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라(Novela, novella)의 의미 변천과 단편소설 장르의 형성





김 경 범




  한 집단의 언어에는 그들의 역사가 반영되기 마련이다. 역사에 수많은 측면이 존재하듯, 그 언어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만큼 다양한 삶의 영역에 개입하게 될 새로운 개념과 사물에 대한 표현을 벼려낸다.

- J. H. Terlingen1)




  현대 스페인어에서 노벨라(novela)는 중편 혹은 장편 소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가 처음부터 특정 문학 장르의 이름으로 쓰인 것은 아니었다. 중세에 보통 명사나 형용사로 쓰였던 이 단어가 문학 장르의 이름이 된 것은 비록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 시대였으며 그 당시의 노벨라는 다름 아닌 단편소설이었다. 노벨라의 어미가 축소 접미사라는 사실에서 과거에는 짧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단편소설을 의미했던 노벨라에 길이의 확장이 일어난 때는 18세기 중반 경이었지만 19세기 중반까지도 단편, 중편, 장편소설까지를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었다.2) 그리고 그 이후에 단편소설로서의 노벨라는 ‘짧은’이라는 형용사가 덧붙여진 “novela corta”로 대체된다. 우리가 노벨라의 이름과 의미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편소설처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바탕을 두지 않은 장르의 형성에 있어서 그 이름이 장르의식의 형성에 중요한 지표가 되며 그 의미가 장르의 특징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장르는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또한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완전히 동일한 작품들은 없다.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일군의 작품들을 장르의 이름으로 묶고 장르의 경계를 설정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그 장르가 전범(prototype)이 되는 한 작품의 유행과 더불어 새롭게 등장했으나, 그 이전에도 이 장르에 속할 수 있는 작품들이 존재했었다면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우리는 장르의 형성을 확인하는 여러 조건 가운데 장르의식의 형성을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설정한다. 이는 장르 자체의 시학적 원리에 앞서 그 장르의 수용에 더 큰 무게중심을 두고 장르의 형성과정을 탐색한다는 의미이다. 유럽에서 단편소설과 유사한 작품들은 고전 시대에도 있었고 -예를 들면 페트로니우스(Petronius)의 ꡔ사티리콘ꡕ(Satyricon)이나 아풀레이우스(Apuleius)의 ꡔ황금 당나귀ꡕ(The Golden Ass)에 삽입된 이야기- 중세에도 있었다. 특히 중세의 교훈담 문학(exemplum)이나 구전된 짧은 이야기 혹은 운문으로 쓰인 이야기들은 단편소설이 마셨던 샘(fonti)이 된다. 그러나 단편소설이란 장르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름의 존재는 장르의식의 형성과 같은 맥락에 있다. 따라서 노벨라의 의미 변천을 살펴보려는 시도는 장르의 형성과정을 고찰하기 위한 매우 기본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이탈리아 노벨라(novella)와 스페인 노벨라를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노벨라의 형성


  스페인 문학의 노벨라는 이탈리아어로 단편소설을 의미하는 노벨라에서 유래되었고 이탈리아어 노벨라는 라틴어 노부스(novus)의 축소형 노벨루스(novellus)의 변화형이다. 이탈리아에서 노벨라가 중세에 ‘새로운, 새로운 사실이나 사물, 어떤 사실에 대한 허구적인 이야기’(nuevo, cosa o fatto nuevo, racconto immaginario di un fatto)을 의미했다면, 노부스는 ‘새로운 소식, 최근에 일어난 사건,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이후에 공포된 법률’(notizia, vite piantata recentemente, novellae constitutiones)이었다.3)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단어가 문학 장르의 이름으로 변한 데에는 보까치오의 ꡔ데카메론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자신의 작품을 노벨라로 명명한 작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초에 활동한 이탈리아 작가인 본베신 드라 리바(Bonvesin dra Riva)는 밀라노 지방의 방언으로 성모 마리아와 죄인과의 대화를 다룬 ꡔ죄인과 함께 한 성모ꡕ(De peccatore cum virgine, 1274년경)라는 작품을 노벨라로 지칭했지만 여기서의 의미는 단순히 ‘좋은 소식’이었다.4) 또한 1281년에서 1300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라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교훈담 모음집 ꡔ일 노벨리노ꡕ(Il Novellino o Le Cento novelle antiche)에 나오는 노벨라도 모두 ‘새로운, 새로운 소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5) 다만 제목에 나오는 'cento novelle antiche‘에서의 노벨라가 프랑스의 ꡔ백 편의 새로운 노벨라ꡕ(Cent nouvelle nouvelle)처럼 확실히 장르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이 표현이 최초의 인쇄본인 1525년 판본(Bologna: casa di Girolamo Benedetti)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6세기의 편집인이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 단어가 장르의 이름으로 전환된 데에는 프로방스의 음유시인들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프로방스 문학의 노바(nova)와 라소스(razos)6)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발테르 팝스트는 라이몬 비달 데 베살루(Raimon Vidal de Besalú, 1170-1231?)를 비롯한 프로방스 시인들의 작품을 그 예시로 들고 있다. 특히 프란체스코 다 바르베리노(Francesco da Barberino, 1264-1348)의 ꡔ규칙과 습관에 대하여ꡕ(Del reggimento e costumi)에 나오는 많은 용례와 ꡔ사랑의 관한 대화ꡕ(Documenti d'Amore)의 1부에 나타난 “brevibus novelletis"라는 단어를 근거로 바르베리노의 작품이 프로방스의 노바가 토스카나의 노벨라로 전이되는 마디에 해당한다고 밝힌다.7) 축소사가 붙어있는 노벨라에 또 다른 축소사가 붙어 있다면 노벨라는 더 이상 축소사가 아니라 문학적 의미로 쓰인 하나의 독립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바르베리노가 노벨라의 확산에 기여하기는 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일종의 교훈담으로서 보까치오의 노벨라와는 거리가 있다. 보까치오 이전의 이탈리아 작가들도 노벨라의 의미를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만 단테는 ꡔ신곡ꡕ에서 노벨라를 ‘그리 사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사용한다. 지옥에서 채찍을 맞고 있는 베네디꼬 까치아네미꼬(Venedico Caccianemico)가 자신의 죄악에 대한 이야기를 노벨라로 표현했을 때 노벨라는 문학 용어로의 의미전환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I'fui colui che la Ghisolabella        내가 바로 후작께 기쁨 되도록

condussi a far la voglia del Marchese  기솔라벨라를 인도해 간 사람이오.

come che suoni la sconcia novella.   실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지옥편 canto XVIII, 55-57행8)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바띠스띠와 알레시오의 사전이 지적하고 있듯이 14세기까지도 노벨라는 “허구적인 이야기”라는 문학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지 못했다. 이 용어에 단편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이는 보까치오였다. 하지만, 그가 노벨라를 문학 장르의 이름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을 유사한 짧은 이야기들과 완전히 구분한 것은 아니었다.


io intendo di raccontare cento novelle o favole o paravole o istorie che dire le vogliamo. (Proemio, p. 5)

나는 말하자면 백 개의 노벨라 혹은 우화 혹은 비유 혹은 옛 이야기 같은 것을 풀어놓고자 합니다.9)


즉 작가는 노벨라에 우화, 비유, 옛 이야기의 성격이 모두 들어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노벨라라는 단어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다른 유사한 표현을 썼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노벨라의 장르적 성격이 아직 규정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10) 어쨌든 보까치오의 작품에서 노벨라는 기존의 ‘새로운 소식’이 아니라 특정한 이야기의 형태를 의미했으며, 작품이 널리 유포되면서 이 이름은 후세 작가들의 장르 의식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장르의식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적어도 노벨라를 보까치오의 전유물로 받아들였던 14세기와는 달리 다른 작가들도 노벨라를 생산하기 시작한 15세기에는 노벨라에 대한 장르의식이 공유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노벨라의 의미는 단편소설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소식이었다.11) 그 한 예를 16세기 스페인 단편소설이 많은 영향을 준 마수치오 살레르니따노(Masuccio Salernitano)의 ꡔ일 노벨리노ꡕ(Il Novellino)에서 찾을 수 있다. 이야기들의 구분이 ꡔ데카메론ꡕ처럼 노벨라로 되어있고 각 노벨라의 서언(esordio)에서도 명확히 장르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작품 내에는 ‘새로운 소식’이란 의미도 두 차례 나타난다.12) 이탈리아에서 노벨라가 단편소설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소식이었다면 스페인에서의 상황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다만 유입된 초기에만 이탈리아에서의 의미형성 과정을 유사하게 반복할 뿐이다.



스페인 노벨라의 형성


  이탈리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유럽 나라에서도 노벨라와 보까치오는 동시에 수용되었다. 따라서 유럽 각 언어에서 단편 중편, 장편 소설의 이름에 이탈리아 노벨라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13) 

 

 

구전 짧은 이야기

 단편소설

중편소설

장편소설

스페인어

cuento, historia

cuento,

novela corta

novela

novela

영어

tale, story

short story

short novel

novella

novel

romance

프랑스어

histoire

conte, nouvelle

nouvelle

novelette

roman

sotie

이탈리아어

storia, fiaba,

favola

novella

racconto

romanzo

독일어

m?rchen

erz?hlung

geschichte

kurzgeschichte

novelle

roman


이탈리아 노벨라가 유럽 단편소설 장르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듯이 스페인에서 노벨라라는 장르 이름도 이탈리아에서 유입된 일종의 외래어였다. 스페인에서 이 외래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를 대체할만한 단어가 없었으며 이탈리아 단편소설과 유사한 장르 역시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18세기 이후에 장르의 길이 확장이 일어났을 때 다른 나라들처럼 로망(roman), 로만조(romanzo), 로망스(romance)라는 새 이름을 갖지 못하고 의미가 변질된 데에는 로만세(romance)라는 시 형태가 중세이래 존재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7세기 중반까지 전성기를 거친 다음에 장르 자체가 쇠퇴해 버린 데에도 그 원인이 있다.

  스페인 단편소설의 이름은 이탈리아 노벨라의 번역이다. 물론 번역되기 이전에도 이 단어는 이탈리아에서처럼 ‘새로운, 새로운 소식,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이후에 공표된 법전’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었다. 누가 처음으로 노벨라(novela)라는 단어를 썼는지 알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예는 14세기 중반에 쓰인 후안 루이스(Juan Ruiz)의 ꡔ선한 사랑 이야기ꡕ(Libro de Buen Amor) 1152d행의 “el Rosario de Guido, Novela e Directorio"이다. 여기서의 노벨라는 위에서 언급한 유스티니아누스 이후에 공표된 법전 가운데 볼로냐의 법학자 요아네스 안드라에(Johannes Andrae)의 ꡔNovella in Decretales Gregorii IXꡕ을 가리킨다.14) 특히 후안 루이스의 작품에서는 짧은 이야기가 ”enxiemplo", ”fabla", "fablilla", "estoria"로 표현될 뿐 노벨라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15세기 초의 시인 알폰소 알바레스 데 빌야산디노(Alfonso Alvarez de Villasandino)의 작품에서는 ‘새로운’이라는 형용사의 축소사로 쓰이고 있다.


O sea nome delycado           오, 갓 피아난 장미의

daquesta rrosa novela           가녀린 이름이여!

corteys, placenter e bela         정결하고 아름답고 기쁨이 되는 장미여!

me faz byuir consolado         그대는 내 삶의 위로가 되는구나.15)


이와 같은 용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노벨라가 단편소설의 의미로 쓰인 것은 15세기 초반 ꡔ데카메론ꡕ이 까딸루냐어와 스페인어로 번역되면서부터였다.

  현재 남아있는 필사본이 말해주고 있듯이 보까치오의 작품은 14세기 말 까딸루냐(Cataluña)에서 부분적으로 번역되었다. 최초로 번역된 노벨라는 ꡔ데카메론ꡕ의 마지막에 위치한 그리셀다 이야기(X,10)로서 베르낫 멧제(Bernat Metge)가 원문이 아니라 페트라르카의 라틴어본을 텍스트로 삼았다.16) 까딸루냐어로 쓰인 첫 번째 완역은 1429년 4월 5일 산 꾸갓 데 발예스(Sant Cugat del Vallés)수도원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번역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한편 스페인어로의 번역은 15세기에 베르낫 멧제의 그리셀다 이야기를 번역하는데서 시작되었고, 네 번째 날 첫 번째 노벨라인 귀스까르도(Guiscardo)와 귀스몬다(Guismonda) 이야기가 ꡔ현인이 딸들에게 주는 교훈ꡕ(Castigos y doctrinas que un sabio dava a sus hijas, 15세기 중엽, 작가 미상)에 삽입되어 있다. 첫 완역은 1470년대로 추정되며 필사본이 엘 에스꼬리알(El Escorial)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496년에 나온 첫 출판본(Sevilla: Meynardo Ungut & Stanislao Polono)은 노벨라의 순서도 원본과 다르고 아홉째 날 다섯 번째 노벨라 대신 원문에 없는 이야기가 하나 추가되어 있다. 적어도 이탈리아어 원문 번역은 아니다. 스페인에서 단편소설의 형성은 이탈리아 노벨라의 수용과 일치하며 이탈리아 노벨라란 다름 아닌 보까치오의 작품이었다. 우리는 그 과정은 다음의 세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1) 첫 출판본의 등장한 1496년까지

  2) 1496년에서 금서목록을 통한 본격적인 검열이 시작된 1558년까지

  3) 1558년에서 세르반테스(Cervantes)의 ꡔ모범 소설집ꡕ(Novelas Ejemplares,      1613)까지


  첫 단계는 초기 수용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으로 노벨라는 단순히 ꡔ데카메론ꡕ에 있는 이야기 혹은 그와 유사한 이야기로서 재미와 위로를 주는 수입 장르였다. 그리고 이 단어에 대한 가치 판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1436년에 쓰인 산띨야나 후작(Marqués de Santillana)의 ꡔ뽄사 전투에 대한 위로ꡕ(Comedieta de Ponça)에서의 언급이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로 쓰인 대표적인 예이다.


Fablaban novellas é plaçientes cuentos

그녀들은 노벨라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E non olvidavan las antiguas gestas.

그리고 옛날 무훈시도 잊지 않았다.17)


특히 산띨야나 후작은 이 작품에 보까치오를 등장시키면서 그를 “녹색 월계관을 쓴”(de verde lauro era coronado) 시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후세에 보게 될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며 번역본이 나타나기 이전에 이미 스페인에 그의 작품이 읽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또한 1440년대 초반에 쓰인 후안 로드리게스 델 빠드론(Juan Rodríguez del Padrón)의 ꡔ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운 노예ꡕ(Siervo libre de amor)에 삽입된 “아르단리에르와 리에사 이야기”(estoria de Ardanlier e Liessa)가 끝나면서 이 이야기를 노벨라로 명명한다.18) 이 이야기가 특정 이탈리아 노벨라와 연관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노벨라로 정의한 것을 보면 노벨라가 스페인 작가의 의식 속에 하나의 문학 형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단계에 나타나는 나머지 용례들은 모두 보까치오의 작품을 가리키고 있다.

  1470년대 말에 인쇄술이 도입되면서 동시에 종교재판소가 설치된다. 이는 결코 우연적인 일치라고 볼 수 없다. 비록 사라고사에서의 첫 종교재판소 설치가 서적의 검열 및 유통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이후에 종교재판소(엄밀히 말하면 왕실 위원회)가 서적을 매개로 한 사상의 확산과 통제를 다루게 되면서 커다란 문화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19) 1496년에서 1558년 사이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ꡔ데카메론ꡕ을 비롯한 이탈리아 단편소설이 확산되면서 그 음탕한 내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난다. 그 결과 노벨라는 기존의 재미있는 이야기와 새로운 소식에 ‘거짓말’, ‘황당하고 음탕한 이야기’가 합쳐지게 되면서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야기, 사실성이 결여된 이야기로 변질된다. 그 예는 수없이 많다. 1520년경 바스꼬 디아스 땅꼬(Vasco Díaz Tanco)는 항해 도중 그의 배가 거대한 두 바다 괴물의 습격을 받은 이야기를 한 뒤에 이렇게 말한다.


Estando nos tristes en esta nobela

sintiendo congoxas muy graues, difformes.

그 소식에 우리는 슬픔에 잠기게 되었고

커다란 비탄으로 마음이 졸아들었다.20)


즉 여기서의 노벨라는 새로운 소식이지만 그것은 거짓말처럼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이처럼 두 번째 단계에서 와서는 노벨라가 진실성이 의심되는 새로운 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ꡔ에르난도 델 까스띨요의 노래 모음집ꡕ(Cancionero General de Hernando del Castillo, Valencia, 1511)에서 노벨라가 황당한 이야기를 의미하듯이,


De vanas nouelas soys trassechador

dezís toda vía de lo qu‘ es verdad.

그대는 황당한 이야기를 혐오하니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라.21)


16세기 초 로드리고 데 발데뻬냐스(Rodrigo de Valdepeñas)의 ꡔ호르헤 만리께의 시구에 대한 신앙적 주석ꡕ(Glosas religiosas y muy christianas sobre las Coplas de don Jorge Manrique)에서도 마찬가지이다.


No quiero seguir la vía         나는 시적으로 거짓을 말하는

del poético fingir,              그런 길을 가지 않는다.

en mis glosas,                 모든 황당한 이야기를

dexo toda fantasía,             버리고,

de nouellas enxerir             말도 안되는 노벨라를

fabulosas...                   끼워 넣지도 않을 것이다.22)


후안 데 빠딜야(Juan de Padilla)의 ꡔ열 두 사도의 열 두가지 승리ꡕ(Los doce triunfos de los doce apóstoles, 1518),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오비에도(Gonzalo Fernández de Oviedo)의 ꡔ인디아의 자연과 일반 역사ꡕ(Historia general y natural de las Indias, 1557) 등 많은 작품들이 유사한 용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에는 단편소설의 인기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1558년 종교재판소의 수장 발데스(Valdés) 대주교가 만든 금서목록(Index Prohibitorum)은 이와 같은 부정적 인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금서목록의 목적은 프로테스탄트의 확산을 차단하려는 데 있었지만 반동종교개혁의 사회적 분위기는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기사소설, 목가소설, 그리고 이탈리아 노벨라를 금서로 지정해 버렸다. 그러나 이탈리아 단편소설의 유행은 1560-7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종교재판소에 대한 사회적 공포와 행정적 통제가 스페인의 모든 지방으로 확대되기까지에는 시간이 좀더 필요했다. 그러나 출판인들은 더 이상 이탈리아 단편소설을 원문 그대로 출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음탕한 내용을 삭제, 완화하거나 검열관의 눈에 들도록 도덕적 교훈을 추가해야 했다. 발렌시아의 작가이자 출판인이었던 후안 띠모네다(Juan Timoneda)의 ꡔ이야기 모음집ꡕ(El Patrañuelo, 1567)은 이탈리아 노벨라를 스페인의 사회 환경에 맞추어 개작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벨라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아직 외국어였다.


Y así, semejantes marañas la intitula mi lengua natural valenciana Rondalles, y la toscana, novelas, que quiere decir: "Tú, trabajador, pues no velas, yo te desvelaré con algunos graciosos y asesados cuentos...“.

 그리고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내 모어인 발렌시아어로는 론달예라 부르고, 토스카나어로는 노벨라로 부르는데, 그 뜻은 이렇다. “그대, 힘들게 일한 자여, 밤새워 일하지 말라. 내가 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대를 잠 못들게 할 테니.”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23)


비록 노벨라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지만 제목 자체가 거짓말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듯이 여기서의 노벨라는 재미있는 이야기, 새로운 소식, 놀랄만한 이야기,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22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모음집에서 이탈리아 단편소설과 무관한 내용은 거의 전무하다. 하지만 원문은 음탕한 장면들은 모두 삭제 및 순화되어 있다. 다만 도덕적 교훈을 표방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 시대 다름 유사한 작품과 차별된다. 이탈리아 단편소설의 인기가 보까치오, 반델로(Bandello), 지랄디 친띠오(Giraldi Cinthio), 스뜨라빠롤라(Straparola), 마수치오 살레르니따노, 지오반니 피오렌띠노(Giovanni Fiorentino) 등의 작품에 기대고 있지만 종교재판소의 검열로 인해 스페인 작가들은 이를 개작해야만 했다. 금서목록을 통한 출판 및 소유 금지는 다분히 시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즉 이탈리아 단편소설이 당대 시학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문학의 목적에 대한 호라티우스의 명제 -교훈이면서 동시에 즐거움 prodesse et delectare-를 거스르고 쾌락만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또 하나의 주요 시학 원리인 핍진성(verosimilitudine)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서목록은 미풍양속과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기 위함이지만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여 장르적 생명력을 확보하려는 시도 속에서 장르의 정체성이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문학에 일정 부분 기여한 측면도 있다. 다시 말하면 통제와 검열이 시작되면서 단순히 새롭고 놀라운 이야기, 음탕한 이야기이던 노벨라가 시학적 체계 내로 편입되어 문학 장르로 자리 매김하기 위한 노력이 촉발되었으며 그 결과 스페인의 노벨라는 이탈리아의 그것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스페인 노벨라의 장르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시도는 먼저 삽입 소설이란 형태로 시작되었다. 노벨라는 외형적인 측면에서 모음집 형태와 독립적인 낱개의 형태로 나뉘고 모음집 형태는 서사틀(marco narrativo, cornice, frame tale)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로 다시 나뉜다. 그런데 르네상스에 이르면 낱개의 노벨라가 점차 모음집 형태로 수용되면서 사라져가고 모음집 형태가 현재까지도 단편소설의 주된 외형이 된다. ꡔ데까메론ꡕ이 서사틀이 있는 모음집의 대표적인 예이다. 페스트를 피하기 위해 10명의 남녀가 근교의 별장에 나가 포도주, 음식, 춤, 노래를 즐기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얼개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노벨라를 통합하고 있다.24) 한편 아무런 배경이나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 없이 단순 나열하는 형태는 반델로의 작품집 Novelle (1553, 1573)나 지오반니 세르깜비(Giovanni Sercambi)의 Il Novelliere 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띠모네다의 작품과 세르반테스의 단편 소설집도 여기에 속한다. 삽입소설이란 서사틀과 노벨라의 관계가 역전된 것으로 하나의 긴 줄거리 속에 한 부분에 대한 예시로서 노벨라가 삽입되는 형식을 가리킨다. 피카레스크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인 마떼오 알레만(Mateo Alemán)의 ꡔ구스만 데 알파라체ꡕ(Guzmán de Alfarache, 1부 1599/ 2부 1604)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삽입소설의 쾌락성은 줄거리가 지닌 도덕성에 의해 보완되며, 사실성은 우화의 경우처럼 전체 줄거리와의 연관성에 밀려 부수적인 요소로 전락한다. 그러나 삽입소설은 장르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기 보다는 임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했다. 보다 혁신적이고 중요한 변화는 세르반테스의 ꡔ모범소설집ꡕ(1613)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 전반에 이르러 노벨라는 연극과 더불어 전성기를 맞는다. 이 전성기의 기폭제이자 “스페인 단편소설의 창조자”로25) 평가받는 ꡔ돈키호테ꡕ의 작가는 ꡔ모범소설집ꡕ의 서문에서 자신의 장르의식을 명확히 드러낸다.


Yo soy el primero que he novelado en lengua castellana, que muchas novelas que en ella andan impresas, todas son traducidas de lenguas extranjeras, y éstas son mías propias, ni imitadas ni hurtadas.


나는 스페인어로 노벨라를 쓴 첫 번째 사람이다. 스페인에 수많은 노벨라가 출판되어 돌아다니고 있지만 모두가 외국어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나 자신의 것으로서 결코 모방하거나 훔쳐오지 않았다.26)


스페인 노벨라의 첫 번째 작가라는 세르반테스의 자신에 찬 선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탈리아 노벨라와의 차별성을 철저히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ꡔ모범소설집ꡕ 이후에 노벨라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단편소설집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이 시대에 와서 노벨라가 이탈리아 단편소설로부터 독립한 스페인의 단편소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물론 새로운 소식이나 음탕한 이야기라는 의미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놀랍고 경이로운 이야기’라는 의미가 더 강조되면 당대 시학이 요구하던 조건도 충족시킨다.

  16세기 노벨라에 부과되었던 시학적 비판들을 수용하여 근대적인 단편소설로의 길을 연 ꡔ모범소설집ꡕ은 그 제목에서부터 스페인의 토양에 적응된 노벨라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노벨라가 쾌락을 추구하는 장르로 인식되었던 것과는 달리 세르반테스의 노벨라는 쾌락과 교훈의 조화를 추구하는 호라티우스의 명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이는 중세의 교훈담 문학이 추구했던 도식적인 이분법적 구분에 의거한 조화, 즉 수단으로서의 쾌락이 목적으로서의 교훈에 봉사하는 형태가 아니고, 이전의 삽입소설들처럼 쾌락을 위한 위선적 가면으로 교훈을 이용하지도 않는다. 세르반테스의 노벨라는 쾌락과 교훈을 작품 표면에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야기 자체가 쾌락이고 교훈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라티우스의 명제는 “건전한 즐거움”(honesta recreación)이라는 개념 속에 용해된다. 여기서의 즐거움은 지친 사람을 위한 위로이며 이 위로는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건전한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타락이 아니라 타락을 막는 안전장치인 셈이다. 16세기 동안 노벨라에 음험한 쾌락이라는 굴레를 씌어졌다면 세르반테스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위선적인 가면을 쓰지 않고 노벨라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또한 오랜 동안 노벨라를 괴롭혀왔던 핍진성 문제에 대하여도 세르반테스는 사실과 거짓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은 어디에도 없으며 따라서 문학 내적인 합리화를 통해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장치가 양자를 구분하는 기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ꡔ돈키호테ꡕ에서 이미 제시되었듯이 현실이 환영들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는데 그 환영들을 가지고 진실과 거짓을 나누려는 이전의 기준들은 이미 그 근거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물의 성격이나 행위가 비사실적이라고 노벨라를 비난해왔다면 그것은 현실 자체가 그렇게 보여 지는 것이며 따라서 비사실적인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오히려 사실적일 수도 있게 된다. 그 결과 진실과 거짓의 문제는 다양한 시점의 문제로 치환되면서 모두가 사실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주어진 시점 내에서의 현실 인식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이 따른다. 이렇듯 세르반테스는 핍진성의 문제를 이분법적 구분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 인식의 수단으로 제시한다.

  그가 규정한 핍진성의 원리는 ꡔ모범소설집ꡕ의 마지막에 위치한 두 연작인 「사기결혼」과 「개들의 대화」에 구현되어 있다. 「사기결혼」은 주인공인 깜뿌사노(Campuzano) 소위가 여자에게 사기 당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여자가 사기치고 도망 간 뒤 성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다. 그리고 고열에 시달리다가 어느 날 밤 개 두 마리가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는 내용을 듣고 기록한 뒤 친구인 뻬랄따(Peralta) 학사에게 보여준다. 물론 뻬랄따는 말도 안된다며 미친 사람 취급을 하지만 결국 깜뿌사노가 건네준 「개들의 대화」를 읽는다. 개들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가? 이 문제가 바로 핍진성에 대한 논의를 야기한다. 개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개들의 대화」가 황당한 이야기라고 비난하는 뻬랄따의 태도와 같은 이유로 노벨라를 격하시키는 16세기 도덕주의자의 시각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하여 세르반테스는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를 흔드는 방식으로 문학적 핍진성을 추구한다. 먼저 깜뿌사노가 여자에게 사기 당했다는 주장은 그 자신도 여자의 재산에 이끌렸다는 사실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여자와 깜뿌사노 모두가 사기를 치려고 시도했으며 결국 두 사람 모두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여자가 훔쳐간 보석은 가짜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개들의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과 판단에서만 그것은 사실인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화자의 전지전능함을 부정한 뒤 두 마리의 개가 원래는 사람이었는데 여자 마법사의 질투로 인해 개로 변했다고 말한다. 그 결과 두 이야기에 나오는 많은 목소리 가운데 확실히 믿을만한 목소리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믿음의 근거가 사라졌는데도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논의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 없는 일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뻬랄따가 「개들의 대화」를 읽고 있는 동안 깜뿌사노는 낮잠을 자고 있으며 독서가 끝난 뒤 두 사람은 개들이 사람 말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해 더 이상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자면서 지친 몸에 회복했다면 다른 한 사람은 독서를 통해 즐거움을 얻었다는 것으로 만족한다. 세르반테스가 보여주는 노벨라란 이처럼 핍진성 자체가 허구인 문학적 공간에 위치한다. 뻬랄따의 관점에서도 깜뿌사노의 관점에서도 개들의 대화는 그럴 법한 것으로 용인되는 장치가 마법이었듯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비현실 속에서 현실의 논리가 통용되는 하나의 마법적 공간을 창조하는 행위가 된다. 이 작품집과 더불어 스페인에는 노벨라의 전성기가 시작되지만 이후의 작가들은 세르반테스라는 전범을 쫓아가기 보다는 쉽고 익숙한 이탈리아 노벨라의 모방에 더 매진했다. 그 결과 장르의 생명력은 소진되고 노벨라는 단편소설을 떠나간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탈리아 노벨라의 유입과 더불어 스페인 노벨라의 의미는 ‘새로운 소식’에서 ‘신기하고 황당한 이야기’로, 그리고 다시 ‘음탕한 이야기’에서 ‘쾌락과 교훈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범적인 이야기’로 변해간다. 이와 같은 노벨라의 의미 변화는 그 시대의 장르 의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서 시학적 원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장르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이탈리아의 영향이 시작되었을 초기에는 남녀간의 사랑과 속임수가 주요 테마였다면 종교재판소를 둘러싼 부침을 겪으면서 세르반테스에 이르러서는 관심이 인간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현실 인식의 혼란과 같은 근대적인 주제들을 다루기도 한다. 이렇듯 스페인의 노벨라는 이탈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모습을 갖추게 되지만 18세기로 넘어가면서 장르가 해체되고 만다.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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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Los términos Novella y Novela: la transición semántica y la formación del género


Kyung-Bum KIM


    Las ideas y prácticas de una época acerca del género literario pueden ser deducidas de la significación de su denominación. Las diferentes épocas tienen la capacidad de asociar al nombre un contenido distinto. De hecho, el primer paso hacia una discusión sobre la forma literaria es sin duda esclarecer cómo ha evolucionado su nombre actual y, para ello, se necesita un conocimiento fundamental sobre el desarrollo y las limitaciones de la terminología. No hay que olvidar que todo el cambio en la recepción del nombre de un género literario está relacionado con su evolución. Actualmente, la novela significa una narración mediana o larga. Sin embargo, como vemos añadido en este término el diminutivo, allí se contiene el sentido de ser breve. Además, antes de Boccaccio, la novela no era el nombre de un género literario. Como es harto sabido, el término novela proviene del italiano novella, que significaba '́nuevo, novedad, noticia, cuento imaginario de un hecho'. El origen del término italiano se encuentra en el latín novellus. En el proceso por el que la novella va consiguiendo su sentido literario de narración corta, no se puede ignorar la influencia de los poetas provenzales. Sin embargo, fue Boccaccio que bautizó esta palabra como un término literario.

    El sentido de la novela como género literario se va formando con las traducciones de las novelle italianas, sobre todo, el Decamerón.. La novela como italianismo significaba en el siglo XV las novelle italianas, sin ninguna calificación despectiva. Sin embargo, con la constitución de la Inquisición española, se divulgaba la imagen de la historia obscena. Por su resultado, el sentido de la historia placentera y amena se convierte en mentira e historia adúltera, pues, el género inverosímil, cuya meta es sólo el deleite. Las críticas del siglo XVI tienen sus propias razones poéticas, ya que este género no sólo viola la proposición horaciana sobre el objetivo de la literatura, sino también falta la verosimilitud. Y a mediados del siglo, la popularidad de los novellieri italianos como Boccaccio, Bandello, Giraldi Cinthio, Straparola, Masuccio Salernitano, pone más severa la censura de la Inquisición. Ante esta situación hostil, los autores de la novela corta española buscaban salidas en las novelas intercaladas. Mientras que las novelas intercaladas procuraban enmascarar el deleite de manera hipócrita, el gran logro literario de Cervantes justifica la razón de ser del género nacionalizado. Como creador del género en España, el autor del Quijote propone la honesta recreación con sus Novelas Ejemplares, para resolver el conflicto entre deleite y aprovechamiento. Aquí el deleite sirve de la consolación para los cansados, cosa que necesita todo el mundo. Buscar el deleite honesto no es pecado, sino un escudo para defender la tentación del pecado. Si la novela es acompañada por la imagen negativa en el siglo XVI, con las novelas cervantinas este género dejó el yugo de moralidad. En cuanto a la verosimilitud, piensa Cervantes que no hay ningún criterio absoluto para distinguir lo verdadero y lo falso. Lo más importante para la novela es el aparato narrativo de fingir la verosimilitud.

    Así pues, con la llegada de la novella italiana, el sentido de la novela en español empieza con noticia, cosa sorprendente y la narrativa italiana de tipo boccacciano. Pero con su contenido obsceno se añade el sentido de mentira, historia deleitosa. Sin embargo, Cervantes dio al género su forma perfecta y justificada. Estas transiciones semánticas sirven de un buen guía para buscar la identidad del género. Con ella, la novela se desprende de la influencia italiana. pero lamentablemente, los autores posteriores a Cervantes no siguieron a las huellas del maestro: su resultado fue el reemplazamiento terminológico. Pues la novela dejó de ser la novela corta.




Key Words: 이탈리아 노벨라, 스페인 노벨라, 세르반테스, 보까치오, 핍진성, 건전한 즐거움, 장르의식.


1) Johannes Hermanus Terlingen. Los italianismos en español. Desde la formación del idioma hasta principios del siglo XVII. Amsterdam: N.V. Noord-Ollandsche Uitgevers Maatschappij, 1943, p. 1.


2) 사라고사 대학의 에사마 힐(Ezama Gil) 교수는 이 용어가 단편소설이 아니라 중장편 소설만을 의미하게 되는 시점을 1851년으로 생각한다. 이 해에 의미 있는 스페인 문학사의 하나인 조지 틱노르(M. George Ticknor)의 History of Spanish Literature의 스페인어 번역본이 출판되었으며 이 문학사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그 이후로는 노벨라가 단편소설을 지칭하고 있는 문건이 나타나지 않는다. Ángeles Ezama Gil. “Angunos datos para la historia del término ‘novela corta’ en la literatura española de fines de siglo”, Revista de Literatura, 55 (1993): 141-148.


3) Carlo Battisti & Giovanni Alessio. Dizionario etimologico italiano. Firenze: G.Barbèra, 1966.


4) Walter Pabst. La novela corta en la teoría y en la creación literaria. Notas para la historia de la antinomia en las literaturas románticas. Madrid: Gredos, 1972.


5) Novellino e Conti del Duecento. a cura di Sebastiano Lo Nigro. Torino: UTET, 1981.


6) 노바가 이탈리아로 넘어와서는 비타(vita)로 불리게 된다. 산문으로 된 짧은 이야기인 비타와 운문으로 쓰인 라소스는 주로 음유시인의 최근 사랑 이야기를 궁정식 사랑의 규칙에 맞춰 서술한다.


7) op.cit., p. 50. 여기서 “brevibus novelletis"의 의미는 짧은 이야기로서 즐겁고 유쾌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그 목적은 교훈에 있다.


8) La Divina Commedia, a cura di Natalino Sapegno, Milano: Riccardo Ricciardi Editore, 1957, p. 211.


 9) ed. a cura di Carlo Salinari, Bari: Laterza, 1986.


10) 노벨라에 대한 최초의 장르적 접근은 1574년 Accademia Fiorentina에 제출된 프란체스꼬 본치아니(Francesco Bonciani)의 ꡔ노벨라 작법에 대한 소고ꡕ(Lezione sopra il comporre delle novelle)였다. 이 글은 노벨라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체계에 편입시켜 설명하려고 하였으나 실질적인 반향은 크지 않았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이 글이 스페인에서 읽혔다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11) 로렌조 프란치오시니 피오렌티노의 사전에 의하면 노벨라에서 새로운 소식이라는 의미는 18세기까지 지속되다가 사라진다. Lorenzo Franciosini Fiorentino. Vocabulario español e italiano. Venezia, 1796. 이 사전은 1620년 로마에서 초판에 나온 이래 지속적으로 개정판이 나왔으므로 의미변천을 살펴보는데 매우 유용하다.


12) Il Novellino. a cura di Salvatore S. Nigro. Milano: RCS Rizzoli Libri, 1990. 이 작품의 첫 인쇄본은 1476년 나폴리에서 출판되었다. ‘새로운 소식’으로 쓰인 예는 다음과 같다.

12) Il Novellino. a cura di Salvatore S. Nigro. Milano: RCS Rizzoli Libri, 1990. 이 작품의 첫 인쇄본은 1476년 나폴리에서 출판되었다. ‘새로운 소식’으로 쓰인 예는 다음과 같다.

La fanta, che molto lieta fu de tale novella, ripose ad ogni suo comendamento essere de

La fanta, che molto lieta fu de tale novella, ripose ad ogni suo comendamento essere de

continuo apparechiata. (novella III, p. 141)

continuo apparechiata. (novella III, p. 141)



e divolgata finalmente la novella per tutto il paese, concorse la mattina in chisa tanta

e divolgata finalmente la novella per tutto il paese, concorse la mattina in chisa tanta

gente che la metà a pena vi capea. (novella IV, p. 153)


13) Enrique Anderson Imbert. Teoría y técnica del cuento. Buenos Aires: Marymar, 1979, p. 17. 한편 노벨라의 확장에 대하여 Gerald Gillespie는 “novella, nouvelle, novelle, short story? - A review of terms”, Neophilologus, 51 (1967), p. 120에서 유럽 문학에서 중편과 장편의 구별이 영국과 스페인을 제외하면 1800년경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며 중편은 novella, nouvelle, novelle로, 장편은 roman, romanzo로 분류한다.


14) ed. G. B. Gybbon-Monypenny, Madrid: Castalia, 1988.


15) Cancionero castellano del siglo XV. ed. Raymond Foulché-Delbosc, NBAE, 22. Madrid: 1915, p. 322. 이 시는 1406년 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16) 페트라르카의 라틴어 번역 Griseldis o De insigni obedientia et fide uxoris는 1373년에 편지 형태로 보까치오에게 보냈지만 전달되지 못하자 이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 다음 해 다시 보낸다. 15세기 스페인에 널리 유포된 그리셀다 이야기는 다시 보낸 편지를 번역한 베르낫 멧제의 번역을 다시 스페인어로 번역한 것이다. 베르낫 멧제의 번역은 1388년에 쓰인 ꡔRerum Seniliumꡕ(4권 세 번째 편지)에서 보까치오를 언급하지 않은 채 삽입되어 있다.


17) Obras del Marqués de Santillana, ed. José Amador de los Ríos, Madrid: 1852, p. 115.


18) “aqui acaba la novella"(마드리드 국립도서관 필사본 Ms.6062, fol.140r.)


19) 김경범. “스페인 황금세기의 문학검열”. 이베로아메리카연구, 8 (1997), pp. 235-268


20) Antonio Rodríguez Moñino. “Los Triunfos Canarios de Vasco Díaz Tanco”. El Museo Canario, 2(1934), p. 18.


21) ed. Sociedad de Bibliófilos Españoles, 21권, vol.2. Madrid, 1878, p. 18.


22) 마드리드 국립도서관 소장 필사본으로 Glosas a las Coplas de Jorge Manrique. Valencia: Cieza, 1961에 부분적으로 출판되었다. 페이지 번호 없음.


23) ed. José Romera Castillo, Madrid: Cátedra, 1986, p. 97.


24) 일반적으로 노벨라는 구슬로, 서사틀은 구슬을 엮는 실로 비유된다. 서사틀의 유무를 기준으로 한 분류는 이솝우화 같은 교훈담 문학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스페인 문학의 경우 도덕적 교훈과 즐거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노벨라와 교훈담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25) Agustín González de Amezúa. Cervantes, creador de la novela corta española. Madrid: CSIC, 1956.


26) Novelas Ejemplares. ed. Harry Sieber, Madrid: Cátedra,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