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세이드와 앤 프랭크포드: 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들에 대한 단상





박 윤 희






  “남성은 남성에 대해, 여성은 여성에 대해 써야만 한다”(woman must write woman. And man, man) (335)고 주장하는 시수 (Hélèna Cixous)의 극히 이분법적인 “여성적 글쓰기(l’écriture féminine)”의 맥락에서 보면 남성작가들이 쓴 글(writings)은 “종잡을 수 없는 허구의 마력”(the mystifying charms of fiction)으로 치장되고 숨겨져 있는, “여성을 영속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장소”(locus) (337)이다. 특히 여성의 지조와 정절을 주제로 하는 담론은 시수가 주장한대로 교묘하게 여성을 억압하는 반여성주의 텍스트(antifeminist text)로서 오늘날의 많은 비평가들에 의해 지적되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또는 문학적으로 존재했던 수많은 ‘선녀들’(good women)에 대한 도덕적인 담론도 시수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서 반여성주의 텍스트로서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본 논문에서 다루는 ‘친절(kindness)’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두 여인에 대한 담론 또한 도덕적 메시지로 위장된 이같은 여성억압의 전형적인 예일 수도 있다.

  헨리슨(Robert Henryson)의 크레세이드(Cresseid)와 헤이우드(Thomas Heywood)의 앤 프랭크포드(Anne Frankford)는 영문학에 있어 남자들이 베푼 관용에 감복하여 단식이라는 방법으로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마감한 소위 대표적인 ‘돌아온 열녀’들이다. 가부장사회의 여성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어졌던 덕목인 정조(chastity)를 간과하고 육욕(carnality)과 간통(adultery)의 중대한 죄(cardinal sin)를 범함으로써 도덕적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이 여인들은 교묘하게 위장된 가부장제의 이데올르기 속에 화려한 꽃으로 변신되어 “감금”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본 논문은 반여성주의 텍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보기 위해 먼저 헨리슨의 작품에서 유럽문학의 대표적 요부(femme fatale)인 크레세이드가 ‘돌아온 열녀’로서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이에 비추어 크레세이드와 유사한 참회의 패턴을 보이는 헤이우드의 앤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특히 전통적 요부 타입이 아닌 정숙한 여인상으로 설정되어 극의 처음부터 칭송받던 앤이 ‘타락’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간 이유에 대해 여성주의와 반여성주의의 맥락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크리세이다(Criseida)는 유럽문학의 전통에서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이다. 12세기 중엽 프랑스의 베노아 드 상모르(Benôit de Sainte- Maure) 이래 17세기의 드라이든(John Dryden) 까지 육백여년 동안 여성 변절의 상징으로서 유럽문학에서 되풀이되어 재현되었으며,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 사슬 속에서 크리세이다는 “지조 없는 여성의 전형적인 예”(standard example for an unfaithful woman) (Mieszkowski 73)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1) 크리세이다 이야기의 사슬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트로일러스를 배신하고 디오메드(Diomede)를 새로운 애인으로 삼았던 크리세이다의 그 후 행적에는 이 이야기를 다루었던 작가 중 헨리슨을 제외한 모든 작가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헨리슨의 ꡔ크레세이드의 유언 (The Testament of Cresseid)ꡕ은 바로 이 침묵의 시점에서 출발하여 ‘잊혀진 여인’ 크레세이드의 ‘그 후 행적’을 서술한다.

  크레세이드의 죽음을 다룬 헨리슨의 이야기는 이와 같이 크리세이다 이야기의 전통에서 보았을 때 아주 특이한 작품이다. 왜냐하면 트로일러스(Troilus)와 크리세이다 이야기의 전통에 있어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다루는 핵심적인 주제는 크리세이다의 배신으로 인한  “트로일러스의 죽음”(Boitani 2)이기 때문이다. 헨리슨의 이야기에서는 크리세이다의 배신으로 인하여 영웅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트로일러스가 아킬레스(Achilles)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악녀의 표상인 크레세이드가 육욕의 죄로 가득 찬 육신을 죽이고 정신적으로 부활함으로써 참다운 인간으로 거듭남을 보여준다. 이렇듯 전통적인 크리세이다 이야기의 에필로그(epilogue)라 할 수 있는 헨리슨의 이야기는 트로일러스를 배신한 이후의 크레세이드의 행적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비평적 관심을 받는다. ꡔ크레세이드의 유언ꡕ은 단지 616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이야기로 트로일러스를 배신한 크레세이드의 죄와 벌과 처절한 참회를 통한 자기 성찰을 다룬다.

  ꡔ크레세이드의 유언ꡕ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트로일러스를 배신했던 크레세이드가 오히려 새 애인으로 삼았던 디오메드(Diomed)에게 버림받는다. 모든 욕심을 채운 바람둥이 디오메드는 곧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고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크레세이드를 쫓아내며, 디오메드에게 버림받은 크레세이드는 점점 타락하여 마침내는 ‘거리의 여인’이 된다:


Quhen Diomeid had all his appetyte,

And mair, fulfillit of this fair Ladie,

Upon ane uther he set his haill delyte

And send to hir ane Lybell of repudie,

And hir excludit fra his companie.

Than desolait scho walkit up and doun,

And sum men sayis into the Court, commoun. (71-77)


디오메드가 크레세이드로부터 모든 욕심을 채웠을 때, 그는 다른 여자에게 육욕의 눈길을 돌렸다. 크레세이드에게는 이별의 이혼장을 보내고는 그녀를 쫓아버렸다. 크레세이드는 외로이 .여기저기 떠돌다 마침내는 궁정으로 들어가 매춘부가 되었다 한다.


그리스 진영의 군인들 사이에서 매춘부처럼(giglotlike) 육욕의 쾌락을 좇아 떠돌던(80-84) 크레세이드는 결국 수치스러움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변장을 하고 비밀리에” 아버지 칼카스(Calchas)의 신전(비너스와 큐피드를 모시는)으로 돌아오게 된다(94-98). 그 곳에서 자신의 초라해진 운명을 한탄하며 지내던 크레세이드는 마침내 르네상스시대의 매독(syphilis)이라 할 수 있는 문둥병(leprosy)에 걸려(342-343) 비참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크레세이드가 문둥병에 걸리게 되는 계기는 비록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은신하고 지내야만 하는 자신의 영락한 신세를 한탄하며 신들을 격렬하게 비난한 신성모독죄의 결과로 되어있지만 (My blaspheming now have I bocht full deir; 354), 실제로 전체 문맥에서 보면 성적으로 문란한 육욕의 삶 때문에 얻어진 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O fair Creisseid, the flour and A per se

Of Troy and Grece, how was thou fortunait!

To change in filth all thy Feminitie,

And be with fleschlie lust sa maculait,

And go amang the Greikis air and lait

Sa giglotlike, takand thy foull plesance!

I have pietie thou suld fall sic mischance. (78-84)


오, 트로이와 그리스의 꽃이요 귀감이었던 아름다운 크레세이드여! 그대의 고결한 여성성이 어찌하여 온통 얼룩으로 더럽혀지는 운명을 맏이 했는가! 육욕의 더러움으로 물들어 그리스 병사들 사이에서 매춘부처럼 더러운 쾌락을 즐기는 운명을 맏이 했던가! 그대가 그러한 불운을 겪음에 나는 무척 슬퍼하는도다.


비록 헨리슨의 작품은 죄와 벌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결과를 자아내지만, 철저한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친 구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에 단순히 트로일러스의 ‘친절’에 감복하여 ‘개과천선’한 가부장제의 선전물은 아니다. 처음 크레세이드는 문둥병에 걸린 자신의 신세가 변덕스런 운명의 여신(Fortune)이 지배하는 덧없는 지상에서의 삶 때문인 것으로 오해하여 그리스와 트로이의 여인들에게 자신의 경우를 거울삼아 ‘변덕스런 운명’을 조심하라고 충고 한다:


Exempill mak of me in your Memour,

Quhilk of sic thingis wofull witnes beiris,

All Welth in Eird, away as Wind it weiris.

Be war thairfoir, approchis neir the hour:

Fortoun is fikkill, quhen scho beginnis & steiris. (465-469)


이러한 비통한 일들을 목격하면서 그대들의 기억 속에 나를 본보기로 삼으시오. 지상에서의 행복은 바람처럼 스쳐가는 것, 그 운명의 시간이 가까이 오는지 유의하시오. 수레바퀴가 움직이면 운명의 여신은 변덕스러운 존재라오.


그러나 이러한 회한의 독백에서도 이 모든 불행이 진정한 연인이었던 트로일러스를 배신하고 육욕의 삶을 추구하여  디오메드를 비롯한 여러 남성들 사이를 전전하면서 얻게 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크레세이드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

  크레세이드가 진정한 자기성찰을 갖게 되는 계기는 트로일러스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성 밖에서 구걸을 하던 크레세이드와 전쟁에서 돌아오던 트로일러스는 우연히 조우하게 되는데 비록 병으로 인해 알아볼 수 없게 된 얼굴이지만 그 모습에서 옛사랑의 기억을 떠올린(502-504) 트로일러스는 옛 애인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 때문에 크레세이드에게 돈을 듬뿍 주고 떠난다. 후에 동료들에게서 트로일러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크레세이드는 자신의 잘못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깨닫고 그 충격에 기절한다 (O fals Cresseid and trew Knicht Troylus; 546). 식음을 전폐하고 한탄으로 지새우던 크레세이드는 마침내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처럼 사랑의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말라는 충고의 유언장을 남기고, 이 모든 불행이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는 최후의 성찰을 하면서 죽는다(Nane but my self as now I will accuse; 574).

  일부 비평가들은 작품 속에서 헨리슨이 “화려한 수사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성을 위장했고(Sklute 190), “비도덕적으로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사용하는 여성들에 대한 섬뜩한 경고”요 크레세이드의 비참한 파멸로 부터 “가학성 쾌락(sadistic pleasure)”을 얻고자 했던 것(Moran 23)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ꡔ크레세이드의 유언ꡕ이 초서의 ꡔ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Troilus and Criseyde)ꡕ의 연장이라는 점에서2) 헨리슨의 작품은 이 이야기의 전통에서 보아야만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헨리슨의 이야기를 전통과 분리시켜 본다면 이 이야기는 한낱 방자한 요부의 최후심판과 반성의 단순한 교훈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크레세이드의 자기성찰과 구원의 문제에 대한 많은 비평적 논쟁이 있지만, 크리세이다 이야기의 반여성주의 전통에서 본다면 헨리슨의 작품은 단순히 한 죄인의 반성과 구원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즉 크레세이드의 반성과 구원은 기독교적인 면을 강하게 풍기고는 있으나 결국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독자들의 크레세이드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신시키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크리세이다는 단 한 번의 배신으로 ‘여성 변절’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이 되었고, 그 후 그녀가 자기의 실수(혹은 잘못)를 뉘우쳤는지에 대한 여부를 떠나 단순히 한 잊혀진 여인으로 그녀를 다룬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방임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위대한 문학 작품 속에서 남성인물들이 처절한 자기반성을 통해 작품 속에서 또는 독자들에 의해서 구원되고, 위대한 인간의 표상으로 표출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헨리슨의 여주인공도 그들 중의 하나이다. 마치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리어(Lear)왕이 거짓된 외면(appearance)과 실제(reality) 사이에서 눈을 잃은 후 진정한 ‘심안’을 얻었듯이 크레세이드는 처절한 육체적 파괴와 이에 수반되는 정신적 방황과 고통을 통하여 성(sex)을 떠난 한 참다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크레세이드의 자기성찰과 구원에 못지않게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관심을 갖는 부분은 크레세이드가 트로일러스의 사랑을 배신하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된 동기이다. “긴 겨울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초서가 쓴 아름다운 크레세이드와 늠름한 트로일러스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나서”(39-42) 곧바로 읽은 크레세이드의 최후를 기록한 이야기(uther quair; 61)가 바로 ꡔ크레세이드의 유언ꡕ이라고 헨리슨의 나레이터가 암시했듯이 크레세이드의 변절의 동기는 초서의 ꡔ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ꡕ에서 찾아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초서의 크리세이드는 전통적인 요부의 모습을 강조하는 복카치오(Giovanni Boccaccio)의 ꡔ일 필로스트라토ꡕ(Il Filostrato)에서 재현된 크리세이다(Criseida)와는 아주 다르게 가련한 비운의 여인상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그녀의 모호성은 그녀의 의미” (her ambiguity is her meaning) (Muscatine 164)라고 정의될 정도로 크리세이드의 인물과 성격 설정이 아주 모호하게 표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 변절과 타락의 동기를 찾는 일 역시 무척 어렵다. 비록 기존의 적극적, 능동적, 그리고 뇌쇄적인 요부의 모습보다는 소극적, 수동적, 그리고 가련한 전쟁 피해자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초서의 이야기에서 크리세이드는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요부의 모습으로, 또 한편으로는 당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희생된 가련한 비운의 여인상으로 동시에 표출된다.

  초서의 작품에서 크리세이드는 가부장 사회에서 규정한 전통적 선녀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과부로서 “자신의 몸은 자기 것”(I am my owene womman)이므로 당시의 여자로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독립된 여성으로 그 삶을 향유하고 있고3) 또한 “나는 수녀가 아니기” 때문에 (I am naught religious)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에 대해 개의할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한다(2. 750-63). 그러나 초서의 나레이터는 시종일관 크리세이드를 주로 수동적인 가련한 여인으로 그리려 애쓰고 있으며 이는 홀로 사는 여성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과 맞물려 표출된다.

  물론 전통적인 요부를 수동적인 한 가냘픈 여성으로 표현했다하여 초서의 작품이 이 이야기의 반여성주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고는 단언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크리세이드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한 남자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택한 또 하나의 크리세이다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반여성주의 텍스트인 크리세이다와 초서의 크리세이드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초서의 여주인공은 뇌쇄적인 눈으로 한 순진한 청년을 유혹하는, 이기적이고, 본능적이며, 계산적인 ‘요부’가 아니라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린, 전적으로 운명에 의해 ‘지조 없는 여자’로 되어버린 한 비련의 ‘미녀’로 남는다. 이런 맥락에서 나레이터는 “연약한 마음, 용기의 부족” (Tendre-herted, slydynge of corage) (5. 825)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또는 그저 그렇게 트로이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본의 아니게 트로일러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설명함으로써 그녀의 배신을 변명하려고 노력한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로렌스(William W. Lawrence)는 “크리세이드에 동정적인 초서는 그녀가 트로일러스를 배신했음에도 그녀를 비난하지 않고 다만 그녀의 마음이 여림(weaknss)을 가엾게 여긴다”(146)고 평했으며, 코그힐(Nevill Coghill)은 ꡔ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ꡕ는 “마음이 여린 한 젊은 여성의 변절(fickleness)을 동정적으로 다루는 작품”(67)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크리세이드의 연약함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전쟁 등 그 사회의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직접적으로 연유되었다고 반박한다. 에어스(David Aers)는 “[크리세이드의] 연약함은 그녀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녀가 속한 사회 현실 때문”(181)이라고 주장한다. 딘쇼(Carolyn Dinshaw)는 더 나아가 “여성의 몸은 하나의 텍스트로서 남성들에 의해 씌어지고, 읽혔고, 해석 되어졌으며”(17), 이것은 오로지 가부장적 사회 내에서의 “조화로운 평안(harmonious rest)"(51)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크리세이드의 연약함은 (그녀의 배신을 낳게 하여 결과적으로) 트로일러스를 파멸시킴으로써 가부장적 사회의 질서와 조화를 깨는 결과를 가져오고, 따라서 그 사회의 구성원들을 교화시키고 그 사회의 화합을 위해선 반드시 규탄되어야 할 악덕인 것이다.

  이러한 비평적인 논쟁에도 불구하고 초서의 작품에 드러나 있는 변절의 직접적인 동기는 크리세이드의 굳건하지 못한 마음으로 결론지어진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결국 크리세이드가 ‘여자’이기 때문이냐 아니면 ‘인간’이기 때문이냐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크리세이드가 처해 있는 주변 상황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버지(Calchas)의 보호아래 살고 있던 크리세이드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아버지마저 적진(Greek진영)으로 도망침으로써 트로이 땅에서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과부로 등장한다.


As she that niste what was best to rede

For bothe a widowe was she, and allone

Of any freend to whom she dorste hir mone.  (1.96-98)


[크리세이드는]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의지할 곳 없는 과부였고 하소연 할 친구도 없는 외톨이였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설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크리세이드가 초서의 이야기 속에서 처한 입장을 극명하게 표출한다. 크리세이드가 그리스 군대에 의해 포로가 된 안테노(Antenor)와 맞교환 될 때도 그녀의 의사는 전혀 반영이 되지 못한 채 피동적으로 전쟁이라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자신의 몸을 내 맡겨야만 했고 트로일러스와의 사랑관계에서도 그녀는 모든 것을 트로일러스와 판다루스(Pandarus)의 처분에 맡겨야만 했다. 


And, for the love of god, sin al my trist

Is on yow two, and ye ben bothe wyse,

So wircheth now in so discreet a wyse,

That I honour may have, and he plesaunce;

For I am here al in your governaunce. (3. 941-45)


사랑의 신께 맹세컨대, 내 당신들 두 사람 [트로일러스와 판다루스]을 믿기에 그리고 당신들은 현명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일을 추진하여서 나는 내 명예를 지키고 그[트로일러스]는 사랑의 즐거움을 얻게끔 하여 주십시오. 나는 전적으로 당신들의 손안에 놓여 있으니까요.


비록 크리세이드는 트로이 진영에는 숙부인 판다루스가 그리고 그리스 진영에는 아버지인 칼카스가 있었으나 그들은 크리세이드가 곤란에 빠져 있을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다만 판다루스는 친구인 트로일러스의 입장만 생각하는 ‘중매인’으로, 그리고 칼카스는 자신의 예언만을 고집하는 ‘폭군아버지’의 역할 만을 담당한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모색하고자 디오메드의 보호아래 그리스 진영에 잔류하기로 한 크리세이드의 선택은 가부장 사회의 질서를 뒤흔드는 요부의 파괴적인 행동으로서 결코 비난받을 수 없을 것이다. 크리세이드와 크레세이드의 변절 과정과 동기, 그리고 마지막의 자기성찰은 르네상스 시대 남편의 ‘친절’로 인해 죽은 한 여인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헤이우드의 “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은 헨리슨의 “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과 표면적인 맥락에서 여러 가지로 비슷한 점을 갖는다. 텍스트 상에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는 동기와 이유로 자신의 남자를 배신하여 정조를 훼손시켰으며, 이를 관대하게 처리해준 남자들의 ‘친절함’에 감복하여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남자들의 관대함에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스스로 장렬하게 생을 마감한 점에서 이들의 운명과 처지는 매우 닮은꼴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이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이 존재한다. 전쟁으로 인해 둘로 나눠진 ‘흑과 백’의 세계에서 자신의 생존에 있어 중대한 선택을 한 크레세이드와는 달리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가부장제의 ‘꽃’으로 칭송받던 앤 프랭크포드는 한 순간의 유혹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육욕적인 유혹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도덕적인 능력이 남성들보다 열등하다는 전통적인 반여성주의 해석이 득세를 하는 것이다.4)

  소위 가정비극(domestic tragedy)으로서의 헤이우드의 ꡔ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ꡕ(A Woman Killed With Kindness)은 여성의 정조를 그 주제로 하고 있으나 ꡔ오델로ꡕ(Othello), ꡔ아든 오브 피버샴ꡕ(Arden of Feversham)과 같이 부부관계를 중심으로 다루는 동시대의 다른 비슷한 종류의 비극과는 달리 작품 속에서 그 어떤 심각한 욕정이나 질투심, 그리고 복수심 등이 배제되어 있다. 또한 쇄프톤(Shafton), 웬돌(Wendol)같은 소악당(minor villains)들을 제외하면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악인 또는 ‘비극적 결함’(tragic flaw)을 지닌 비극적 주인공도 부재한다. 따라서 작품 안에는 유혈 복수전도, 오쟁이 진(cuckolded) 남편 또는 여동생의 정조를 착취(exploitation)하려는 오빠에 대한 조롱도, 그 어떤 심각한 범죄 행위도 일어나지 않으며 다만 잔잔하게 조용한 파문만 일으키며 여성의 정조와 남편의 관용에 대한 문제를 극의 전편에 걸쳐 심도 있게 다루고 있을 뿐이다.5)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기존의 비평 경향은 대체적으로 여성의 정조와 간통, 남성의 관대함/친절함(kindness)의 실체에 관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극의 처음부터 완벽한 여성/아내로 칭송을 받고 있던 앤과 같은 모든 여성이 본받아야할 이상적인 ‘가부장제의 꽃’이 오히려 모든 여성이 피해야할 본보기로서의 교육-홍보용 선례로 뒤바뀐 이유, 즉 앤의 타락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이 극에 대한 초기 비평부터 최근 맥퀘이드(Paula McQuade)의 지적까지(232), 드라마 상에서도 또는 비평적으로도 명쾌한 설명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앤 프랭크포드가 쉽사리 웬돌의 유혹에 넘어간 이유와 동기에 대해서 비평가들은 여성의 수동성, 지혜(wit)의 부족, 두려움, 사랑의 열정에 쉽게 굴복되는 성향과 같은 전통적으로 가부장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규정되어 왔던 여러 여성의 부정적인 속성 등을 열거하고 있다.6) 포센(Van Fossen) 또한 타락하기 쉽다는 여성의 속성은 “문화적인 관행이며 따라서 앤의 타락에 대한 설명은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xlvi). 여자의 속성이 원래 타락하기 쉬운 존재라는 이와 같은 주장에 반발하여 스팩스(Patricia Spacks)는 앤이 타락하는 것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언제라도, 누구라도 타락의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는 허약한 인간 본성에 그 동기를 둔다(323). 이러한 이념적인 관점과는 달리 쿡(David Cook)은 사랑의 열정이 부족한 부적절한 남편(곧, 애정 없는 결혼생활)이 결과적으로 앤의 타락에 동기 부여를 했다고 주장한다(361, 355). 즉, 웬돌과의 관계에서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의 열정을 경험했기에” 앤이 타락했다는 것이다(Cook 361).

  ꡔ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ꡕ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문제가 불합리한 계급적 부부관계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맥퀘이드는 평등하지 못한 부부관계는 부인뿐만 아니라 남편의 “도덕적 능력 (moral capacity)"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결혼 생활의 파탄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239). 가부장제 사회에서 부인에게 요구되는 남편에 대한 철저한 복종과 수동성을 앤의 타락을 가져온 주요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따라서 웬돌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간 것은 “성적인 욕구(sexual desire)” 때문이 아니라 남편에 대한 절대복종으로 무뎌진 “도덕적 판단에 대한 생소함” 때문이라는 것이다(245). 결국 여성에게 있어 극히 불합리한 계급적 부부관계를 고발하는 작품이라 생각하는 맥퀘이드는 ꡔ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ꡕ을 “17세기 영국 페미니즘의 맨 앞에” 놓는다: “이 드라마는 남편과 부인 모두에게 여성복종과 남성지배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재앙의 결과를 보여준다. 불평등한 부부관계가 앤을 도덕적, 지적 장애자로 만드는 것처럼 프랭크포드를 새디스트로 만든다”(249). 지극히 불평등한 부부관계 때문에 앤이 타락하게 되었다는 이 같은 주장은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극의 6장에서 자기가 없는 동안 웬돌을 주인처럼 대하라는 남편의 ‘명령’ 때문에 유혹에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는 주장은 앤/여성의 능력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고 있으며, 더욱이 이 작품을 17세기 페미니즘의 반열에 놓는다는 것도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앤이 타락하게 된 동기는 이 극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온스타인(Robert Ornstein)은 “헤이우드가 앤에게 그녀가 간통을 하게 되는 진짜 명확한 동기부여를 거부함으로써” 앤의 “죄”에 대한 그 어떤 심각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139). 키퍼(Frederick Kiefer)는 명확한 동기부여를 작가가 거부했다는 온스타인의 의견을 따르면서, 만약 작가가 앤의 간통에 대한 “이해할만한(credible) 동기부여를 했다면” 자신이 극에 담고자 했던 도덕적 메시지와 종교적인 의도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이를 거부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87). 파넥(Jennifer Panek) 역시 키퍼의 의견과 비슷한 맥락에서 간통의 동기를 밝히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즉 간통의 행위는 헤이우드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며, 따라서 이를 순전히 일어난 일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독자들이 앤의 참회와 프랭크포드의 ‘친절’에 집중할 수 있게끔 의도했다”는 것이다(Panek 367). 헤이우드의 드라마가 “새로 부각되는 중산층 관객을 위한 신사적 행동의 코드를 극화하기 위한 것”(260)이었다고 주장하는 브롬리(Laura G. Bromley)는 “신사도”의 주제가 중심인 이 극에서 “개인적인 심리에 관심이 없는 헤이우드에게 타락의 동기는 중요치 않으며”(261) 단지 앤의 경우 “가장 뛰어난 여성 ― 가장 훌륭한 기독교인 여성 ― 이라 할지라도 유혹에 굴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교훈이라고 주장한다(273).

  물론 이와 같은 주장들이 내포하는 타당성은 부분적으로 상당한 공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타락의 동기에 대한 이와 같은 많은 의견 제시에도 불구하고 유혹의 주체 앞에서 밑도 끝도 없이 마냥 도망가는 두 여인(Anne과 Susan)의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감이 있다고 보인다. 또한 이 극의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은 구조적, 주제적인 면에서 밀접한 관련성이 없다는 여러 비평가들이 지적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없어 보인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 두 여인의 행위를 밀턴(John Milton)의 ꡔ실락원 (Paradise Lost, Book IX)ꡕ에서 재현된 이브(Eve)의 행위와 연결지어 그 동기와 두 플롯의 구조적인 관련성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ꡔ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ꡕ에서 그려지는 여성들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남성작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재현된 여성성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함이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볼 때 이 극의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은 공히 딘쇼가 주장하듯이 여성의 ‘몸’위에 행해진 남성작가의 ‘해석(translatio)’은 여성의 경험은 배제된 채 남성의 경험에만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몸 위에 행해지는 번역/해석의 행위는 일방적으로 남성작가들에 의해 행해지며, “이 행위의 개념화에 있어 여성의 경험은 배제된다. 따라서 문학적 언어의 이해, 형성, 서술, 또는 해석에 있어서 여성의 경험은 제외되는 것이다.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번역/해석된 텍스트의 모델에 있어서 여성의 몸이 그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델은 남성의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다”(147). 이 같은 딘쇼의 관점에서 볼 때, ꡔ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ꡕ에 재현된 앤과 수잔 두 여인의 모습은 일방적으로 남성적 경험에만 의존함으로써 결국 남성들이 바라고 필요로 하는 부정적 또는 이상적 여성상이 되었으며, 이는 곧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널리 알리고 권장되어야하는 도덕적, 교육적 모델이자 교훈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앤과 수잔은 가부장체제 하에서 철저하게 계산되어 재현된 여느 교육용 모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긴밀한 관련성을 유지하며 전개되는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의 중심에는 앤과 수잔, 두 여성인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유혹에 직면하여 이 두 여성이 보여주는 행위가 바로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핵심적인 의도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볼 때 ꡔ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ꡕ이 보여주고자 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정조를 버릴 위기에 처한 처녀(Susan)의 이상적 행동은 어찌하다가 간통을 저지르게 된 여성(Anne)에게 크나큰 교훈으로서, 이는 여성으로서 유혹에 맞서는 방법을 제시함과 동시에 차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간통을 저지른 부인에 대한 남편(Frankford)의 이상적 행동은 이와 같은 실수를 극복하는 방법을 암묵적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참된 여성으로서의 원래 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생명을 앗아가고자 하는, 즉 여성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정조를 유린하려는 유혹 앞에서 수잔은 ‘열녀 규범’의 금과옥조를 명심하고 이를 물리침으로써 오빠의 빚을 청산케 해주고 동시에 가문의 영예를 이어나가게 해준 착한 여성의 전형으로 제시된 반면에, 앤은 극의 초반부터 쏟아졌던 찬사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 유혹에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쉽사리 무너짐으로써 역시 여성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가부장제 사회의 통념을 깨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다. 더욱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자신의 원래 자리를 되찾는 여성 판 ‘돌아온 탕아’로서의 앤의 모습은 우리들로 하여금 베이소스(bathos)와 페이소스(pathos)의 한계를 넘나들게 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 작품에서 제시된 ‘열녀 규범’의 금과옥조인가? 물론, 수많은 열녀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장엄한 영웅적 행위가 당연히 제 1의 조항이 될 것이며 실제 수잔의 다짐이나 앤의 행위를 통해서 이 작품에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다:


Susan:                               But here's a knife,

       To save mine honor, shall slice out my life.

Sir Charles: I know thou pleasest me a thousand times

       More in that resolution than thy grant. (X iv.84-87)


수잔: 처녀로서의 내 명예를 구하기 위해 여기 나의 생명선을 자를 단도가 있어요.

찰스: 내 청을 선뜻 받아준 것 보다 그 결심이 나를 훨씬 기쁘게 하는구나.


Anne: So, now unto my coach, then to my home,

     So to my deathbed, for from this sad hour

      I never will nor eat, nor drink, nor taste

      Of any cates that may preserve my life;

      I never will nor smile, nor sleep, nor rest,...  (X vi.102-106)


앤: 자 마차를 타고 내 죽음의 침상이 될 새 거처로 가자.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이 시간 이후로 내 명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음식이라 하더라도 먹지도, 마시지도, 맛을 보지도 않을 것이며, 웃지도, 잠자지도, 쉬지도 않을 것이야. . . .


‘은장도’의 금과옥조를 내세우며 전통적인 ‘착한 여성’의 반열에 들어서려는 수잔의 장엄한 모습, 그리고 이를 보고 감동하는 오빠의 모습과 곡기를 끊음으로써 죽음으로 이르려는, 그럼으로써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눈물겨운 앤의 자학적인 노력에서 이 작품에서 의도되는 바가 눈에 빤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독특하면서도 기술적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게 포장된 ‘열녀 규범’의 제 2의 금과옥조는 유혹의 현장에서 무조건 도망치라는 것이다. 즉 여성이 유혹에 직면했을 때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무모하게 혼자서 대항하려하지 말고 무조건 도망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와 같은 금과옥조는 밀턴의 ꡔ실락원ꡕ(Paradise Lost, Book IX)에서 이브와 아담의 논쟁을 통하여 그 이론적 배경이 자세하게 표출되어 있다:


(Eve) And what is Faith, Love, Virtue unassay'd

      Alone, without exterior help sustain'd?  (335-336)


내 사랑, 믿음이란 무어예요? 외부의 도움 없이 검증되지 않은 미덕은요?


(Adam)  Seek not temptation then, which to avoid

         Were better, and most likely if from mee

         Thou sever not: Trial will come unsought. (364-366)


피하는 것이 더 나을 유혹을 불러들이지 마시오. 그리고 떨어져 있지 말고 항상 내 곁에 붙어 다니시오. 시험은 원하지 않을 때 오는 법이요.


(Satan)  . . . Then let me not let pass

        Occasion which now smiles, behold alone

        The Woman, opportune to all attempts,

        Her husband, for I view far round, not nigh,

        Whose higher intellectual more I shun,

        And strength, of courage haughty, and of limb

        Heroic built, though of terrestrial mould,

        Foe not informidable, exempt from wound,

        I not; so much hath Hell debas'd, and pain

        Infeebl'd me, to what I was in Heav'n.

        Shee fair, divinely fair, fit Love for Gods,

        Not terrible, though terror be in Love

        And beauty, not approacht by stronger hate,

        Hate stronger, under show of Love well feign'd,

        The way which to her ruin now I tend.  (479-493)


. . .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는 이 기회를 지나치지 말자. 어떤 시도라도 다 해보려는 저 여인을 보라.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남편은 가까이 있지 않구나. 여자보다 더 지적 능력이 뛰어난 그자를 피해야 돼. 비록 흙으로 빚어 졌지만 힘과 육체, 그리고 고상한 마음에 있어서 까지 웅장하게 만들어졌으니까. 상처를 입지 않을 만큼 난 만만한 적수가 못돼. 천상에 있었을 당시에 비해 볼 때 이 지옥이 내 능력을 떨어뜨렸고, 그 고통이 나를 약하게 해서 말이야. 신들과의 사랑에 어울릴 정도로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는, 비록 사랑에 있어서는 끔찍할지라도, 위협적이지는 않아. 보다 강한 증오심으로 접근하지 않는 한 미인은 더 강한 자를 싫어하지. 자, 이제 잘 위장된 사랑의 겉모습으로 그녀를 파멸시킬 길로 나서보자.


이브와 아담의 논쟁과 사탄의 논평에서 드러나 있듯이 여성이란 존재는 생태적으로 남성보다 불완전하며 열등한 존재로서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려는 여성으로서는 가당치 않은 생각은 아예 접어두라는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 혼자로서도 벅찬 일인데 하물며 여성이 혼자서 유혹을 감당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니 자신으로부터 한시도 떠나지 말라는 아담의 경고를 무시한 이브의 타락은 가부장제의 정서상 (하나님의 말씀과도 같은 남편의 충고를 어리석게 거부한 이브의 행위에 대한 응징으로서) 능히 예상된 결과인 것이다.

  헤이우드의 작품에서도 도망가는 두 명의 여인을 통해 이와 같은 이브의 교훈이 은연중에 드러나 있다. 수잔의 경우, 밑도 끝도 없이 유혹의 대상으로부터 철두철미하게 달아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Susan: I thank you, heavens; I thank you, gentle sir.

       God make me able to requite this favor.

Malby: This gold Sir Francis Acton sends by me,

       And prays you &c.

Susan: Acton! O God, that name I am born to curse.

       Hence bawd; hence, broker! see, I spurn his gold;

       My honor never shall for gain be sold.

Sir Fra.: Stay, lady, stay!

Susan:                   From you I'll posting hie,

       Even as the doves from feathered eagles fly.  (IX. 48-56)


수잔: 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도움은 잊지 않고 꼭 갚겠습니다. 

말비: 이 돈은 프란시스 액톤경이 나를 통해 보내는 것이요. 그 분께서는 당신께 . . . .

수잔: 아니, 액톤이라고요! 아 하나님, 그 불구대천 원수의 이름! 이 뚜쟁이 같으니라고. 그의 돈을 거절하는 것을 똑똑히 보세요. 내 명예는 이득을 위해 절대 팔 수 없답니다.

프란시스: 잠깐, 아가씨, 잠깐만요.

수잔: 독수리로부터 도망쳐 나는 비둘기처럼 나도 그렇게 빨리 도망칠테요.


오빠를 구해야만 하는 다급한 사정 속에서도 액톤(Acton)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황급하게 달아나는 수잔에게서 철저히 훈련되어 있는 가부장제 꼭두각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극(farce)적인 황당함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나 프란시스(Sir Francis)만 보면 무조건 도망치는 수잔도 오빠인 찰스(Sir Charles)와 같이 있을 때 비로소 그와 당당히 맞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cf. xiv. 147ff).

  앤의 경우, 어찌하다가 유혹의 대상으로부터 떠나지 못함으로써 (물론 열등한 존재인 아내를 유혹의 손에 맡겨둔 남편의 책임이 더 크게 보이지만) 일면 수잔과는 정반대의 대조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만인으로부터 찬양할만한 미덕을 갖추었다는 앤도 실소가 나올 정도로 우습게 타락하는 모습만을 보여 준다(vi.70ff). 모든 여성들이 본받아야할 모범으로서 극중 내내 칭송을 받던 앤도 유혹에 직면하여 도망치지 못했던 한 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마리아의 위치에서 여지없이 이브의 위치로 전락하게 되며 결국 가부장제에서 덧 씌어진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또 다른 한 여성인물에 그치게 된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나 시골집으로 가던 중에 나타난 웬돌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무조건 도망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철저하게 재교육을 받음으로써 다시 태어난 가부장제의 이상적 여성상과 그 행동을 보게 된다:


Wendol: O Mistress Frankford--

Anne:                          Oh, for God's sake fly!

        The devil doth come to tempt me ere I die.

        My coach! This fiend that with an angel's face

        Courted mine honor till he sought my rack,

        In my repentant eyes seems ugly black.  (xvi. 109-113)


웬돌: 오, 프랭크포드 부인.

 앤:   아, 제발 빨리 좀 내달리자. 저 악마가 내가 죽기도 전에 유혹하러 오는구나. 이랴! 천사의 얼굴을 가지고 내 파멸을 추구할 때까지 내 명예를 집적거렸던 이 악마가 참회를 한 눈으로 보니 참으로 추악하구나.


그간의 일에 대한 회한과 비난이라든지 충고라든지 무언가 할 말이라도 있음직한 웬돌과의 재회 장면에서 앤은 이처럼 말문이 막힌 듯 다만 “이랴!” 소리만 소리 높여 외치고는 웬돌에게 경멸의 말을 남기며 서둘러 도망을 치는 것이다.

  사실상 전통적으로 강조된 여성적 미덕을 듬뿍 지니고 있는 여성으로서 수많은 찬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앤은 가부장제에서 설정한 그 생태적 한계에 의하여 여전히 가부장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주변적인 세력으로 남게 된다.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앤은 단지 남편을 빛나게 해주는 장식품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7) 이러한 가부장적 시각에서 볼 때 여성의 정조는 곧 ‘장식품’의 핵이며 남성의 정조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도덕적 이유를 내세우며 여성의 정조에 대해서 그토록 집착하는 이면에는 장식품이 손상됨으로써 발생되는 상품가치의 하락과 더불어 소유물에 대한 소유주로서의 책임감과 체면 손상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친절’의 실체는 여성을 교묘하게 교화시키고 길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제시되는 것이다.8) 결국 이 작품은 앤과 같은 뛰어난 여성도 항상 유혹의 덫에 걸릴 수 있음을 보여주고 수잔 같은 여성을 그 대안으로 제시함으로써 가부장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이상적인 여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앤과 수잔은, 뛰어난 여성일지라도 이들을  채찍질하여 지속적으로 억압함으로써 남성의 보조적 수단으로서의 여성의 종속적 위치를 항구화하려는 “남성들의 집단 음모론(male conspiracy theory)”의 희생자일 뿐이다.

  친절로 인해 죽은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시수가 주장한대로 여성을 영원히 감금시키는 ‘장소’일는지도 모른다. 또한 죽음에 이르는 그 과정이 자발적이든 아니면 강제적이든 간에 그 결과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남성의 타고난 본성이 여성보다 우수하다는 메시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결국 두 여성인물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과 참회의 고난스러운 과정을 거쳐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크레세이드와는 전혀 다르게, 남성들이 내세우는 허울 좋은 ‘친절’과 체면을 그저 돋보이게 하는 그 이하, 그 이상도 아닌 앤의 참회와 죽음은 여성의 타고난 본성이 남성보다 약하고 열등하다는 사실만을 강조할 뿐이다.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직면해 있을 때와 같은 경우, 이에 상대하거나 논쟁을 버릴 생각은 아예 버리고 그 유혹의 자리에서 도망치는 것만이 여성에게 최상의 대처 방법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국대학교)


주요어: 친절, 정조, 열등한 여성성, 유혹, 타락,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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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Thought on Two Women Killed with Kindness: Cresseid and Anne Frankford


Yoon-Hee Park


    Robert Henryson's Cresseid and Thomas Heywood's Anne Frankford belong to a group of "good women" who have killed themselves in the good name of the patriarchal ideology. Both characters are quite interesting in that they killed themselves for their "men’s kindness," voluntarily/involuntarily. Henryson’s Testament of Cresseid considerably deviates from the long tradition of the Criseida story because Troilus lives and Cresseid dies. Although Henryson's dealing of his heroine, a notorious femme fatale in the history of European literature, seems to be too harsh and cruel, it ultimately gives her a chance for her true repentance and rebirth through her sufferings and self-realization.

    While Henryson's woman killed with kindness shows a heroic sublimity at her last moment, Heywood’s woman dies in pathetic, sentimental mode. Unknowingly having committed a “heinous,” sin of adultery, she has no choice but to kill herself in order to get back to her former seat of a paragon of femininity. Anne’s easy fall to Wendoll’s temptation, the crux of the play, can be understood in relation to the sub-plot of the play. Anne falls, and Susan does not, because Anne forgot the Eve’s lesson: as an inferior being, woman must run away from the site of temptation as quickly as possible whatsoever the situation is.

   Each story of woman killed with kindness might be the ‘locus’ that imprisons women perpetually in the sense that the two women are forced to conform to the patriarchal morality: they are victimized through ‘specious’ kindness. Unlike Henryson’s woman, however, Heywood’s Anne is only used as an object lesson in dramatizing a code of gentlemanly behavior. They are not ‘prodigal women’ in the same sense: one is ‘a prodigal human’ and the other, “a prodigal 'good woman.'”




Key Words: kindness, chastity, inferior feminity, temptation, fall, motivation


1) Criseida 이야기의 반복적인 출현에 대한 문학사적 고찰은 다음 논문을 참고하시오: 박윤희, “Criseida를 통해서 본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Anti-feminism과 해석의 문제.” ꡔ고전 르네상스 드라마ꡕ 3(1995): 5-22.


2) 실제로 헨리슨의 크레세이드 이야기는 르네상스 시대에 초서의 크리세이드에 대한 “최후의 심판”(Miskimin 208)으로 오해되었으며, 르네상스 편집인들에 의해 헨리슨의 작품은 초서의 ꡔ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ꡕ의 맨 마지막에 (Book VI로) 삽입되어 출판되었다.


3) A. Abram에 의하면 중세의 여성들은 과부가 됨으로서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 체제가 여성들에게만 부당하게 부과된 여러 가지 제약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33)


4) 열등한 여성의 능력에 대해 크레이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Mrs. Frankford . . . is a good woman until she is beset with temptation . . . . To the Renaissance natural goodness was not regarded as a sufficient safeguard for women against the temptations of the flesh, for they were strong in passion, weak in reason"(131). Hardin Craig. The Enchanted Glass: The Elizabethan Mind in Literature (New York: Oxford UP, 1936).


5) “Look for no glorious state; our muse is bent / Upon a barren subject, a bare scene" (The Prologue 3-4).


6) 앤이 타락하게 된 동기에 대한 1980년까지 20세기에 이루어진 연구에 대한 간단한 경향 조사는 Laura G. Bromley의 논문을 참고하시오.


7) “...you have a wife / So qualified and with such ornaments / Both of the mind and body....” (i. 14-16); “...She's no chain / To tie your neck and curb you to the yoke,/ But she's a chain of gold to adorn your neck.” (i. 62-64); “I have a fair, a chaste, and loving wife, / Perfection all, all truth, all ornament.” (iv. 11-12)


8) Sir Francis:  “Brother, had you with threats and usage bad / Punished her sin, the grief of her offence / Had not with such true sorrow touched her heart.” / (Frankford) “I see it had not...” (xvi.133-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