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주체와 여성 : 토마스 들로니의

��뉴베리의 잭��과 ��리딩의 토마스��를 중심으로




이 미 영





I


그 자신이 유명한 발라드 작가이기도 했던 토마스 내쉬 (Thomas Nashe)는 토마스 들로니 (Thomas Deloney)를 가리켜 “The Balleting Silke Weaver”  (Wright 15)라고 지칭했다. 발라드를 짓는 실크 직조공이라는 의미인데 사실 이 호칭의 의미는 들로니의 발라드보다는 산문 소설에서 더 중요하게 부각된다.1) 들로니는 죽기 전 4년 동안 ��뉴베리의 잭�� (Jack of Newbery), ��양반의 직업 1부�� (The Gentle Craft Part 1), ��양반의 직업 2부�� (The Gentle Craft Part 2), ��리딩의 토마스�� (Thomas of Reading) 등 4개의 산문 소설을 썼는데 모두 다 중산층을 소재로 하여, 중산층의 입장에서, 중산층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2) 특히 ��뉴베리의 잭��과 ��리딩의 토마스��는 들로니와 같은 직조공(Clothiers)들을3) 주인공으로 삼고 있어서, ��뉴베리의 잭��은 실존인물이었던 존 윈치콤 (John Winchcomb)의 기적 같은 성공담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일화들을 모은 소설이고 ��리딩의 토마스��는 이미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일군의 직조공들과 그 주변의 이야기이다. 근대 초기 영국 사회에서 떠오르는 계급이었고 상당한 부와 그에 따른 자신감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스스로를 정의하거나 규정할 언어나 문학, 이데올로기를 갖지 못한 계급의 자기 표현이 이 두 소설인 것이다.

문자해독률이 높아지고 인쇄가 대중화되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문학은 귀족들의 것이고 이들에게는 스스로를 정의할 언어나 수사학조차 제대로 없었다. 근대 초기 영국의 상인이나 장인 계급을 찬양하는 문학을 들여다보니 중산층을 칭찬하는 수사(修辭)들이 중산층에게 붙을만한 “근면”이나 “절제”등이 아니라 “관대함”과 같은 귀족계급의 수사였다는 역사학자 로라 스티븐슨 (Laura Stevenson)의 놀라움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6). 이런 상황에서 그 자신 실크 직조공으로서 직조공들의 성공담과 전성기를 그린 들로니의 두 소설은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가 문학을 통해 구축되어가는 초기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문건이 된다. 산문 소설이라는 장르도 이제 막 시작된 장르이고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도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들로니의 소설들은 그 초기 구축 과정을 비교적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소설 속 직조공들은 두 가지 위계질서에 기대어 정의되고 규정되는데, 하나는 계급에 기초를 둔 위계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성(性)에 기초를 둔 위계질서이다 (Linton 24).4) 중산층 직조공은 위로는 귀족과 차별화되는 우월한 덕목과 힘을 지닌 것으로 그려지고 아래로는 도제나 하인 계급과의 계급 갈등 없이 그들에게 자발적인 존경과 협조를 받는 것으로 그려지면서, 다른 계급과 차별되는, 가장 도덕적이고 생산적이며 필요한 계급으로 규정된다. 또한 이들의 위치와 권위는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정의되고 강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길들여지고 순치되며 때로는 희생양으로 처벌받는다. 결국 들로니의 소설에서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는 한편으로는 다른 계급을,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을 타자화시키고 주변부로 만들면서 구축되고 천명되는데 이 두 가지 중 보다 분명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여성의 종속화이다. 이미 두 차례의 정치적인 발언으로 도주 상태에 있던 들로니로서는 계급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노골적으로 건드릴 수는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계급문제나 계급갈등은 보다 순화된 형태로 그려져 있다. 들로니가 계급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가 엇갈려서 중세적인 위계질서를 옹호 (Wright 64)한다는 쪽과 여왕에 대한 강력한 비판 (Suzuki 185)을 담고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는 것도 계급에 대해 들로니가 갖고 있는 애매한 태도를 역으로 반증한다고 하겠다. 이 글은 이와 같은 전제를 갖고 근대적 주체가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 구축되는 과정을 토마스 들로니의 두 소설 ��뉴베리의 잭��과 ��리딩의 토마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II


��뉴베리의 잭��은 전형적인 성공담 소설이다. 주인공 잭은 하루아침에 일개 도제에서 주인으로 출세하고, 나아가 엄청난 부와 명성을 바탕으로 빈민을 구제하며 일꾼이나 하녀들의 대소사까지 해결하고 왕과 우정을 나누며 국가에 봉사하는 거의 전지전능한 인물이 된다. 이때 그의 성공은 신분이나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자질, 성품에 의한 것으로 제시되고 이와 같은 중산층의 덕목은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듭 강조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잭의 성공은 그가 도제로 있던 집의 주인 과부와 결혼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고 이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부의 주도와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들로니가 이 소설을 쓰던 1590년대에는 도제 (apprentice)나 도제기간을 마친 일꾼 (journeyman)이 개인의 근면과 능력으로 주인 (master)이 되는 길은 거의 막혀있었고 이들은 임금 노동자로 희망 없는 삶을 살았었다 (Houlbrook 74). 이들이 주인이 될 수 있는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은 주인 과부와 결혼하는 것이었고 사실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는데 그런 결혼이 모든 도제에게 다 가능했던 것은 아니고 도제의 부모 신분이 주인과 같거나 위인 경우, 즉 부유하거나 젠트리 신분인 경우에만 가능했었다 (Houlbrooke 75). 반면에 잭은 가난한 일꾼 (journeyman)으로 설정되어 있어 그가 주인 과부와 결혼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비현실적인 결혼이 가능했던 것은 잭 본인의 능력과 자질 덕분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주인 과부의 선택과 의지 덕분이었다.

주인 과부가 이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부였기 때문이다. 근대 초기의 성 제도에서 과부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이 시기에 여성은 경제적, 법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었고 재산권도 제한되었으며 배우자 선택권도 극히 제한되었다. 결혼문제에 있어서 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다 자유를 누렸던 중산층에서도 딸은 아들보다 더 배우자 선택권이 없어서 아버지나 친족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상례였다 (Wrightson 74). 그러나 이와 같은 종속적인 여성의 위치에서 과부는 예외였다. 과부는 계약서나 유언장을 작성하는 등의 경제적, 법적 활동을 할 수 있었고 (Pitt 14), 남성들만의 조직인 길드에서 과부는 예외적으로 가입이 인정되어 남편이 남긴 재산을 관리하고 일꾼들을 감독하며 가게를 운영할 수 있었다(Ladd 995). 또한 배우자 선택권에 있어서도 과부는 자유롭게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어서 재산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든 과부들이 신속하게 재혼을 했다(Suzuki 189). 당시의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전복적인 힘을 보여주는 영역이 바로 과부였던 것이다 (Jardine 78).

이 소설에서도 주인 과부는 자유롭게 배우자를 선택한다. “widow”라고 불릴 뿐 이름이 부여되지 않은, 그러므로 ‘과부’라는 지위의 자유와 힘과 위협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설정되어있는 이 과부는 배우자를 스스로 선택할 뿐 아니라 구애와 구혼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은 모든 걸 짐작하면서도 신분 차이 때문에 망설이며 과부의 구애를 모른척하는 잭을 과부가 어떻게 유혹하는지, 그리고 급기야는 트릭을 써서 어떻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지를 세세하게 그려낸다. 과부에게는 다른 구혼자들도 있었지만 과부는 잭을 선택한다. 사회적 신분이 더 높고 재산도 많은 것으로 그려지는 다른 구혼자들에 비해 잭이 유리한 점은 젊고 잘생겼다는 것과 근면하고 빈틈없는 일꾼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과부의 나이가 많다는 것과 침대 유혹 장면까지 덧붙여지면 “음탕한 과부” (lustful widow)의 상투형이 완성된다. 과부라는 범주의 여성들은 성적으로 방종하고 성윤리도 자유로워 성욕의 해소를 위해 무분별한 결혼으로 뛰어든다는 “음탕한 과부”의 상투형은 당시 가부장제에서 과부가 갖는 위협을 역으로 보여주는 문구이다. 이는 실제로 과부들이 자신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배우자를 선택하고 그래서 가부장제의 혈통과 재산의 유통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이 같은 부정적인 상투형을 유포함으로써 과부의 위협적인 자유를 통제하고자 하는 의도까지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주인 과부는 상투형을 넘어서는 생명력과 힘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가 다른 구혼자들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뚜렷한 주관과 빈틈없는 일 처리는 그녀가 분별없는 “음탕한 과부”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당당한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소설에서는 굳이 지적하지 않지만 당시의 길드 규칙에 의하면 가게를 경영하는 과부가 재혼하면 길드에서 쫓겨나고 가게 경영권도 포기해야 했다 (Suzuki 189). 따라서 과부가 잭을 선택한 것은 잭의 개인적인 남성적 매력에 힘입은 바도 크겠지만 가게를 지키고 재산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과부의 의지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구혼 과정에서의 과부의 집요한 의지력과 대담한 실천력을 볼 때 그녀가 잭과 들로니, 그리고 사회에 대해 갖는 전복적인 위협과 힘은 상당하다 하겠다. 그녀는 잭과 결혼해줌으로써 다른 도제나 일꾼들과의 관계에서는 잭을 주인으로 격상시켜 주었지만 부부의 권력관계에서는 오히려 잭을 종속시킬 수 있는, 잭의 남성으로서의 주체를 오히려 전복시킬 수 있는 위협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의 이후 전개는 이와 같은 전복적인 여성을 무력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 첫 번째 조치는 결혼식 후에 벌어지는 두 사람의 권력싸움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유리된, 상투적인 남녀간의 싸움으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이 부부의 경우, 가게 경영 문제에서부터 재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제적, 사회적 갈등이 당연히 있을 수 있으나 들로니는 이 싸움을 초서의 「배스의 여장부」 (“Wife of Bath”) 이야기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되풀이된 남녀 간의 주도권 싸움, 그것도 아내의 밤 외출을 문제 삼는 우스꽝스러운 주도권 싸움으로 치환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과부와 도제가 결혼함으로써 야기되는 미묘한 권력문제를 희석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부의 전복적 위협을 희극적인 것으로 희화화시키고 있다.

두 번째 조치는 이런 주도권 싸움을 통해 도달하게 된 애매한 균형상태를 현실 속에서 시험해볼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것이다. 밀고 당기는 싸움 끝에, 과부는 “당신이 내 마음대로 하도록 해주었으니, 나도 내 자유로 인해 당신을 괴롭히지 않도록 하겠다.” (seeing ye have sworn to give me my will, I vow likewise that my wilfulness shall not offend you [333])5)라며, 잭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권력 우위를 주장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발언을 한다. 이는 잭이 드디어 아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주도권을 얻었다는 의미도 되지만 달리 보면 아내의 우월한 권력에 타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타협의 결과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나타날지를 시험해 보기 전에 소설은 과부를 죽여 버린다. 이것이 잭에게 얼마나 행복한 결말인지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결말에서 알 수 있다.


그녀의 남편은 여기에 대해 예의 바르게 동의했으며, 이후로 이들은 매우 공경하고 사랑하며 우호적인 관계로 오랫동안 함께 살았는데, 그러다 결국 아내가 먼저 죽어 남편을 놀랄만한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Her husband courteously consented, and after this time they lived long together in most godly, loving, and kind sort, till in the end she died, leaving her husband wondrous wealthy. (333)


위에서 언급한 과부의 결정 바로 다음에 나오는 세 줄짜리 결말은 그 내용과 논리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선 아내가 결정하고 남편이 “예의바르게” 동의했다는 것이다. 결정권은 여전히 아내에게 있다. 이후에 두 사람의 생활은, “they loved long together in most godly, loving, and kind sort”라는 한 줄로 축약되어 실제로 어떤 권력 관계를 이루고 살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는 그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in the end she died”로 바로 이어지며, 이것은 또한 “leaving her husband wondrous wealthy”로 인과관계처럼 연결된다. 과부가 잭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 그와 결혼함으로써 계급을 상승시켜준 것이었다면 두 번째 선물은 제때 죽어줌으로써 전복된 성의 위계질서에서 잭을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상투적인 결말로 끝내기에는 과부의 전복적 위협이 너무 컸고, 그래서 잭의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위해 그녀는 바로 죽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는 잭을 “놀랍도록 부유하게”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위의 세 줄은 잭에게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완벽한 해피 엔딩인 것이다.

첫 번째 아내가 잭의 계급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려주었다면 두 번째 아내는 가부장으로서의 잭의 권위와 권력을 확인시켜준다. 돈 많은 과부와 좋은 집안의 딸 등 수많은 혼처가 있었지만 잭은 두 번째 아내로 자신의 하녀를 선택하는데 이는 잭이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교훈을 바로 실행한 결과이다. 사회적 신분과 재산이 우월한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잭의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에 위협이었고, 첫 아내 덕에 신분과 재산을 얻게 된 그가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가부장으로서의 권위와 권력이었다. 그가 가난한 장인에게 지참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얌전함”(modesty)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단지 립 서비스가 아니었다. 잭에게 아내 될 사람의 가난은 오히려 가부장으로서의 권위에 도움이 된다. 그가 굳이 요구해 받은 지참금을 결혼식 후에 몇 배로 흔쾌히 돌려주는 것은 이 결혼에서 잭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잭과 두 번째 아내 낸(Nan)의 결혼 생활은 당시의 교훈서들에서 가르쳤던 모범적인 가부장제의 일상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적이며 매사를 남편의 뜻에 따라 하고 남편이 사주는 옷이나 장신구도 황송해하며 고마워한다. 이와 같은 낸의 처신은 ��리딩의 토마스��에 나오는 고집 세고 허영심 많은 중산층 아내들이나 당시의 일기에서 볼 수 있는 일부 중산층 부인들의 강한 자기주장과 구분되는데(Wrightson 95) 그녀가 이처럼 자발적으로 종속적인 지위를 찾아감으로써 잭의 가부장으로서의 권위가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것이다.

그런데 잭의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위협하는 사람이 바로 프랭크 부인(Mistress Frank)이다. 늘 잭의 집을 무시로 출입하면서 낸에게 음식 대접받고 경험 없는 낸에게 갖은 참견을 다 하며 가르치려드는 프랭크 부인은 당시 문학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말많은 여성”(gossip)이다. 그는 낸에게 어느 남자의 아내라도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며 낸의 겸손함을 흔들어놓고, 낸이 살림을 헤프게 한다며 잭이 정한 살림의 원칙을 깨도록 부추긴다. 그렇게 하여 남은 돈으로 장신구나 옷을 사 입으라는 충고로, 분수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잭의 소신을 깨며, 아직 아이가 없는 것을 빗대 잭의 생식력을 농담거리로 삼음으로서 잭의 성적 능력을 희화화한다. OED에서 gossip은 1560년대에 “a person, mostly a woman, who delights in idle talk; a tattler”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잭은 물론이고 이 소설의 내레이터도 그녀를 “잘난척하는 아줌마, 수다쟁이, 술고래”(Mistress Many-Better, Dame Tittle Tattle, Gossip Pint-Pot, 383)라고 부르는 것은 말 많은 여성에 대한 당시의 부정적 인식을 작가와 주인공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소설 뿐 아니라 당시 문학작품에서 말 많은 여성은 비판과 풍자의 대상으로 많이 다루어졌다. 그런데 이들 작품에서 말많은 여성들은 서로 수다를 떠는 와중에서 남편을 속이거나 지배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으로 제시된다. 즉, 당시 문학에 나타난 말 많은 여성에 대한 비판은, 여성들끼리 연대하고 교육하여 남편 혹은 남성의 권위를 훼손하고 여성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에 대한 당시 사회의 걱정을 반영하는 것이었다(Woodbridge 231). 그리고 프랭크 부인이 낸에게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프랭크 부인이 참견한 이후로 낸이 일꾼들을 풍족하게 먹이지 않자 잭과 낸 사이에 최초의 의견다툼이 벌어지게 된다. 잭에게 일꾼들을 잘 먹이는 것은 단지 인도주의적인 배려만은 아니다. 중세부터 너그러움과 환대는 지배계급의 의무이자 권리였고 그들은 그 대가로 수혜자들의 감사와 존경을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계급과 권위를 자연스럽게 공고히 했다. 잭이 일꾼들을 잘 먹이고 거둠으로써 얻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잭의 “집”(house)은 1000명 이상의 일꾼들이 일하는 대량 생산 공장이다. 이 시기에 전형적인 직조공이 서너 개의 베틀을 놓고 일했던 것과 비교하면(Kerridge 176) 베틀만 200개이고 그에 따른 직공(weaver)만도 200명이라는 잭의 공장은 현대의 대량 생산 공장을 연상시키는 비현실적인 규모이다. 그런데도 이곳을 굳이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잭이 공장 주인이 아닌 가부장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잭은 일꾼들을 돈을 주고 부리는 주인이 아니라 일꾼들에게 너그럽고 관대하게 대함으로써 그들의 자발적인 존경과 사랑을 받는 가부장이다. 따라서 잭의 가부장으로서의 권위와 권력은 낸과의 관계에서 뿐 아니라 1000명에 달하는 남녀노소 일꾼들과의 관계에서도 구축된다.

이렇게 볼 때 낸을 부추겨 일꾼들을 박하게 먹이도록 한 프랭크 부인의 행동은 작게는 낸과의 관계에서 잭의 절대적 권위와 권력을 방해한 죄이고, 크게는 일꾼들과의 관계에서 가부장으로서의 존경과 권위를 손상시킨 죄이다. 언뜻 보아 별 해가 없어 보이는 늙은 수다장이가 소설 10장에서 그토록 심한 벌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그 벌은 당연하게도 대중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것이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여성이 말이 많은 것은 그 자체로 죄였고 더구나 말로 대들거나 불평하는 행위는 법률로 다스렸다(Belsey 181). “말괄량이”(scold)는 말 많은 여성을 일컫는 용어였고 이런 여성을 처벌하는 방식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었다. “말괄량이의 재갈”(scold's bridle)이라고 불리는 처벌은 여성의 입에 금속으로 된 재갈을 물리도록 고안된 기구를 여성의 머리에 씌우고 거리를 끌고 다님으로써 망신을 시키는 것이었고, “물속에 넣는 의자”(ducking stool)라고 불리는 처벌은 여성을 막대기 끝에 설치된 의자에 앉히고 물 속에 여러 번 넣었다 꺼냈다 함으로써 망신을 주는 것이었다. 술 취해 정신 못 차리는 프랭크 부인을 시골 바보가 바구니에 넣어 메고 다니면서 “누구 이 여자 모르오? 누구?”(who knows this woman, who?)라고 외치고 프랭크 부인이 이에 장단 맞추어 “누가 날 불러, 누가 날 불러, 누가?”(who co me, who co me, who?)라고 맞장구침으로써 온 마을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이들이 박장대소하며 즐기는 장면은 바로 위와 같은 말괄량이의 처벌이 희화화되고 축제화되어 재현된 것이다. 이후 프랭크 부인은 수치심으로 잭의 집은 물론이고 바깥출입조차 못했으며 일꾼들의 식사도 그녀의 참견 이전처럼 다시 풍족해졌다. 잠시 위협받았던 잭의 권위는 프랭크 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개적인 처벌을 함으로써 다시 공고해진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잭이 직접 한 처벌이 아니고 잭의 부재 시에 그의 하인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일이라는 데에서 그의 “집”에서 그의 권위가 확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랭크 부인의 이야기는 총 11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10장 째에 나온다. 잭이 150명의 하인들을 무장시켜 전쟁에 참여하고, 왕의 인정을 받아 친교를 나누며 왕의 방문을 받고, 해상봉쇄로 해외무역이 막히자 동료 직조공들을 규합해 단체행동에 나서고, 그 과정에서 울시(Wolsey)와 힘을 겨루어 뜻을 관철시키는 모든 모험들이 다 벌어진 후에 소설 끝부분에 나오는 것이다. 이 소설이 ��리딩의 토마스��와 비교해서도 엉성한 플롯과 에피소드 중심의 짜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프랭크 부인의 이야기가 소설 끝에 나온다는 것은 그래도 의미심장하다. 1장이 과부와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10장에서 프랭크 부인 이야기로 끝나는 것은 잭의 주체와 권위가 여성과의 관계에서 구축되는 과정을 소략해서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본다면 마지막 장인 11장은 이렇게 구축된 잭의 권위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에필로그이다. 가난한 귀족인 리들리 경(Sir Ridley)에게 속임수를 써서 하녀를 시집보내고, 속은 것을 알게 된 후 펄펄 뛰는 리들리 경에게, “당신이 열 번 기사라고 해도, 내 집에서 가장 가난한 하녀라도 당신의 정부로 주기에는 너무 아깝소.”(I account the poorest wench in my house too good to be your whore, were you ten knights [391])라고 여유 있게 일갈하는 잭의 행동은, 이처럼 확고하게 구축된 중산층 주체의 자신감 천명으로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III


��뉴베리의 잭��가 헨리 8세 시대의 존 윈치콤 한 사람의 성공담이라면 ��리딩의 토마스��는 헨리 1세 시대의 여러 직조공들의 이야기이다. 들로니가 4권의 소설을 어떤 순서로 썼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뉴베리의 잭��의 헌정사에서 이 작품의 반응이 좋으면 리딩의 토마스(Thomas of Reading), 글로스터의 조지(George of Gloucester), 우스터의 리차드(Richard of Worcester), 솔즈베리의 윌리엄(William of Salisbury)을 비롯한 다른 유명한 직조공들의 얘기를 계속해서 쓰겠노라고 약속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뉴베리의 잭�� 보다 ��리딩의 토마스��가 나중에 쓰인 것은 확실하다. 이 두 소설은 직조공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직조공의 삶을 다루는 방식이나 접근법에서는 차이가 있다. ��뉴베리의 잭��이 직조공의 이상적인 삶을 희극적으로 그리면서 들로니가 살고 있던 현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현실을 비판한다면, ��리딩의 토마스��에서는 직조공들의 막대한 부와 화목한 공동체를 찬양하면서도 그 이면의 어두운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부각시킨다.

또한 이 두 소설은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를 구축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뉴베리의 잭��이 울시와의 관계를 제외하고는 계급 간에 조화로운 관계를 보여주면서 계급 문제에 상대적으로 침묵하는 대신 잭 주변의 여성 인물들을 주변부로 몰고 종속시킴으로써 잭의 근대적인 주체를 구축한다면, ��리딩의 토마스��에서는 이처럼 인물들 간의 직접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러티브의 논리에 의해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가 구축된다. ��리딩의 토마스��는 들로니의 다른 소설에 비해 사건이나 이야기들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것으로 평가되곤 하는데, 총 15장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범주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중산층 직조공들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귀족인 로버트 공작(Duke Robert)과 마가렛(Margaret)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인데, 이 두 범주는 슈르즈베리(Shrewsbury) 백작의 딸인 마가렛을 연결고리로 하여 서로 병치되며 비교된다. 직조공들의 이야기에서 직조공 개개인들은 적극적이고 고집 센 아내에 의해 권위가 손상당하기도 하고, 개인의 방탕으로 인해 아래 계급으로 몰락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다른 계급의 시기와 탐욕으로 죽음을 맞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개인의 불행이나 망신에도 불구하고 소설 전체로는 오히려 중산층의 가치와 권위가 주창되는데 이는 직조공들의 이야기를 바깥에서 감싸고 있는 로버트 공작과 마가렛의 비극을 통해서이다. 그리고 성과 계급에서 직조공들과 대비되는 이 두 사람을 타자로 삼아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소설 속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가 구축된다.

먼저 직조공들의 이야기를 보자. 소설 속 직조공들은 계급과 성 양쪽의 위계질서에서 ��뉴베리의 잭��과는 달리 확고한 권위를 갖지 못한다. ��뉴베리의 잭��에서는 주인과 도제 사이가 자애로운 가부장제로 설정되어 아무 갈등이 없었으며, 잭의 갤러리에 걸려있는 초상화들과 잭 자신의 성공담이 보여주듯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개인이 근면 성실하면 중산층의 신분상승은 보장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딩의 토마스��에서의 계급 문제는 그렇게 이상적인 것이 아니다. 직조공 토마스 도브(Thomas Dove)의 신분의 부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확고해 보이는 중산층의 부와 지위는 언제라도 아래 계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신분하락(downward mobility)의 그림자를 동반하는 것이고, 주인과 도제 관계는 가부장적인 주종관계가 아니라 계약에 의한 금전적 관계이다. 주인이 파산하자 주인을 떠나는 것은 물론, 못 받은 임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다른 채권자들보다 한 발 앞서 주인을 고발하는 도제의 행동은 한편으로는 비인도적인 것으로 비난받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생생한 현실 원리의 묘사로 소설 속에서 일정한 정당함을 부여받는다. ��뉴베리의 잭��에서처럼 주인과 도제가 가부장적인 가족관계를 이루고 주인의 권위가 하인이나 도제에 의해 자발적으로 인정되며 지켜지는 행운은 이들 직조공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관대함과 너그러움의 처세로 지역사회에서 존경을 받았던 잭과는 달리 ��리딩의 토마스��의 부유한 직조공들은 지역사회 내에서의 위치와 처신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한다. 6장에서 런던 여자들처럼 좋은 옷과 장신구를 사달라는 부인의 요구에 대해 너무 좋은 옷을 입으면 다른 계급 사람들의 질시를 받게 된다면서 부인을 만류하는 사이먼(Simon)의 논리는 상승하는 계급인 중산층이 지역사회에서의 처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소설 속에는 실제로 이들의 부를 질시하고 탐내며 이들로 인해 박탈감을 겪는 다른 계급들이 있는데, 2장에서 여관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남편이라든가 직조공들이 늘 묵는 여관의 주인이 그 예이다. 직조공들의 돈과 호탕한 씀씀이에 매료된 아내들과 이들을 통제하려는 남편의 갈등에서 결정적으로 아내가 이기는 것은, “당신이 우리한테 어울려 놀지 말라고 하는 그 양반들은 참하고 예의바른데다가, 당신보다 훨씬 돈도 많다.”(These men, of whose company you forewarne vs, are (for aught that euer we saw) both honest and courteous, and in wealth farre beyond your selues [217])6)는 한 마디이다. 직조공들의 부가 다른 계급의 원망을 사는 빌미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코울(Thomas Cole)이 살해되는 것도 그의 돈 때문이다. 맥베스 부인(Lady Macbeth)을 연상시키는 여관집 여주인이, ”그자는 돈이 너무 많고 우리는 너무 없어“(he hath too much, and we haue too littl [258])라며 남편을 설득하는 장면은 부의 불균형이 가져오는 계급 간의 적대감이 살인까지 저지를 만큼 심각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결국 ��리딩의 토마스��의 직조공들은 자기 계급의 확고한 권위를 확립하지 못하고 한편으로는 언제라도 몰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다른 한편으로는 아래 계급의 도전 속에서 불안한 처지에 있는 것이다.

성에 따른 위계질서에서도 ��리딩의 토마스��의 직조공들은 불안한 처지이다. ��뉴베리의 잭��에서 잭이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권위와 권력을 확고히 구축하는 것에 비하여 ��리딩의 토마스��의 직조공들은 아내에게 매번 진다. 사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적극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말이 많다. 이들은 일하는 여성으로서 남편과 동등하게 가게를 관리하고 집안 대소사를 처리하며 남편이 이루어낸 부의 상당부분이 자신의 노동 덕분이라는 자신감도 있다. 그리고 이 자신감에 근거하여 이들은 당당하게 요구를 하고 그 요구를 어떻게 해서라도 관철시킨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사이면 부인이 그 예인데, 보수적이고 안전한 처신을 하려는 사이먼과 당당하게 부를 과시하려는 부인 사이의 언쟁에서 부인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결국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원하는 바를 이룬다. 그리고 이는 다른 부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이들 직조공의 부인들은 모두 사치한 옷차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당시 의복은 계급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중산층의 지나치게 사치한 옷차림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특히 공격받았다. 따라서 이들 여성의 사치한 옷차림은 남편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사회의 위계질서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데, 이들 말 많고 공격적인 여성들은 소설 속에서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다. ��뉴베리의 잭��의 프랭크 부인이 잭의 권위를 손상시킨다는 이유로 혹독하게 처벌받았던 것과는 달리 이들은 소설 속에서 어떤 비난이나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이 처벌은 중산층 여성들이 아닌, 귀족의 딸이자 후에 하녀가 된 마가렛에게 내려진다.

마가렛과 로버트 공작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인물들인데 이들은 계급과 성의 두 범주에서 직조공들의 타자가 된다. 현실 속의 계급과 성의 위계질서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위협받고 있는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는 타자인 이들과의 차별에 의해, 그리고 이들을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비로소 구축된다. 게다가 이들은 희생양으로 만들기에 만만한 인물들이다. 둘 다 귀족이지만 로버트는 왕위 다툼에서 패배한 무력한 인물로 설정되어있고, 마가렛은 아버지의 반역으로 인해 하녀로 전락한 여성이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 다 긍정적인 여러 덕목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서, 부유하고 현실적인 중산층과 고귀하지만 무능한 이들 타자가 서로 대비되며 이들 타자가 희생되고 도태되는 과정을 통해 중산층의 주체가 구축된다.    

로버트 공작은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의 둘째 아들로, 십자군 전쟁에 나간 사이 동생인 헨리에게 왕위를 찬탈 당한다. 큰 아들이 죽었으므로 둘째인 그가 왕위를 계승해야하지만 자리를 비운 사이 동생이 왕위를 차지한 것이다. 기름부음을 받은 왕과 찬탈자 사이의 갈등은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2세��(Richard II)에도 나오지만 셰익스피어와는 달리 들로니의 선택은 명쾌하다.  ��리딩의 토마스��의 1장은 헨리가 왕이 된 과정에 대한 지극히 객관적인 묘사로 시작된다. 이 묘사는, 헨리에게 적법한 왕위 계승권이 없다는 것과 로버트가 용감하고 신앙심 깊으며 명예로운 왕자라는 것, 그리고 헨리가 찬탈한 왕위를 지키기 위해 귀족과 평민들의 호의를 얻고자 애쓰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직조공들과 들로니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세 번째 사실이다. 들로니와 직조공들은 헨리가 찬탈자이고 로버트가 적법한 왕위계승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유야 어쨌건 헨리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한 헨리에게 충성을 바친다. 직조공들에게 중요한 것은 직조업을 번창시키고 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지 어느 왕자가 더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빈틈없고 계산에 능한 헨리와 달리 로버트는 욕심 없고 낭만적이며 무력하다. 그는 마가렛이 귀족의 딸임을 알지 못했을 때부터 하녀인 마가렛에게 정식으로 청혼할 만큼 낭만적이고, 왕위를 빼앗겼으면서도 매사냥을 즐길 만큼 욕심이 없다. 그리고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 없이 마가렛을 데리고 도망갈 만큼 무능하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로버트는 헨리뿐 아니라 직조공들과 대비되기도 한다. 귀족인 로버트는 중산층 직조공들에게는 타자이다. 이는 그를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알 수 있는데 로버트의 언어는 소설 속 다른 언어구사와는 달리 미사여구와 수사법으로 이루어져있다. 같은 왕실이라도 헨리나 그의 왕자들의 대사가 중산층의 대사와 별로 다르지 않게 그려지는 것에 비해 로버트의 언어는 과장되고 낭만적이며 문어적이다. 이는 로버트의 대사가 마가렛에게 구애하는 장면에 주로 나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산층과 확연히 차별되는 타자로 로버트를 설정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설정의 결과는 로버트의 희화화이다. 로버트의 문어적인 수사는 중산층의 일상적 언어의 활기와 비교할 때 인위적이고 어색하며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들린다. 정당한 왕위 계승권자이고 고귀한 인물이면서도 로버트는 이렇게 다소 우습고 무능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로버트는 그 높은 신분으로 인해 계급 면에서 중산층의 타자가 되지만 직조공의 현실적인 힘과 대비되는 무력한 타자이다. 그런 그가 도태되고 처벌받는 것은 소설 속에서는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가 계급적 타자를 대비시키고 희생시키면서 구축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로버트의 처벌이 계급 문제에 대한 중산층의 근심이 투사되고 해소되는 과정이라면 마가렛의 비극은 여성 문제에 대한 중산층의 근심이 투사되고 해소되는 과정이다. 로버트가 귀족이고 왕자이듯이 마가렛도 직조공들과는 다른 계급의 여성이다. 그녀는 원래는 귀족이지만 아버지의 반역으로 인해 재산을 몰수당하고 하녀가 된다. 귀족이건 하녀이건 직조공과는 다른 계급이고 타자인 것이다. 마가렛은 출신 계급뿐 아니라 행실과 처신에 있어서도 직조공의 아내들과 대비된다. 직조공의 아내들이 말 많고 당당하며 자기주장이 강한 것에 비해 마가렛은 복종적이고 얌전하며 조용하다. 대귀족의 딸에서 하녀로, 여기서 다시 죄수로 신분이 계속 몰락했지만 마가렛은 불평하지 않는다. 하녀가 되었을 때에는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을 한탄할 뿐이고, 죄수가 되었을 때에는 자기 때문에 로버트가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을 미안해한다. 자신의 계급을 넘어서는 사치를 탐하고 남편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직조공 아내들과는 달리 마가렛은 계급과 성의 위계질서를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은 마가렛이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이 소설의 사실주의적인 다른 묘사와는 달리 상징적이고 제의적으로 묘사되어있다. 그녀의 서원식을 보기 위해 헨리 왕이 몸소 참석하고, 그녀는 보석관과 장신구, 화려한 의복으로 치장하여 수녀원까지 행진한 후, 수녀원장 앞에서 자기 손으로 보관과 장신구, 의복을 하나하나 벗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속옷 바람으로 수녀원으로 들어간다. 스즈키(Suzuki)는 화려한 의복을 입고자 했던 직조공의 아내들과 화려한 의복을 벗고자 하는 마가렛을 대비시키며 이 장면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귀족이자 여성이고 카톨릭인 마가렛은 자기를 버리고 세속적인 사치를 다 포기함으로써 소설 속 다른 여성들의 탐욕에 대치되며 이들의 탐욕을 상징적인 차원에서 보상해주는 자발적인 희생양 역할을 한다.


On a clearly symbolic level, Margaret as an aristocratic, a woman, and a Catholic functions as the willing scapegoat whose self-abnegation and renunciation of worldly riches counterpoints and atones for the rapaciousness of the other women in the text.(200)


이처럼 소설 속에서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는 로버트와 마가렛, 즉 귀족과 여성이라는 두 타자와의 대비와 이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을 통해 구축된다. 강한 여성에 의해 위협받은 남성의 권위는 마가렛의 자발적인 복종과 희생에 의해 상징적인 차원에서 보상받고, 신분몰락의 두려움과 계급간의 갈등에 시달리는 중산층의 불안은 귀족인 로버트의 몰락과 처벌에 투사되고 해소된다.



IV


캐서린 벨지(Catherine Belsey)는 근대성의 특징으로 주체와 객체, 몸과 마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등이 분리되고 이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주어지는 것을 들고 있다(192-224). 이와 같은 근대성의 위계질서에서 여성은 사적인 영역, 몸의 영역, 객체의 영역으로 주변화 되고 종속되었으며, 이처럼 여성을 종속화, 객체화, 주변화 시키면서 구축된 근대적 주체는 당연하게도 남성이었다(Cohen 22). 이를 역으로 얘기하자면, 남성의 근대적 주체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성의 종속화, 객체화, 주변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더구나 이 근대적 주체가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 즉 중세적 질서와 근대적 질서가 혼재하면서 근대성의 여러 특징들이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던 16세기에는 근대적 주체의 구축을 위해 여성의 객체화, 종속화, 주변화가 더욱 더 필요했다. 게다가 그 주체가 근대 초기에 떠오르는 계급이었던 중산층이라면 위의 위계질서들에 계급이라는 중요한 범주가 추가되어야 한다.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는 성과 계급의 위계질서에 기대어, 즉 한편으로는 여성을 종속화, 주변화 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계급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구축된 것이다. 그리고 들로니의 소설에서 벌어지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뉴베리의 잭��은 근대적 주체가 구축되는 과정을 여성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집중적으로 그려내면서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가 여성인물의 자발적인 종속화를 통해, 혹은 여성인물을 주변부로 몰고 희생양으로 삼으면서 구축됨을 보여준다. 반면에 ��리딩의 토마스��는 강한 여성에 의해 위협받은 중산층의 근대적 주체가 계급과 성에서 타자인 두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구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산문소설이라는 장르도 아직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르의 관습이나 문법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고,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나 자기표현도 아직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로니의 소설은 중산층의 주체가 구축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초기 문건 중의 하나로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이는 이 시기 다른 작가들에서 보여지는 근대성 문제와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사극은 1사부작과 2사부작이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1사부작이 잔다르크(Joan of Ark)나 마가렛(Margaret)과 같은 강한 여성을 등장시켜 이들을 영국의 적으로 만들면서 이들을 희생시켜 근대국가로서의 영국의 정체성을 구축한다면, 2사부작에서는 아예 주변부에 있거나 침묵하는 힘없는 여성을 등장시켜 영국의 근대성이 여성을 종속화, 객체화, 주변화시키면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Rackin and Howard 3-29). 이렇게 다른 작가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여성의 주변화, 종속화, 객체화는 근대성 혹은 근대적 구체의 구축에서 반드시 동반되는 징후이자 과정인 것이다. 그리고 중산층 작가였던 들로니의 경우 이 과정을 중산층에 특화시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천안대학교)




주요어: 토마스 들로니, 16세기, 산문소설, 근대적 주체, 여성,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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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Women and the Construction of the Modern Subject: A Reading of Thomas Deloney's Jack of Newbery and Thomas of Reading


Mi Young Lee


  This paper examines the construction of the modern middle-class subject in Deloney’s novels, focusing on the hierarchies of sex and class. In Jack of Newbery and Thomas of Reading,  Deloney’s two novels depicting the life of clothiers in early modern England, Deloney seeks to define the modern subject in terms of patriarchy, authority, and power, which go hand in hand with the subordinating, villainizing and even scapegoating of women. In Jack of Newbery, Jack’s power and authority are enhanced in the context of gender hierarchy―getting rid of the threatening women, punishing the unruly, and rewarding the obedient. In Thomas of Reading, the male middle-class subject is constructed in the context of gender and class hierarchies, making women and the aristocracy as the Other. Margaret, an aristocratic woman, is used as a scapegoat bearing the burden of male anxiety about strong middle-class women, and Robert, a powerless aristocrat, functions as a foil to the powerful and rich middle-class clothiers. This legitimization and construction of the male subject at the expense of woman, which we take to be a symptom of modernity itself, is one in which Deloney as a middle-class author participates by creating middle-class heroes in the nascent genre of prose fiction.




Key words: Thomas Deloney, sixteenth century, prose fiction, modern subject, woman, class.


1) 이 글에서는 산문으로 된 이야기라는 의미로 소설(novel)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을 밝혀둔다. 즉, 소설의 기원이라든가 소설의 정의와 같은 문제들은 이 글의 초점이 아니다.


2) 이는 각 소설 앞에 붙은 헌사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Jack of Newbery는 Clothiers에게, The Gentle Craft Part 1은 "all the good Yeomen of the Gentle Craft"에게, The Gentle Craft Part 2는 “the Master and Wardens of the Worshipful Company of Cordwaynors"에게 각각 헌정되어있다.


3) "clothier"는 옷감을 만드는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가진 기술자들을 총칭하는 말인데, 예컨대 weaver, carder, spinner, yarder 등이 포함된다.


4) Linton은 Erasmus를 비롯한 휴머니스트들이 부르주아 남성 주체를 궁정의 위계질서와 가정의 위계질서에 기대어 정의했다고 설명한다.


5) An Anthology of Elizabethan Prose Fiction, ed. Paul Salzman, Oxford: Oxford UP, 1987. 이후 Jack of Newbery의 본문 인용은 면수만 밝히도록 하겠다.


6) The Works of Thomas Deloney, ed. Francis Oscar Mann, Oxford: Clarendon Press, 1912. 이후 Thomas of Reading의 본문 인용은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