ를 참조하였건 간에, ꡔ페를레스보스ꡕ의 작가는 그니에브르에 대한 랑슬로의 연모를 문제 삼으며, 그 ‘죄’ 때문에 랑슬로는 그라알을 볼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랑슬로는 자신의 사랑을 뉘우침 없이 고수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 랑슬로에 대한 그니에브르의 감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ꡔ페를레스보스ꡕ는 그니에브르에게 모성을 부여한 유일한 작품으로, 그녀를 연인으로 그린 다른 작품들이 모성에 언급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7) 후반부의 두 줄거리 중 아더왕에 관한 첫번째 줄거리가 이렇게 결말을 갖지 못하는 것도 작품의 알레고리적 의도에 비추어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더 왕국의 쇠망이 종말을 향해가는 이 세상의 운명을 나타낸다면, 그 이야기의 끝은 페를레스보스의 역정으로 상징되는 바 계시록의 종말론적 예정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브뤼셀 사본의 간기는 그 후에 아더왕이 치렀다는 수많은 전쟁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작품의 전체적 구도로 보아 그런 이야기들은 불필요할 것이다.


28) 중세인들이 섬이라고 하는 것은 꼭 물 가운데 있는 섬만이 아니라 따로 떨어져 있는 외진 지역도 가리킨다.


29) 글래스턴베리 사원에서 아더왕과 왕비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1191년의 일인데, 이는 플랜타지네트 왕가에서 아더왕의 귀환에 대한 “브리튼족의 희망”을 무산시키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30) 이 두 가지 결말은 각기 인도-유럽 신화의 영구회귀적 시간관과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적 시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Philippe Walter, in La Mort le Roi Artu, col. 《Parcours critique≫, éd. E.Baumgartner, 1994).


31) ꡔ랑슬로ꡕ의 마지막 부분인 ꡔ아그라벵ꡕ에서도, 모르드레드가 아더왕의 사생아이며 언젠가 그가 원탁의 영광을 파괴하리라든가 땅을 황폐하게 하고 사람들을 죽게 하리라는 예언들, 또 그와 아더왕이 서로 죽이게 되리라는 암시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ꡔ아그라벵ꡕ의 이런 대목들은 ꡔ아더왕의 죽음ꡕ에 비추어 가필된 것으로 추정된다(J. Frappier, op. cit., 1936, p.34-37).


32) 작품 서두에서 아더왕의 시대는 원탁의 기사들이 전례없는 영광을 구가하는 시대로 말해지지만, 작품 중반에 이르면 뜻밖에도 그것은 혈육 상잔이 횡행하는 시대로 성토된다.


33) 서두에서, 아더왕은 고벵에게 성배 탐색 동안 얼마나 많은 기사들을 죽였는가를 물으며, 특히 그 중에 보드마귀스 (Baudemagus)왕이 있었다는 말에 비탄을 금치 못한다. 이렇듯 유독 부각되는 보드마귀스왕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는 경이로운 저세상의 왕이며, 따라서 그의 죽음은 저세상 또한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보는 평자도 있다(J. Maurice, op. cit, 1995, pp. 45-46).


34) 아더왕은 그처럼 ‘경이로운’ 광경은 본 적이 없다고, 외관이 그처럼 아름다우니 성안에 아무리 값진 보화가 그득하다 해도 놀라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35) 고벵은 그 배가 겉보기만큼 속도 아름답다면 ‘경이로운’ 일이 되리라고, 모험이 다시 시작된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라고 말한다. 앞의 주 34에서도 보았듯이, 이처럼 작중인물들이 외관과 내실을 비교하여 말하는 것은, 이야기가 시사하는 기대와 실제와의 거리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36) 이렇게 본다면, 아더왕 궁정의 질서란 모험들을 통해 수립되는 것인데, 모험이란 초자연적 무질서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그 타파를 목표로 하므로, 아더왕의 궁정의 질서란 본질상 그 자체의 종말을 향하게 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Boutet, op.cit., 1992, p.463).


37) 이러한 설정은 산문 ꡔ페르스발ꡕ부터이며, 실제로 산문 ꡔ페르스발ꡕ에서도 셍-미셸 괴물의 에피소드가 빠져 있다.


38) 랑슬로는 더이상 왕비와의 관계를 감추려 조심하지 않아 주변의 의심을 일으키며, 왕비 또한 랑슬로에 대한 질투를 억제하지 못한 나머지 그를 궁정에서 쫓아버리는 등, 사랑은 다시금 반사회적인 요인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작가는 이 대목에서 트리스탕의 이야기를 기본 플롯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왕비를 비난하는 보오르의 입을 빌어 “사랑 때문에 죽은지 채 5년도 못 된” 트리스탕의 예를 들면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면 꼭 그 때문에 죽고야 만다”고 사랑의 폐해를 강변하기도 한다. 또한, 랑슬로에 대한 에스칼로 아가씨의 사랑이나 작품 후반부에서 고벵에 대한 벨로에 부인의 사랑 역시 죽음을 자초하는 파괴적인 정념으로 그려진다.


39) 앞에서 언급했듯이, 모르간은 아더왕을 자신의 성으로 유인하여 랑슬로가 자신과 그니에브르와의 관계를 그린 그림들을 보게 한다.


40) 아바를랑은 고벵을 독살하려고 사과에 독을 넣는다. 그러나 왕비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독사과를 가에리스에게 주고, 죽은 가에리스의 형제 마도르는 복수를 요구한다. 이 에피소드는 뒤에서 랑슬로가 실수로 가에리에트를 죽이고, 가에리에트의 형 고벵이 복수를 요구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가에리스/가에리에트라는 이름의 유사성에도 주목할 만하다). 이 관계를 곰곰히 들여다보면, 애당초 독살 시도의 표적이 될 만큼 증오를 산 것은 고벵 자신이라 할 때, 증오와 폭력과 복수가 순환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1) 전반부 에피소드들의 구성은 아더왕의 궁정에 틈입한 악의를 한층 부각시켜준다. 즉, 그것은 랑슬로의 불륜과 그 발각까지의 과정을 큰 대칭 구조로 하여, 랑슬로와 에스칼로 아가씨의 만남과 그 결말, 랑슬로에 대한 그니에브르의 의심과 그 해소 등의 대칭 구조들을 겹겹이 포개넣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 오게 되는 것이 아더왕의 모르간 성 방문과 그니에브르의 독사과 사건이다. 요컨대, 이 모든 일들의 핵심에 있는 것은 악의와 증오인 것이다. 한편, 그니에브르의 독사과 사건에 대해서는 좀더 심층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즉, 크레티엥의 ꡔ수레의 기사ꡕ에서 그니에브르가 저세상으로 납치당하는 사건(이 에피소드의 출처는 크레티엥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을 페르세포네 납치라는 신화적 원형에 비길 수 있다면, 그니에브르의 사과란 풍요의 상징이라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사과에 독이 들었다는 것은 이 세계 전체의 멸망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이제 저세상에는 경이로움 대신 악의와 멸망의 징조만이 남은 것이다.


42) J.Frappier, op.cit, 1936.


43)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고벵은 그것을 자신의 묘비명에 새겨달라고 부탁한다. “여기 무절도함 때문에 랑슬로의 손에 죽은 고벵이 누웠노라”고.


44) 아더왕이 죽었다는 모르드레드의 말에 속아서 그에게 신종선서를 한 봉신들이 아더왕의 생환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더왕의 편으로 돌아서지 못하는 것도, 모르드레드가 그들에게 요구한 봉신 관계가 여타의 봉신 관계에 대해 우선권을 갖는 homme-lige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봉건 제도의 세부적인 점까지도 모르드레드의 반역 수단이 된 것이다.


45) ꡔ아더왕의 죽음ꡕ에서 왕과 모르드레드의 관계는 드물게 암시되는 정도이다가, 모르드레드의 반역 후에야 확실히 밝혀진다. 모르드레드가 아더왕과 로트왕의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그를 잉태한 밤에 꾸었다는 꿈 등에 대한 간접적 언급과 그가 왕국의 몰락을 가져오리라는 예언 등은 ꡔ아그라벵ꡕ에 가필되며(앞의 주 31 참조), 로트왕의 아내가 아더왕의 누이라는 사실의 명확한 지적, 그들의 관계 및 아더왕의 꿈에 대한 직접적 기술, 그리고 사생아를 죽이려는 왕의 시도와 모르드레드의 생존 등은 ꡔ메를렝ꡕ에 가서야 나타난다. 하지만, 모르드레드가 아더왕의 사생아라는 사실은 ꡔ죽음ꡕ만으로도 알 수 있고 ꡔ아그라벵ꡕ에서 대체로 밝혀지는 그 대체적인 전말은 ꡔ죽음ꡕ 작가의 의도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6) 이 예언 역시 ꡔ아그라벵ꡕ에 가필된다.


47) 또한 ꡔ메를렝ꡕ에서는, 아더왕이 모르간과 관계한 것이 그녀가 자신의 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였다고 이야기된다. 이처럼, 비록 부지중에 지은 죄일망정 죄에 대해서는 심판이 따른다고 한다면, 인간은 불운(mésaventure)을 자초할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무력함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ꡔ불가타 이후 연작ꡕ(주 9 참조)에서 한층 심화되어, 위트 사본 ꡔ메를렝ꡕ에서는 모든 불행의 시작이 원인불명의 ‘고통의 일격(Coup Douloureux)’에 있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날아온 창에 맞아 죽어가는 기사, 그와의 약속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복수의 사명, 막다른 상황에서 휘두른 내력 모를 칼 때문에 무너지는 성과 황폐해지는 땅 -- 이 모든 것은 그것들을 초래하는 당사자의 의지가 전혀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당하게 부과되는 범과이다. 일찍이 ꡔ그라알 이야기ꡕ에서 처음 등장한 황무지의 모티프는 이제 한 마디 물음으로 진실과 질서와 생명력을 되찾기에는 너무 큰 의문이 되어버린 것이다. ꡔ불가타 이후 연작ꡕ의 ꡔ아더왕의 죽음ꡕ에 대해서는 Fanni Bogdanow, 《La Chute du royaume d'Arthur: Evolution du thème≫, in Romania 107, 1986, pp.504-519 참조.


48) J. Maurice, op.cit., pp.7-15.


49) 이하의 논의는 주로 D.Boutet, op.cit., 1992와, 같은 저자의 ≪Carrefours idéologiques de la royauté arthurienne≫ in Cahiers de civilisation médiévale, XXVIII, 1985, réimp. in La Mort le Roi Artu, col. ≪Parcours critique≫, éd. E.Baumgartner, 1994 및 ≪Arthur et son mythe dans La Mort le Roi Artu: visions psychologique, politique et théologique≫, in La Mort du Roi Arthur ou le crépuscule de la chevalerie, éd. J.Dufournet, 1994를 따르면서, J.Flori, L'Essor de la chevalerie, Droz, 1986 등을 참조하였다.


50) 장 플로리는 당시 기사 계급에 위협적이었던 요소들로 영적 기사도를 고취하는 동시에 세속 기사도를 폄하하였던 교회의 양가적 태도 외에,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 전쟁 기술의 발달, 왕들의 사병 고용 등을 꼽고 있다. 그리하여 “사방으로 위협당하는 기사 계급은 이데올로기로 도피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속어 문학 작품들로 표현되었으니, 이들 작품은 주로 기사 계급을 위해 씌어진 것이었다.”(J.Flori, op.cit., p.336).

50) 장 플로리는 당시 기사 계급에 위협적이었던 요소들로 영적 기사도를 고취하는 동시에 세속 기사도를 폄하하였던 교회의 양가적 태도 외에,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 전쟁 기술의 발달, 왕들의 사병 고용 등을 꼽고 있다. 그리하여 “사방으로 위협당하는 기사 계급은 이데올로기로 도피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속어 문학 작품들로 표현되었으니, 이들 작품은 주로 기사 계급을 위해 씌어진 것이었다.”(J.Flori, op.cit., p.336).

   물론, 아더왕 문학이 누구를 위해, 누구에 의해 씌어졌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가령, 쾰러는 아더왕 소설들이 봉건 제2기에 들어 영락하기 시작한 하급 귀족들의 소외와 재통합이라는 문제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보는가 하면, 부테는 왕권 강화에 대한 대영주들의 반동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D.Boutet, op.cit., 1992, p.176). 문학 작품들에 나타나는 이데올로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논하기 위해서는 각 작품의 배경과 작가의 의도를 알아보아야 할 터이지만, 일반적으로 보아 아더왕 소설들이 기사 계급을 위해 씌어졌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또, 그 작가들이 성직자들(les clercs)이었다고는 해도, 성직자들 역시 대개는 귀족 기사 계급 출신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터이다.


51) Ibid., pp.340-341.


52) 이같은 세속성은 교회 개혁 이래 촉진된 세계의 탈신성화, 샤르트르 학파를 위시한 자연주의 철학의 등장 등으로 나타나는 이 시대의 전반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12세기와 13세기초의 또다른 특징은, 비록 이단들처럼 정면으로 로마 교회에 대립하지는 않을지언정 로마 교회로부터 해방되고자 하였던 지적․윤리적 사조의 유행이다. 이것이 이른바 궁정적 사조이며, 그것은 다시금 영적 조류들과 합류하게 된다.” D.Boutet, op.cit., 1992, p.167.


53) 12세기는 개인화 및 내면화가 일어나는 시기이다.


54) Roman de Brut, vv.491-492.


55) 부테는 이같은 심미적 요소야말로 궁정적 이데올로기의 특징이라고 하였다. op.cit., 1992, pp.201-202, p.198, pp. 606-607.


56) 하지만 1200년경을 전후하여 무훈시에서도 이같은 세계관이 동요하기 시작하며, 이후로 무훈시가 점점 더 ‘소설적’이 되어가는 것은 그러한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Boutet, op.cit., p.611).


57) D.Boutet, op.cit., 1992, pp.203-210.


58) 그것이 그나마 13세기초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십자군 원정의 이상과 다른 한편으로는 오랜 인도-유럽 신화적 사고의 잔재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십자군 원정의 이상은 외부 세계와의 갈등에 앞서 내적 단결을 요구하며, 인도-유럽의 삼분기능적 체제에 근거한 왕권 신화는 아더왕 소설들이 그려보이는 이상적인 군왕 개념의 밑그림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Ibid., p.592.


59) 크레티엥이 자기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은 랑슬로가 탑에 갇혀 궁정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데까지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실제로 고드프루아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크레티엥 자신에 의한 것이든 간에, 궁정으로 돌아온 랑슬로를 보여주지만, 궁정에서 랑슬로와 그니에브르의 관계는 집단 내에서의 사랑의 실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애매한 것이다.


60) 그라알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부왕의 불수가 고침을 받지 못하고 땅이 황폐해진다는 것은 질문-의미-질서 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질문은 불가해한 현실의 배후에 있는 의미 내지는 진실을 노정하게 되고, 그 진실은 세계의 질서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61) 종교적 가치와 세속적 가치의 혼동을 가장 뚜렷이 드러내는 예가 궁정풍 사랑이다. 가령, ꡔ수레의 기사ꡕ에서 랑슬로는 끊임없이 성호를 긋고 예배에 참예하지만, 그니에브르에 대한 연모는 우상 숭배에 가까운 양상을 띤다. 그러나, ꡔ페를레스보스ꡕ나 ꡔ성배 탐색ꡕ에서는 그러한 사랑이 가차없이 정죄되며 랑슬로는 그라알의 모험에서 제외되는 것을 볼 수 있다.


62) 그래서, ꡔ랑슬로-그라알ꡕ 연작은 성직자들이 기사 계급 고유의 문화적 산물인 아더왕 문학을 이용하여 기사 계급을 회심시키려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63) Boutet, op.cit., 1992, p.572.


64) 제국의 소임을 영적인 것으로 보는 이른바 아우구스티누스주의적인 역사관에 비추어보면 그라알의 모험이 종결되고 왕국이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은 역사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것이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타락한 세상이 멸망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 즉 아우구스티누스주의적 역사관의 비관적 이면이다(Boutet, op.cit.,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