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오의 시(詩)의 창(窓)*1)

- 중세 로맨스 ꡔ오르페오 경ꡕ 연구





김 현 진






오르페우스, 올훼스, 오르페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일세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 가운데 ꡔ올훼스의  창ꡕ이란 일본 만화가 있었다. 러시아 혁명기를 배경으로 독일의 음악학교에서 만난 한 남장 여인(유리우스, 즉 에우리디케)과 두 남자(크라우스와 이자크)의 비극적 삼각관계를 그린 작품인데, 그 비극적 설정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올훼스의 창이라 불리는 음악학교 안 고탑의 창이다. 창가에서 밖을 내다본 남자가 처음 눈길이 마주친 여자와 오르페우스(Orpheus)와 에우리디케(Eurydice) 같은 비련에 빠진다는 전설이 있는 이 창에서 두 남자 주인공 크라우스와 이자크가 각각 시차를 두고 유리우스의 모습을 보고, 이것이 곧 세 사람 사이의 꼬일 대로 꼬인 답답한 사랑의 서곡이 된다. 문학과 신화를 멀리하고 산 일부 386세대에게는 이 만화의 ‘명’ 장면들이 혹 오르페우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일지 모르겠으나, 고독한 바이얼린 천재 크라우스는 사실 세상에 많고 많은 오르페우스 중 좀 특이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신화의 틀을 시로 옮겨 후세에 전한 로마 시인 웨르길리우스(Vergilius, 70-19 BC)와 오비디우스(Ovidius, 43 BC-AD 17)에서2) 그 숙명적 사랑의 원형을 서구근대사의 소용돌이에 다분히 감상적으로 휘감아 넣은 ꡔ올훼스의 창ꡕ에 이르기까지 지난 2천여 년간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수많은 창작과 개작, 번안의 모태가 되어왔기 때문이다. 굳이 ꡔ올훼스의 창ꡕ이 아니라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ꡔ마술 피리ꡕ(Die Zauberflöte, 1791), 장 꼭또(Jean Cocteau)의 영화 <오르페>(Orphée, 1950)처럼 오르페우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신을 거듭하며 새로운 독자와 청중 앞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고 (때로는 새로운 이름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예들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14세기 초에 씌어진 운문 로맨스 ꡔ오르페오 경ꡕ(Sir Orfeo)은 중세적으로 변형된 결말과 굴절된 의미구조를 통해 문학의 힘을 예찬하는 한편, 문학적 재현의 일면성을 문제 삼고, 문학의 시대적 가능성과 제약을 동시에 드러내 보여주는 일종의 메타포임(Meta-Poem)으로 읽힐 수가 있다.



ꡔ오르페오 경ꡕ과 ‘시적’ 정의


  ꡔ오르페오 경ꡕ은 대체로 웨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가 전하는 신화의 기본 골격을 따르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설정 면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 할 정도로 원전에 과감한 변형을 가한다. 때문에 신화에 대한 기억이 아련한 독자들조차 차이점을 감지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우선 주인공 오르페오는 오르페우스처럼 신의 피를 이어받은 시인이 아니라, 플루토 왕(King Pluto)과 주노 왕(King Juno)이라는 국적은 물론 성별까지 불분명한 조상을 둔 중세 소왕국의 왕이며,3) 그의 왕국 트라시엔스(Traciens)는 오르페우스의 고향인 발칸반도의 트라키아(Thracia)와는 거리가 먼 영국의 도시 윈체스터(Winchester)에 해당하는 곳이다(39-50행).4) 그리고 에우리디케에 상응하는 오르페오의 부인 휴로디스(Heurodis)는 풀밭에서 뱀에게 발목을 물려죽는 대신, 대낮에 오르페오 소유의 과수원에서 요정기사들에게 납치당해 남편 곁을 떠난다. 또 죽어서 명부(冥府)의 신 플루토(Pluto)가 지배하는 하계(下界)로 보내지는 대신 살아서 요정의 왕이 다스리는 미지의 세계에 유배된다. 물론 휴로디스의 구출을 가능케 하는 것은 로마신화에서처럼 ꡔ오르페오 경ꡕ에서도 심금을 울리는 주인공의 노래와 연주 솜씨이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뒤를 돌아보아 아내를 두 번 잃고 미친 여인들의 손에 찢겨 최후를 맞이하는 신화 속의 오르페우스와 달리 오르페오 경은 아내와 함께 무사히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와 왕위를 되찾고 해로하는 행복을 누린다.

  이 대단히 특이한 오르페우스 이야기에서 특히 독자의 흥미를 끄는 것은 거듭 강조되는 음유시가(minstrelsy)의 힘이다. 나무와 풀, 들짐승을 길들이고 플루토를 감화시킨 오르페우스의 시의 힘은 웨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의 원전에서 이미 강조된 바 있다. 하지만 ꡔ오르페오 경ꡕ의 작가는 리라(lyra)나 키타라(cithara) 반주에 맞추어 시를 낭송하는 고대 구전문학 전통을 하프 반주를 정점에 놓는 중세 음유시가 전통으로 환치하고, 시의 역할에 원전보다 더 큰 무게를 실어주었다. 주인공 오르페오는 일국의 왕이기에 앞서 듣는 이에게 “낙원의 기쁨”(þe ioies of Paradis)을 선사하는 신기(神技)의 하프주자로(37행), 중요한 순간마다 음유시인의 신분을 빌어 위기를 모면하고 목적을 성취한다. “불쌍한 음유시인”(a pouer menstrel)의 자격으로 요정의 왕을 찾아가 노래와 언변으로 아내 휴로디스를 되찾는가 하면(430행), 아내와 함께 1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후에는 호메로스의 ꡔ오디세이ꡕ를 연상케 하는 결말부에서 다시 “천한 삶을 사는 음유시인”(a menstrel of pouer liif)으로 변장해 섭정하는 집사의 충성심을 성공적으로 시험한다(486행). 즉 하프와 시가 칼과 권력보다 강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전설적인 시재(詩才)의 소유자인 로마신화의 오르페우스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중세 음유시가는 시와 음악 뿐 아니라 춤과 연기, 마술, 서커스까지 포괄하는 일종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산업이었다. ‘음유시인’(후기라틴어로 menestrallis, 고대불어로 menestrel)이란 호칭은 13세기 중엽 이후 “음악가―작곡가, 연주가, 가수―구연 시인, (흔히 반주를 사용하는) 이야기꾼, 광대, 저글러, 곡예사, 무용수, 배우, 마임배우, 모사가(模寫家), 마술사, 인형술사, 동물공연가”(musicians―composers, instrumentalists and singers―oral poets and tellers of tales [often to a musical accompaniment], fools, jugglers, acrobats and dancers; actors, mimes and mimics; conjurors, puppeteers and exhibitors of performing animals)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예술가, 연예인이라는 명칭으로는 완전히 포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부류의 기능인들에게 두루 사용되었다. 반면에 음악연주를 전제로 하는 현대적이고 제한적인 의미의 음유시인 개념은 16세기 이전까지는 일반화되지 않았다(Southworth 3면).

하지만 ꡔ오르페오 경ꡕ에서 강조되는 음유시가는 그 중에서도 특히 구연시인과 이야기꾼의 세계, 즉 시, 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작품의 서두와 말미에서 거듭 오르페오의 하프가 시작(詩作) 행위와 연계되기 때문이다. 즉 프롤로그에서는 하프 가락에 맞춰 구전되어온 옛 “노래들”(layes)을 글로 옮기는 당대 문사(文士, clerk)들의 문학적 작업이 “옛날에 일어났던 모험담”(auentours þat fel bi dayes)에 처음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었다는 브리튼(Briton) 음유시인들의 과거 업적의 연장선상에서 소개된다(1-4, 13-20행).5)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오르페오 경의 이야기가 그 내용을 노래로 만든 브리튼 족 “하프시인들”(harpours) 덕택에 전승될 수 있었음이 재차 강조된다.


브리튼 하프시인들은 그 후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경위를 듣고

그로부터 즐거운 노래를 지어

왕의 이름을 따 제목을 붙였다.

그 노래는 ꡔ오르페오 경ꡕ이라 불리니

노랫말 좋고 곡 또한 아름답더라.


Harpours in Bretaine after þan

Herd hou þod meruaile bigan,

& made her-of a lay of gode likeing

& nempned it after þe king.

Ƿat lay “Orfeo” is y-hote:

Gode is þe lay, swete is þe note. (597-602행)


작품의 본 줄거리를 감싸는 이런 액자적 장치를 통해 ꡔ오르페오 경ꡕ의 작가는 시인 오르페오와 브리튼 음유시인들 사이의 계보를 확립하고, 한 걸음 나아가 그 전설적인 음유시인들과 자신을 포함한 당대 시인들 간의 적통(嫡統) 또한 확보한다. 요컨대 원형적 인물인 오르페오, 전설 속의 브리튼 음유시인, 현실의 중세 문사를 잇는 연결고리를 만듦으로써 암묵적으로 자신이 시인 오르페오의 문학적 정통성을 이어받은 후예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ꡔ오르페오 경ꡕ의 작가가 음유시가에 대한 찬미를 통해 궁극적으로 찬미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일, 즉 시인으로서의 소명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ꡔ오르페오 경ꡕ에 나타난 바 시는 개인의 운명뿐 아니라 세상까지 변화시킬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시를 사랑하고 시인에게 관대한 군주는 그 공으로 어김없이 후한 보상을 받는다. 재주 있는 하프시인들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은 오르페오 왕은(“Siker was eueri gode harpour / Of him to haue miche honour”) 그 결과 빼앗긴 아내를 되찾을 수 있었고, 오르페오 부재중 (변장한 오르페오를 비롯해) 음유시인들을 꾸준히 후원한 집사장은(“Euerich gode harpour is welcom me to / For mi lordes loue, Sir Orfeo”) 덕분에 오르페오의 후계자가 되었다(27-28, 517-18행). 이 동화적이고 교훈적인 결말은 ꡔ오르페오 경ꡕ을 다른 오르페우스 이야기와 차별화하는 가장 큰 특징으로, 해피엔딩에 대한 갈구의 차원을 넘어 잠재적 독자/후원자들 앞에 오르페오와 그의 집사장을 문학후견의 본보기로 제시하는 효과를 지닌다.

하지만 이 행복한 시인 왕의 모습이 결코 중세사회에 널리 수용된 오르페우스 상은 아니었다. 예컨대 6세기 로마 철학자 보에티우스(Boethius, c. 480-524)는 ꡔ철학의 위안ꡕ(Consolatio Philosophiae)에서 철학의 여신의 입을 빌려 오르페우스 신화를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의 알레고리로 파악했다.


아! 밤의 맨 끝자락에 이르러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보았고, 잃었고, 죽였다.

이 이야기는

저 높은 낮으로 영혼을 이끄는

너희를 위한 것.

참지 못하고 지옥의 동굴로

눈길 돌리는 이는

그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아래를 보는 순간 잃고 마나니.


Heu, noctis prope terminos

Orpheus Eurydicen suam

Vidit, perdidit, occidit.

Vos haec fabula respicit

Quicumque in superum diem

Mentem ducere quaeritis

Nam qui Tartareum in specus

Victus lumina flexerit,

Quidquid praecipuum trahit

Perdit, dum videt inferos. (3권 12시, 49-58행)


즉 대명천지를 눈앞에 두고 뒤를 돌아보아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의 불행에서 구원의 순간 세속의 유혹에 굴복해 영생의 빛을 놓치는 어리석은 인간의 운명을 보았던 것이다.

오르페우스를 중세적으로 해석한 또 다른 대표적인 예로는 12세기 영국 철학자 존 오브 솔즈베리(John of Salisbury, c. 1115-1180)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의 저술 ꡔ정치가ꡕ(Policraticus)에서 이 신화 속의 트라키아 시인을 보에티우스만큼이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세속음악과 음유시가를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가운데 오르페우스를 “격정이나 허영을 … 표출하고, 목소리를 욕망의 노예로 팔아넘기며, 음악을 매춘의 매개로 전락시킨 사람”(he who . . . expresses passion or vanity, who prostitutes the voice to his own desires, who makes the music the medium of pandering), 다시 말해 자신이 경멸해마지 않는 음유시인의 원형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에우리디케를 두 번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한 오르페우스가 미친 여인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신화적 결말로부터 “이런 유형의 인간의 탄식에서는 대개 어떤 행복한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plaints of men of this type can expect for the most part no happy outcome)는 어찌 보면 엉뚱한 교훈을 끌어냈다(33면). 철학자이기에 앞서 성직자로서 중세교회를 대변하는 입장에 섰던 그는 결국 세속 예술을 싸잡아 비난하기 위해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차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ꡔ오르페오 경ꡕ은 남녀 주인공의 행복한 재회를 통해 바로 “이런 유형의 인간”의 목소리와 음악이 거꾸로 “행복한 결과”를 보장한다는 주제를 설파한다. 이는 솔즈베리의 예술관, 나아가 그가 대변한 중세교회의 예술관에 대한 반박으로 읽힐 수 있는데, 솔즈베리의 명성과 그의 저서의 인지도를 고려한다면 그저 막연하고 간접적인 반박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솔즈베리의 (혹은 솔즈베리 류의) 비판을 염두에 둔 것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솔즈베리에게 오르페우스의 비극적 죽음이 시적 정의(poetic justice)의 발현으로 여겨졌다면, ꡔ오르페오 경ꡕ의 작가에게는 반대로 오르페오의 궁극적 성공이 그런 정의가 존재한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이 시적 정의는 결국 시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이므로 ‘시적’인 정의, 즉 시를 통해 구현된 정의라 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보면 ꡔ오르페오 경ꡕ의 이름 모를 작가는 필립 시드니(Philip Sidney)보다 근 3세기 먼저 로맨스 형식을 빌려 그 나름의 ꡔ시의 옹호ꡕ(The Defense of Poesy)를 쓰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았던 셈이다.




뒤집힌 현실과 음유시인왕


물론 작품이 씌어진 14세기 초 영국사회에서 시의 위상이 이 정도로 높았을 리는 만무하다. 시를 쓰는 일이―더구나 평민의 언어요, 일상의 언어며, 따라서 산문의 언어인 영어로 시를 쓰는 일이―이 정도 힘을 발휘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시인이 직접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누가 보든 환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을 것이다. 즉 ꡔ오르페오 경ꡕ에 그려진 시와 시인에 대한 예찬은 다분히 비역사적이고 비현실적인 셈인데, 이 비역사적이고 비현실적인 예찬에 기발한 역사성과 나름대로의 논리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작품 속에서 현실인 오르페오의 세계와 초현실인 요정세계가 전도되었을 가능성이다.

ꡔ중세의 오르페우스ꡕ(Orpheus in the Middle Ages)라는 고전적 오르페우스 연구서의 저자인 존 프리드먼(John Friedman)의 주장처럼 “ꡔ오르페오 경ꡕ에 등장하는 요정세계는 사후세계도 지하세계도 아닌 인간세계와 병존하는 반세계이다”(The land of the fairies in Sir Orfeo is neither an afterworld nor an underworld. It is actually a counterworld which exists side by side with the world of man)(190면).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반세계는 오르페오의 세계보다 실제현실과 더 많이 닮아있는 구석이 있다. 음유시인들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오르페오의 왕국과 달리 요정세계에서는 현실에서처럼 가난한 하프시인이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러야하고, 변덕스런 군주는 약속한 상을 주기를 거부한다. 오르페오의 노래에 반해 무슨 청이든 다 들어주겠다던 요정 왕이 막상 오르페오가 휴로디스를 원하자 “어울리지 않는 짝”(a sori couple)이라며 난색을 표하다가(457-62면), “약속을 어기는 것”(a lesing of þi mouþe)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지적받고 나서야 비로소 휴로디스를 넘겨주듯이 말이다(463-68면). 이는 아무리 경솔한 약속일지언정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이 군주의 도리이자 책무인 로맨스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따라서 로맨스의 문법, 즉 현실과 구분되는 환상/허구 세계의 문법에 어긋나는 행동이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한편 음유시인으로 변장한 오르페오가 요정 성의 성벽 안쪽에서 목격한 광경은 요정세계의 고통스런 삶의 단면들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떤 이는 머리 없이 서 있었고,

어떤 이는 팔이 떨어지고 없었다.

어떤 이는 몸에 깊은 상처를 입었고,

어떤 이는 결박당한 채 미쳐 누워 있었다.

어떤 이는 무장하고 말 등에 앉아 있었고,

어떤 이는 식사하다 목 졸려 죽어 있었다.

어떤 이는 물에 빠져 죽었고,

어떤 이는 불에 타 죽어가고 있었다.

여자들은 해산 중이었는데,

몇몇은 죽었고 몇몇은 미쳐 있었다.


Sum stode wiþ-outen hade,

& sum non armes nade,

& sum þurth þe bodi hadde wounde,

& sum lay wode, y-bounde,

& sum armed on hors sete,

& sum astrangled as þai ete;

& sum were in water adreynt,

& sum wiþ fire al for schreynt.

Wiues þer lay on child-bedde,

Sum ded & sum awedde. (391-400행)


이 고통, 공포, 광기, 부조리에 가득 찬 삶과 죽음의 군상들은 병적이긴 하지만 (머리 없이 서 있는 이상한 사람을 제외하면) 오르페오가 사는 동화 속의 세계보다는 분명히 더 현실적이다. 작품이 잉태된 14세기 초 영국, 즉 유능한 왕이면서 정복자이자 폭군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1세(1272-1307년)와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그의 아들 에드워드 2세(1307-1327년) 치하를 거치면서 전쟁과 압제, 실정과 반역에 익숙해진 사회에서는 더구나 그 현실성이 배가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정의가 승리하고 꿈과 사랑, 행복이 영속하는 오르페오의 왕국은 현실로 보기에는 너무 이상적인 장소이다. 현실의 음유시인은 오르페오처럼 왕이 될 턱도 없고―물론 왕이 거지꼴을 하고 음유시인을 자처할 리도 없다―후원자로부터 오르페오와 그의 집사장이 베푼 것 같은 호의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또 (휴로디스가 납치된) 작고 아름다운 과수원이 딸린 그의 왕국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휘황찬란한 요정세계에 비하면 소박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현실세계의 왕인 오르페오는 자신보다 힘센 요정의 왕 앞에서 한낱 음유시인으로 전락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 두 왕국 사이에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면, 오르페오의 왕국은 그 세력에 있어 요정왕국의 지배를 받는 작은 영지에 불과하고, 오르페오는 지위상 요정 왕의 봉건 가신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셈이다.

이쯤 되면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진다. 다시 말해 작중에서 현실로 제시된 오르페오의 왕국이 초현실이고, 초현실로 제시된 요정왕국이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 게 마련인데, 이를 꼭 억측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오르페오의 왕국은 결국 로맨스 속의 현실세계이고, 로맨스는 장르의 성격상 사회현상이나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법이 드물기 때문이다. “궁정문학 작가들은 사회적 사실을 심하게 굴절시키는 까닭에 그들의 해석이 종종 현실 전도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courtly writers refracted the social facts in such a way that their interpretation often amounts to an inversion of reality)는 자끄 르 고프(Jacques le Goff)의 지적은 궁정문학의 범주를 넘어 중세 로맨스 일반에 적용될 수 있는 명제인바(129), 현실이 굴절되고 뒤집히는 것이 로맨스의 세계에서는 전혀 신기한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음유시인 오르페오가 요정 왕의 자비와 관대함에 자신과 아내의 목숨을 걸어야하는 상황이 현실이며, 그가 한 나라의 왕이 되어 시와 음악을 숭상하고 사랑과 의리가 통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초현실 내지 환상이고, 이 현실과 환상의 전도가 ꡔ오르페오 경ꡕ을 이해하는 관건이 된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전도된 현실, 특히 음유시인이 왕이 되는 현실이 꼭 역사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음유시인은 중세 영국사회에서―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실제 왕이 될 수는 없었지만, 늦어도 13세기 말부터는 왕이라는 대리호칭, 즉 라틴어로 ‘렉스’(rex), 앵글로노먼(Anglo-Norman) 프랑스어로 ‘르 로이’(le roy)라는 호칭을 지닐 수 있었다. 음유시인 중 소수 엘리트가 일정한 절차 및 의식을 거쳐 ‘음유시인왕’(rex menestrallorum 혹은 le roy des menestrels)으로 추대되어 주군인 국왕 혹은 귀족의 궁정에서 음유시인의 우두머리 격인 지위를 누렸던 것인데, 음유시인과 문장관의 역할이 분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들 음유시인왕은 곧 ‘문장관왕’(紋章官王, rex haraldorum)이기도 했다(Chambers 238-39면). 즉 음유시인으로서는 하프나 비엘(vielle), 트럼펫 등 특정 악기 연주에 기능을 지닌 예술가였지만, 문장관으로서는 “주군의 가문과 치적의 선전자”(propagandist of his lord’s ancestry and exploits)로 활동하고, 마상시합에서 사회자와 심판의 역할을 맡기도 했던 것이다(Southworth 65면).

에드워드 1세 치하였던 1306년 훗날 에드워드 2세가 된 에드워드 왕자의 기사서임식에는 많은 음유시인/문장관들이 참석했는데, 콘스탄스 불록데이비스(Constance Bullock-Davies)에 따르면 이들은 각자 출신 지역의 문장학 전문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사서임식에 모인 문장관들은 그들만으로 거의 전국의 기사들에 대한 통계자료를 국왕에게 제공할 수 있을 정도였다. 월터 르 로이 마치스는 스코틀랜드 접경의 문장관이었고, 르 로이 드루엣은 남웨일즈와 글로스터 지역, 코페니는 스코틀랜드, 브루언트는 중부지방의 문장관이었다. 존 드 몬호트는 몰드 출신 문장관왕으로 급여지불대장에 이름이 올라있지는 않지만, 1297년부터 왕실에서 보수를 받아왔다. 로버트 파버스는 필자가 기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영국 남부의 문장관이었다.


Between them the heralds at the knighting would have been able to provide the king with a knightly census of almost the whole of the country: Walter le Roy Marchis, herald of the Scottish border, le Roy Druet of the South Wales and Gloucester areas, Caupenny of Scotland, Bruant of the Midlands and John de Monhaut, a Rex Haraldorum from Mold, who, although not mentioned on the Payroll, had been on wages at Court since 1297. Robert Parvus, if I interpret the indications in the records aright, was herald for the south of England. (43면)


불록데이비스가 언급한 여섯 명의 음유시인 중 에드워드 2세 재위 중 음유시인왕으로 승격된 브루언트를 제외한 다섯 명은 모두가 현역 음유시인왕이었고, 이 중 서임식에 불참한 것으로 보이는 존 드 몬호트를 제외한 네 명은 당시 왕실 급여지불대장에 모두 ‘르 로이’라는 호칭과 함께 이름이 올라있다(3-4면). 예컨대 르 로이 드루엣은 문장학에 관한 한 남웨일즈와 글로스터의 왕이고, 르 로이 코페니는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것인데,6) 그렇다면 이들의 원조 격인 르 로이 오르페오(le Roy Orfeo)가 트라시엔스 혹은 윈체스터의 왕인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셈이다. 14세기 초까지 오르페오의 악기인 하프가 영국의 국민 악기로서 왕실 행사에서 각별한 위치를 점했고(28면), 에드워드 왕자의 기사서임식에 참석한 음악가/음유시인 중 하프주자의 수가 단연 많았으며(27면), 그 중 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음유시인왕 르 로이 코페니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77면) 더욱 그렇다.7)

오르페오를 실제 왕이 아닌 음유시인왕으로 본다면, 어떻게 음유시인이 왕이 될 수 있었는가, 왜 일국의 왕이 아내의 납치를 막을 수 없었는가, 그리고 왜 왕이 다른 왕 앞에서 천한 음유시인이 되어야했는가 하는 의문은 모두 자연스럽게 풀린다. 음유시인왕을 포함한 당대 일급 음유시인들은 “향사의 급여를 받고 마기스테르 혹은 몽씨르라고 불렸다”(they received a squire’s wage and were styled Magister/Monsire)는 것으로 보아, 장인이나 급이 낮은 하인들과 달리 젠틀맨 신분을 누렸음이 분명하다(Bullock-Davies 15면).8) 따라서 오르페오처럼 작은 과수원이 딸린 토지를 소유하고 충직한 집사 한 사람쯤 두는 것이 그들에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르 로이 브루언트의 경우는 실제로 요크셔(Yorkshire) 폰티프랙트(Pontefract)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1322년 랭카스터 백작(Thomas, earl of Lancaster)을 도와 에드워드 2세에 반기를 들었다는 죄목으로 토지를 몰수당하고 감금당하는 신세가 되기까지 했다. 브루언트가 몰수당한 토지는 공교롭게도 동료 음유시인왕 윌리엄 드 몰리(William de Morley)에게 주어진 것으로 되어있다(75-76면). 브루언트의 인생유전, 아니면 다른 어떤 (음유)시인의 그 비슷한 인생유전이 문학이라는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산업의 언저리에서 일정치 않은 수입과 후견인의 호의에 불안하게 삶을 기댄 채 일희일비하며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와 재능을 키워가던 이름 없는 문사, 예컨대 ꡔ오르페오 경ꡕ의 작가에게는 충분히 절실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물론 작가 자신이 음유시인이거나 음유시인왕이었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프롤로그에서 명시되고 문학사적으로 증명되듯 ꡔ오르페오 경ꡕ은 엄연히 문자 문화의 산물이며(1-4행), 오르페오에서 브리튼 하프시인으로 그리고 중세문사로 이어지는 계보가 말해주듯 음유시인이 작품 속에서 지니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실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원형적이고 상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맑게 개인 날9) 자신만의 공간―굳이 과수원이 아니라도 좋다―에서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읽다가 (혹은 옮겨 쓰다가) 밖을 내다본 한 시인―꼭 음유시인이 아니라도 상관없다―이 세상의 광막하고 비정함에 새삼 놀라 그 세상 대신 자신만의 작은 세계가 현실이 되고 우주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꿈속에서 자신이 오르페우스가 된 모습을 그려보았다면 어떨까. 죽은 에우리디케를 살림으로써 경직된 교회의 예술관에 대항해 문학예찬을 펼 수도 있었을 테고, 현실과 환상이 뒤바뀐 속에서 시의 힘을 한껏 부풀려 시인으로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요정세계라는 안전장치를 빌려 군주의 폭정을 고발하고 유한계급 출신인 문학후견인들의 무관심과 인색함을 비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르페우스가 못다 이룬 ‘시적’ 정의의 숙원을 이룬 오르페우스의 진정한 후예로서, 그저 남의 노래나 부르는 음유시인이나 남의 글이나 옮기는 필사가가 아닌 한 사람의 온전한 예술가요 문사로서, 문득 자신의 일에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불어넣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꿈에서 깬 뒤에는 자신이 쓴 왕관이 아직은 너무 초라함을 깨닫고 조금은 씁쓸히 상상의 나래를 접어야했을 것이다. 아니 꿈에서조차 요정 왕으로 상징되는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시인의 왕관이 찬란한 금빛을 발한 적이 있었던가. 오로지 시인만이 자연의 구릿빛을 금빛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던 시드니의 시대에도 시인의 삶은 금빛이 아니었고, 종교와 철학이 시로 대체되고 과학이 시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날이 오리라고 소리 높여 외쳤던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의 시대에도 대중의 취향과 결탁한 자본 앞에 시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시인의 왕관이 월계관이건 가시관이건, 중요한 것은 그의 문학예찬이 개인적인 몽상이나 자기정당화에 그치지 않고 당대 문학의 특징적인 성과, 거시적인 흐름과 연관되어 얼마나 역동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일 텐데, 이 점에 있어 ꡔ오르페오 경ꡕ은 시드니나 아놀드의 글 못지않은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14세기 르네상스?


여기서 잠시 오르페오의 이야기를 접어두고 ꡔ올훼스의 창ꡕ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 보자. 고탑의 창가에 기대앉은 크라우스가 창 밖에서 본 것은 무엇인가. 교정을 걷는 유리우스의 모습,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장을 하고 교정을 걷는 유리우스의 모습이었다.10) 즉 진짜 유리우스가 아니라, 남자의 옷을 빌려 입어 성적 정체성이 전도된 유리우스를 본 것이다. 이 창과 옷의 은유는 ꡔ오르페오 경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오르페오가 시의 창을 통해 내다본 것은 결국 옷을 바꿔 입은 세상, 즉 음유시인이 왕의 옷을 입고 왕이 요정의 옷을 입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휴로디스가 살아 돌아오고, 교회의 저주에 비틀거리던 ‘격정’과 ‘허영’의 시가 다시금 두 발로 일어선 현실 같지 않게 신명나는 현실이기도 했다. 이 시의 창에 열망과 탄식, 자부심과 자조(自嘲)로 굴절된 스테인드글라스를 달고 창밖 세상의 옷을 바꿔 입힌 것은 물론 시인이 한 일이다. 작품이 씌어진 14세기 초가 아직 대다수 상류층이 프랑스어로 씌어진 문학을 즐기며, 모든 공문서가 라틴어로 기록되던 시기였음을 감안한다면, ꡔ오르페오 경ꡕ의 작가가 보여준 시인으로서 자의식과 소명감, 그리고 그의 시를 관류하는 의미의 이중구조는 가히 놀라운 것이다. 하지만 이 즈음이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극도로 침체되었던 영어 문학이 중흥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때였음을 생각한다면, ꡔ오르페오 경ꡕ이란 메타포임의 출현은 또한 아주 시기적절한 것이기도 하다.

ꡔ오르페오 경ꡕ이 실린 오킨렉(Auchinleck) 필사본은 1330년대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18편의 운문 로맨스를 비롯해 40편이 넘는 문학작품이 여섯 명의 필사가의 손으로 기록된 당시로서는 대단히 방대한 앤솔로지였다.11) 로라 루미스(Laura H. Loomis)는 일찍이 이 필사본이 단일 편집자의 지휘 아래 공동제작된 것으로, 1330년대 런던에 영어 문학에 대한 상업적 수요와 초보적 형태의 출판업이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증거가 된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루미스의 이론은 후학들에 의해 수정ㆍ보완되면서, 중기영어 로맨스가 작품 속에서 흔히 설명되는 것처럼 단순히 음유시인의 구전 레퍼토리를 글로 옮긴 형태가 아니라 직업적인 문사에 의해 씌어지고 다듬어진 ‘문학적’ 작품이라는 주장이 학문적 설득력을 얻는 기틀을 마련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티모시 샹크(Timothy A. Shonk)가 문제의 필사본이 루미스의 주장처럼 한 필사실에서 협업 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필사의 70% 가량을 담당한 “제1필사가”(Scribe I)가 편집을 주관한 가운데 나머지 필사가들이 하청 받은 분량을 개별적으로 소화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라는 변형된 가설을 내놓아 이목을 끌었다. 샹크는 전문화된 필사실 혹은 서점의 ‘물리적’ 존재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지만, 1330년대 영국에 어떤 식으로든 문학에 대한 상업적인 수요가 존재했고, 오킨렉 필사본이 이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애초부터 한 권의 코덱스(codex)로 기획ㆍ제작되었으며, 제작과정에 수도원과 수도사가 아닌 세속 자본과 필사가들이 개입했다는 점에서는 루미스와 대략적인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러나 샹크의 논문에는 서적상과 편집자, 필사가만 있을 뿐 정작 중요한 작가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다. 루미스의 요지는 단순히 필사가들이 한 곳에 모여 노동집약적으로 필사본을 제작하는 상업구조가 14세기 초 영국에 존재했다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 겸 시인들 또한 필사가들과 비슷한 네트워크 속에서 일을 했고, “번역을 하고 시를 쓴 무명 인사들과 원문을 필사한 무명 인사들 사이에 분명하고 쉬운 구분이 있을 수 없다”(there can have been no hard and fast distinction drawn between the obscure men who translated and composed, and those who copied such texts as these)는 것인데(622), 샹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할 뿐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한다. 결국 루미스가 네 편의 오킨렉 로맨스12)에 쓰인 상투어구들의 얽히고설킨 차용구조를 분석해 도달한 결론, 즉 작가들이 (필사가들과 더불어) 시간적, 공간적으로 아주 근접한 곳에서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사고와 표현을 공유하며 활동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루미스는 한편으로 이 작가들의 작업과 그 성과물이 가지는 문학사적 가치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지만(626), 다른 한편으로 이들이 대부분 독창성과 재능이 부족한 “하청 문사”(literary hack)였음을 인정했다(608). 사실 오킨렉 작가들과 그들 보다 반백 년 젊은 초서(Geoffrey Chaucer) 세대 간의 문학적 성취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며, 그들이 양산한 운문 로맨스의 전형은 초서의 「토파스 경 이야기」(“The Tale of Sir Thopas”)에서 풍자와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ꡔ오르페오 경ꡕ은 18편의 오킨렉 로맨스 중 문학적 가치가 단연 돋보이는, 루미스조차 그 “참된 매력”(genuine charm)을 기꺼이 인정한 작품이다(607). 그리고 루미스가 간파한 오킨렉 정신, 즉 시인이며 때로 필사가였을 아직은 소박한 14세기 초 문사들의 문학관과 직업관을 절묘하게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오르페오의 시의 창에 굴절된 시인의 자화상은 오킨렉 필사본/앤솔로지의 내용이 기사 로맨스와 종교적인 글로 양분되어있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Bliss 652-53면; Loomis 605-606면) 늘 전사귀족(bellatores)이나 사제(oratores)의 논리를 전달하는데 만족해야했던 문사들이 이제 스스로의 논리를 구축하고 그 논리로 무장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더없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최근 오렌 폴크(Oren Falk)는 아들 없이 집사장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ꡔ오르페오 경ꡕ의 결말이 오르페오의 성공의 의미를 반감시킨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사실 ꡔ오르페오 경ꡕ 작가의 궁극적인 상속자요 후계자는 그의 혈통을 어어 받은 아들이나 직계자손이 아니라 초서, 가우어(John Gower), ꡔ가웨인 경과 녹색기사ꡕ(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의 시인처럼 그의 작가정신을 이어받은 후배 시인들이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오르페오의 진정한 상속자가 음유시가에 대한 그의 애착을 물려받은 집사장이었듯이 말이다. 아무리 선배들의 운율이 서투르고 수사가 거칠었을지언정, “영어 시형식과 영어 자체”(English verse forms and the language itself)를 제 자리에 올려놓은(Loomis 626) 그들의 공로가 없었다면 아마 후배시인들에게 그토록 찬란한 봄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중세영문학의 걸작들이 집중적으로 씌어진 14세기 후반을 우리가 14세기 르네상스라 이름 붙일 수 있다면, 그 르네상스의 시작은 어쩌면 반세기 먼저 험한 길을 닦은 ꡔ오르페오 경ꡕ의 작가와 그의 이름 없는 동료들로부터 찾아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대학교)






인용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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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l. [Georgica.] The Georgics. Trans. L. P. Wilkinson. Harmondsworth: Penguin, 1982.






ABSTRACT


Orfeo’s Stained Glass of Poetry: A Study of Sir Orfeo as a Meta-Poem


Hyonjin Kim


The Middle English romance Sir Orfeo can be read as a meta-poem presenting an elaborate defense of poetry and registering aspirations and anxieties of early fourteenth-century poets/scribes. It transforms the tragic love story of Orpheus and Eurydice into a happy celebration of secular poetry, in which the royal hero, metamorphosed into a poor minstrel, successfully wields the harp, not the sword, to rescue his wife from the grasp of a mysterious fairy king. At the same time, by implying the possible inversion of reality and alluding to the historical existence of king-minstrels, it questions the very privileged position it is claiming for poetry and exposes both the potentials and the limitations of  literary profession in late medieval society. Composed in the first quarter of the fourteenth century by a highly self-conscious poet, and endowed with simple but charming beauty rarely found in Middle English metrical romances, Sir Orfeo prepares for―and mightily anticipates―the later and greater achievements of Chaucer and his talented contemporaries, whose age one might properly dub as the fourteenth-century Renaissance in English literature.




Key Words: 로맨스,  메타포임, 문사,  음유시인, 전도, 초현실, 필사가, 현실, 14세기 르네상스.


1)* 이 논문은 2000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비 지원으로 씌어졌다.

1)* 이 논문은 2000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비 지원으로 씌어졌다.

(KRF-2000-037-AA0064)


2)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은 그리스ㆍ로마사회에 익히 알려진 문학적 모티프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가 아는 형태로 온전히 전하는 작품은 웨르길리우스의 ꡔ농경시ꡕ(Georgica)와 오비디우스의 ꡔ변신부ꡕ(Metamorphoses)뿐이다. Virgil 139-42면, Ovid 225-27, 246-47면 참조.


3) 오르페우스는 주로 서사시의 시신(Musa) 칼리오페(Calliope)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시신 폴힘니아(Polhymnia)를 그의 어머니로 보는 전통도 있다. 플루토와 유노(Iuno)를 오르페우스의 조상으로 제시한 것은 물론 신화와는 무관한 설정이다. 로마신화에서 플루토가 휴로디스를 납치한 요정 왕에 해당하는 인물이며, 유노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임을 알면서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 기막힌 족보를 꾸며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4) ꡔ오르페오 경ꡕ 인용은 Bliss ed., Sir Orfeo에 병렬 편집된 세 개의 이본 텍스트 중 오킨렉(Auchinleck) 본을 따르며, 본문에는 행수만 표기한다.


5) 5세기 중엽 앵글로색슨 족(Anglo-Saxons) 침입 이후 이민족에게 살 땅을 빼앗긴 영국(Britain) 원주민 켈트 족(Celts)은 웨일즈(Wales)와 코널(Cornwall) 변방으로 쫓겨 갔고, 일부는 바다 건너 프랑스 브르따뉴(Bretagne, 즉 Little Britain) 지방에 이주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브르따뉴에 정착한 켈트 족, 혹은 브리튼 족(Britons) 음유시인들은 고향에서 가져온 이야기 거리를 토대로 ‘레’(lai)라는 이야기 시를 지어 퍼뜨렸다고 전해지는데, 중세 프랑스 및 영국 서사문학의 상당수가 이 브리튼 소재(matière de Bretagne)를 원전으로 내세운다.


6) 르 로이 코페니의 경우 1290년 5월 1일자 급여지불대장에 실제로 “스코틀랜드의 코페니 왕”(King Caupenny de Scotia)으로 기록되어 있다(Bullock-Davies 78면에서 재인용).


7) 하지만 1307년 에드워드 2세 즉위 이후 궁정에서 하프주자의 입지는 급격히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Bullock-Davies 28면).


8) Magister와 Monsire는 영어로 Master에 해당하는 호칭이다.


9) ꡔ오르페오 경ꡕ은 중세시답게 화창한 오월의 정원(실은 과수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57-68면).


 10) 옷 바꿔입기(cross-dressing)는 ꡔ올훼스의 창ꡕ의 저자 이께다 리요꼬가 애용한 모티프였다. 이께다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ꡔ베르사이유의 장미ꡕ의 주인공 역시 남장 여인이다.


11) ꡔ오르페오 경ꡕ은 오킨렉, 할리(Harley) 3810, 애쉬몰(Ashmole) 61, 세 필사본의 형태로 전해진다. 이중 오킨렉에 실린 텍스트가 가장 시기적으로 이르고 완성도가 높아 원본에 제일 근접한 것으로 여겨진다. 할리 3810과 애쉬몰 61 필사본은 각각 15세기초와 15세기말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오킨렉 필사본에 대한 상세한 서지학적 설명은 Bliss를 참조할 것.


12) 루미스가 표본으로 삼은 네 편의 로맨스는 두 편의 서로 다른 ꡔ거이 오브 워릭ꡕ(Guy of Warrick), ꡔ레인브론ꡕ(Reinbroun), 그리고 ꡔ아미스와 아밀론ꡕ(Amis and Amilou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