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시드니, 펨브록크 백작부인: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이 진 아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공식적으로 내는 것이 극히 드물었던 근대 초기 영국에서, 메리 시드니(Mary Sidney)는 당시 여성들이 글을 쓸 때 흔히 하던 자신의 성(sex)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를 대지 않고 분명한 문학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의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은 여성이다. 물론, 시드니가 자신의 번역물들과 헌정시들을 출판하거나 돌려 읽힐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당대 영국을 주름잡은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특권적인 위치의 덕을 보았던 것은 사실이다.1) 그런데 시드니는 그녀 이전에 그녀와 유사한 신분에 있었거나 혹은 더 높은 신분에 있었으며 종교적인 글들을 쓰거나 번역한 여성들, 예를 들어 앤 애스큐(Anne Askew)나 캐써린 파(Katherine Parr)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펨브록크 백작부인은 무엇보다도 번역을 통해 주요한 문학적 업적을 이루었다. 우선 다른 사람의 작품들을 번역하여 원문과 번역물 사이의 공간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훈련을 쌓았던 것이다. 인문주의 교육 자체가 고전문학의 번역을 강조하였고 또 종교개혁으로 인해 신앙서적의 번역이 활발했던 시기에, 번역활동은 여성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문필영역이었다. 여성의 경우라도 특히 신앙심을 키우는 글을 읽고 쓰고 번역하는 일은 크게 장려되었기 때문에, 메리 시드니도 번역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개발하고 키워나갔다.2) 또 그녀가 번역한 각각의 작품은 그녀의 깊은 신심을 명확하게 보여주며, 또한 종교적 신심을 통해 그녀의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녀의 가장 훌륭한 번역물인 ꡔ시편ꡕ에 이르러, 시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귀족 여성으로서, 무엇보다도 오빠인 필립 시드니 경의 뒤를 이은 후견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시드니는 문인으로서의 독립된 정체성을 추구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메리 시드니의 번역 작품들을 연구 분석하여 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궤적을 더듬어 보고자 한다.

  메리 시드니의 후견인으로서의 역할과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그녀의 오빠인 필립 시드니와 떼어서 생각할 수없다. 메리 시드니는 필립 시드니의 동생이요 시드니 가문의 한 사람으로서의 위치를 통해 자신의 문학적 목소리를 내었고 문인들을 후원하였으며, 당시 시인들도 자신들의 후견인으로서 자주 그녀를 오빠와 연결시켰다. 메리 시드니는 오빠가 죽은 후 자신의 시골 저택 윌튼(Wilton) 장원을 중심으로 모인 시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함으로써,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 필립 시드니를 프로테스탄티즘을 위해 목숨 바친 전설적인 순교자로 추대하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그녀는 필립 시드니의 ꡔ아케이디아ꡕ(Arcadia 1598)를 편집하고 출판하여 당시의 출판문화를 합법화하는데 기여를 하였고, 오빠가 43편까지 번역했던 시편의 나머지를 번역하여 시편의 공동번역가 되었다.

  그런데, 메리 시드니와 필립 시드니의 긴밀한 관계는 메리의 작품 활동과 후원활동을 장려하는 요소로 작용했지만, 또한 그 관계는 그녀를 최고의 교양과 덕과 재능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문인 후견인이자 필립 시드니의 동생으로만 국한시켜 버리는 결과를 낳는데 공헌하기도 하였다.3) 최근에 이르러서 영문학사에서 메리 시드니의 신화를 해체하고 문인으로서의 그녀의 위치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들이 있어왔으며 그녀의 작품들도 새롭게 출판되고 연구되고 있다.4)



삶과 죽음을 넘어


  메리 시드니의 첫 번역 작품은 필립 시드니와 친분이 깊었던 저명한 위그노교인(Huguenot) 필립페 드 모르네이(Philippe de Mornay)의 ꡔ삶과 죽음에 대한 논고ꡕ(Discours de la vie et de la mort, Discourse of Life and Death)인데, 번역가로서의 백작부인의 역량을 이미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5) 삶의 부질없음과 죽음의 불가피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이 작품은 또한 그녀가 뒤이어 번역한 ꡔ안토니우스ꡕ(Antonius)와 제일 나중에 번역한 ꡔ죽음의 승리ꡕ(Triumph of Death)와 주제 면에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클레오파트라(Cleopatra)와 안토니우스의 사랑과 정열, 권력의 암투 등 세속적인 삶과 죽음을 다룬 ꡔ안토니우스ꡕ는 로라(Laura)의 거룩한 사랑과 죽음을 다룬 페트라르카의 작품과 짝을 이루고 있으며, 삶의 허무함과 죽음의 가치를 세속적인 관점과 영적인 관점에서 다룬 작품들이다.

  모르네이가 삶과 죽음을 논하는 기본 가설은 타락한 인간성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 우리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여 “삶도 죽음도 알지 못한다” (Discourse 40).6) 그리하여 무지한 인간은 자신의 열정에 사로 잡혀 “수많은 유혹과 . . .세속적인 쾌락의 공격을 받아 . . . 속아 넘어가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74-79). 물질적인 욕망과 권력욕, 시기, 질투, 야심 등으로 인한 끊임없는 내적인 갈등은 인간을 불안하게 하며, 그런 “부단한 전투”(544)의 삶을 거쳐 이르는 결론은 “우리 모두의 삶에서 확실하게 안심할 만한 것은 죽음이 갖는 확실성과 불확실성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675-76)는 것이다. 삶의 온갖 비참함과 고통과 어려움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인데, 인간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모르네이는 죽음은 흔히 묘사되듯이, 끔찍하고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 불행의 결말이고 온갖 풍파를 벗어나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항구의 입구”(689-90)이므로, 우리는 육과 세상에 대항하여 싸워 용감하게 “우리의 참된 집이요 안식처”(19)인 죽음을 맞이하여야한다고 독자들을 설득한다.

  모르네이가 삶과 죽음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 즉, 운명의 힘에 의해 겪는 삶의 여러 가지 질곡들, 죽음의 불가피성, 죽음을 대하는 용기 있고 명예로운 태도 등에 대해서 본스타인은 스토아철학사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Bornstein 126). 물론 스토아 사상의 요소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삶에 대한 모르네이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전도서나 욥기와 같은 성서 여러 곳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그리스도교 특히, 프로테스탄트 교리를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타락한 세상의 악과 대항해 싸우는 저항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는 바로 전투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반영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The Christian ought willingly to depart out of this life but not cowardly to runne away. The Christian is ordained by God to fight therein: and cannot leave his place without incurring reproch and infamie. But if it please the grand Captain to recall him, let him take the retrait in good part, and with good will obey it. (Discourse 923-28)


그리스도인은 기꺼이 이 삶을 떠나야하며 비겁하게 도망쳐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삶 속에서 싸우도록 명령을 받았으니, 자신의 자리를 이탈하면 비난과 불명예를 초래하게 된다. 허나 위대한 대장께서 그를 다시 부르시기를 원하신다면, 그는 선의로 물러나, 기꺼이 순명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교리에 따라 모르네이는 솔로몬의 지혜서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덧없는 삶에서 “지혜의 시작과 끝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597-99)임을 상기시키고, 삶과 죽음에 대해 그리스도인이 취해야할 자세를 가르친다. 이와 같은 모르네이의 충고는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을 강력하게 지지했던 더들리/시드니/허버트 가문에 속한 필립 시드니와 메리 시드니의 종교적 신념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7)  필립 시드니는 이 작품과 내용이 유사한 모르네이의 다른 글 ꡔ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에 대하여ꡕ(De la Verite de la Religion Chretienne)를 번역하였는데, 그래서 메리 시드니도 모르니에의 이 작품을 번역했을 것이라는 점에 평자들의 견해가 대체로 일치한다. 무엇보다도 격렬한 종교분쟁의 시기에 메리 시드니는 그녀의 재능과 학식을 사용하여 자신이 지지하는 종교적 신앙을 잘 표현한 글들을 번역하여 널리 전파한 것이기에, 여성적인 교양활동이나 소일거리정도로 번역을 한 것이 아니라 번역을 통해 급진적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며 신앙인의 소명을 다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백작부인의 종교적 신념과 관계가 있다고 하나, 그녀가 부모와 오빠, 딸의 죽음을 체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베일린의 추정대로(Beilin 124), 그녀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죽음에 대한 주제에 관심을 가졌을 수 있다. 또한 르네상스 시대라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본다면, 낸시 비티(Nancy L. Beaty, Bornstein 126으로부터 재인용), 메리 엘렌 램(Mary Ellen Lamb)의 견해대로, 백작부인의 관심은 높은 유아 사망률과 출산 시 여성 사망률 혹은 전쟁과 질병으로 인한 죽음 등으로 인해 당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죽음의 기술’(ars moriendi)의 맥락에 이 작품을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Lamb 119).

  프로테스탄티즘에 헌신한 메리 시드니에게 있어서 종교적/철학적 주제를 가진 모르네이의 작품이 매우 적합하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데, 나아가 그녀는 세속적인 작품들을 번역함으로써 문인으로서의 소명에 헌신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소위 세속적인 문학작품번역은 인문주의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으므로, 가정에서 인문주의 교육과정의 당연한 일부였다. 영국에서 세속적인 작품을 출판한 최초의 여성은 마아가렛 타일러(Margaret Tyler)였는데, 그녀는 1578년 스페인 로맨스인 디에고 오르뚜녜스 드 깔라오라(Diego Ortuñez de Calahorra)의 ꡔ군주다운 덕행과 기사정신의 귀감ꡕ(The Mirrour of Princely Deedes and Knyghthood)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세인의 비난을 의식한 타일러는, 남성작가들이 여성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여성인 그녀가 이 작품을 펴내는 것도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독자들에게 저자로서의 여성의 권위를 분명하게 주장한 바 있다(Gallagher 309). 선례가 없는 일을 여성이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타일러의 주장이 메리 시드니의 번역의 선례가 될 수 있기는 하나, 그녀가 ꡔ안토니우스ꡕ와 ꡔ죽음의 승리ꡕ 이 두 번역 작품을 그 주제에 대해 또 여성에 의해 번역된 점에 대해 아무런 구차한 해명이나 변명 없이 출판했다는 것은 결코 그녀의 특권적인 지위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만은 없는 용기 있는 행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메리 시드니가 가진 여성작가로서의 당당한 자기주장은 ꡔ죽음의 승리ꡕ에 등장하는 로라가 페트라르카식의 전통에서 그녀에게 강요되던 전형적인 침묵을 깨면서 갖게 된 목소리를 통해 분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ꡔ안토니우스ꡕ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로마 역사극의 선구요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Collected Works I, 24).

  ꡔ안토니우스ꡕ와 ꡔ죽음의 승리ꡕ 도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모르네이와 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탐욕, 야심, 그릇된 열정 등이 빚어내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이성의 원칙에 의해 인도되는 삶을 독자들에게 권고하는 작품들이다. 모르네이의 작품이 삶과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교적이고 스토아 철학적인 명상의 성격을 띤다면, ꡔ안토니우스ꡕ와 ꡔ죽음의 승리ꡕ는 그 명상의 주제를 비극과 시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ꡔ안토니우스ꡕ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과 배신, 야심과 같은 욕망이 이루어낸 고통의 드라마는 바로 모르네이가 명상했던 세속적 삶을 극화한 것이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이들은 바로 ꡔ즉음의 승리ꡕ의 화자가 본 “한때 세인들이 행복하다고 불렀으나 . . . 낯설게 변하여, 이제는 온통 헐벗고 궁핍한 거지들이 된 교황들, 황제들과 제왕들”이다(whom their times did happie calle, / Popes, Emperors, and kings, but strangelie growen, / All naked now, al needie beggers all." Triumph I, 79-81).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조국과 아내를 배신하여 친구들로부터 치욕과 경멸을 당했으나, 결국 클레오파트라에게 배신당한 안토니우스는 자신도 인정하듯이 바로 육체의 욕망에 사로잡힌 노예이다(Antonius I. 8-17). 클레오파트라의 배신이 주는 고통 속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영광과 명예와 권력에 대한 자책감으로 후회하는 그에게 코러스는 그것이 바로 삶의 모습이라고 일깨워준다.


Nature made us not free

When first she made us live:

When we began to be,

To be began our woe:

Which growing evermore

As dying life dooth growe,

Do more and more us greeve,

And tire us more and more. (Antonius I. 175-82)


자연이 처음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을 때

우리를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지 않았다:

우리가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슬픔도 존재하기 시작했다:

삶이 점점 죽어감에 따라

괴로움은 점점 더 자라,

더욱 더 우리를 슬프게 하고

더욱 더 우리를 지치게 한다.


코러스가 묘사하는 삶은 모르네이의 삶에 대한 명상을 그대로 반향하고 있는데, 세속적인 파멸과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안토니우스는 죽음을 용기 있게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필로스트라투스(Philostratus)가 말하듯이, 그를 파멸시킨 “사랑, 짓궂은 사랑은, 사람들 말에 의하면, 유약한 마음에만 불을 지피기”(Love, playing love, which men say kindles not / But in soft harts" II, 285-86) 때문에, 사랑으로 파멸하는 안토니우스는 당당하고 용기 있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할 위대함은 갖추고 있지 않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사람들이 노예로 붙들려 있는 저 헛된 위대함을 경멸하는 것이기”(Discourse 321-22) 때문이다.

  안토니우스를 파멸로 몰아간 부정한 연인 클레오파트라는 이 세상의 무상함을 대변하는 인물이며, 육적인 정열이 가져다주는 파괴적인 힘의 화신이기도 하다. ꡔ안토니우스ꡕ는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데, 5막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의 장면은 그녀를 이 극의 주인공으로 보이게 할 정도로 압도적이다. 안토니우스가 극의 도입부에서 자신의 잘못된 열정이 가져다 준 결과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듯이, 클레오파트라도 안토니우스의 최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자신이 안토니우스를 유혹하여 배반하고 속인 일과 앞으로 자신의 나라와 자녀들에게 닥쳐올 앞날에 대해 자책하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의 아내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성실함과 당당함을 유지하고자 애쓴다.


                     o Cleopatra,

Poore Cleopatra, griefe thy reason reaves.

No, no, most happie in this happles case,

To die with thee, and dieng thee embrace:

By bodie joynde with thine, my mouth with thine,

My mouth, whose moisture burning sighes have dried:

To be in one self tombe, and one selfe chest,

And wrapt with thee in one selfe sheete to rest. (V, 1983-89)


                    오 클레오파트라,

가엾은 클레오파트라, 슬퍼서 네 이성을 잃어버렸구나.

아니야, 아니야, 이 불행한 상황이 가장 행복하구나,

당신과 함께 죽고, 죽으면서 당신을 안을 수 있으니:

당신과 한 몸이 되고, 타오르는 한숨으로 침이 다 말라버린 내 입,

내 입술이 당신입술과 하나가 되니:

같은 무덤 속에, 같은 관 속에서,

같은 수의를 당신과 함께 덮고 쉬게 되리니.


클레오파트라가 죽음에서 위안과 행복을 찾고 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용기 있는 태도를 보면, 그녀가 모르네이가 ꡔ삶과 죽음에 대한 논고ꡕ에서 권고하는 죽음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 죽음에서 위안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니며, 마지막까지 안토니우스에 대한 육체적인 열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보면, 클레오파트라는 썩어 없어질 육체간의 일치를 죽음 후에도 추구하는 허황함 속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며, “힘도 덕도 없는 물질을 소유한, 오히려 물질에 의해 소유된 인간”(Discourse 167-68)으로 죽음을 물질, 육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안토니우스의 시신을 붙들고 싸늘해진 그의 입술에 수없이 입 맞추는 클레오파트라의 마지막 몸부림은 ꡔ안토니우스ꡕ의 세계의 영적인 공허함을 더욱 크게 부각시킬 뿐이며, 특히 그리스도교인 독자들로 하여금 불완전하고 연약하여 쉽게 악의 유혹에 무너지는 인간은 죽음을 넘어서는 구원이 필요로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만든다. 어쩌면 메리 시드니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비극 속에 전개되는 이교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적인 가치관을 지향하는 작품을 번역하여 자신의 신심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메리 시드니가 번역한 페트라르카의 ꡔ죽음의 승리ꡕ는 출판된 적은 없으나, 가르니에의 작품처럼 사랑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답을 준다. 이렇게 이교적인 것과 대조되는 그리스도교적 사랑은 이교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적인 사랑의 정열을 추구하는 클레오파트라와 대조되는 여성인 로라를 통해 제시된다. 페트라르카가 이탈리아어로 쓴 세속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만 로라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는데, 백작부인이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로라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인간과 사회를 파괴시키는 정염을 불러일으키지만, 로라는 순수하고 정결한 "흰 담비"(a snowie Ermiline, Triumph, I 19)와 같은 여인이다.


That gallant Ladie . . . she had foyl'd the mightie foe,

    whose wylie stratagems the world distresse.

And foly'd him, not with sword, with speare or bowe,

    But with chaste heart, faire visage, upright throught,

    wise speeche, which did with honor linked goe: (Triumph, I 1, 5-9)


저 용감한 숙녀는 . . . 강력한 적을 물리쳤는데,

    그 적은 교활한 술수를 써서 세상을 괴롭혔다.

그런 적을, 칼로써도 아니고 창이나 활로써도 아니고,

    정숙한 마음과, 아름다운 용모, 반듯한 생각,

    명예와 짝을 이룬 현명한 말로써 물리쳤던 것이다:


여기서 로라가 물리친 ‘적’은 큐피드(Cupid)인데, 작품의 도입부에서부터 페트라르카는 정욕을 이겨내는 로라의 정숙함을 부각시킨다. 모르니에와 가르니에는 죽음은 삶의 고통과 괴로움을 끝내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위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지만, 페트라르카에게 있어서 죽음은 조금도 위안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음이 세상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인 로라의 덕과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파괴시켜 버렸기 때문이다(Triumph, I 145-47). 로라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죽음에 대한 비전으로, 나아가서 죽음에 의해 지배되는 연약한 인간에 대한 비전으로 확대된다.

  이 같은 절망의 밤에 로라는 보다 높은 영적인 경지로 페트라르카를 인도하기 위해 그를 찾아온다. 로라는 여전히 남성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이상적인 여성으로 남아있지만, 페트라르칸 소넷트에 묘사되는 침묵의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교사요 영적인 인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던 자세는 바로 모르네이가 권고한 그리스도교인의 죽음의 자세이다. 그녀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살고 있고 페트라르카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지만 죽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삶이 주는 최고의 기쁨도 죽음이 주는 감미로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러한 명철한 인식이 로라의 죽음의 자세를 결정지었다.


For I, that journie past with gladder feete,

    Then he from hard exile, that homeward goes,

(But onelie ruth of thee) without regreete. (Triumph, II 73-75)


왜냐하면 나는 기쁜 발걸음으로 그 여행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고생스러운 유배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보다 더 기쁘게

(당신만이 유일한 슬픔이었지만) 아쉬움은 없었지요.


삶과 죽음에 대한 애착으로부터 초연한 로라의 태도는 남성시인으로 하여금 세속의 많은 애착들과 결합되어 있는 정욕을 극복하는 길을 가르친다. 로라의 이성적인 초연함은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죽어서도 육체적인 결합을 상상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사랑의 길에 대해 페트라르카에게 알려준다. 정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클레오파트라와는 달리 로라에게 있어서 사랑은 언제나 이성에 의해 인도되어야한다.


                                    Never were

    Our hearts but one, nor never two shall be:

    Onelie thy flame I tempred with my cheere:

This onelie waye could save both thee and me: (Triumph, II 88-91)


                                    우리 마음은

결코 하나가 아닌 적이 없었으며, 결코 둘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격려로 당신의 불길을 진정시켰읍니다:

이 유일한 길만이 당신과 저를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로라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치는 클레오파트라와는 달리 마음의 일치, 영혼의 일치이며, 로라가 죽기 전에 그들은 사랑 안에 일치해있었으며 죽음도 그 일치를 갈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의 인간적인 사랑은 그리스도교적인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한 방법인데, 로라의 정결이 구원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육의 유혹을 통제하였다. 자신이 죽은 후에 페트라르카의 슬픔과 그가 겪을 수 있는 정욕의 유혹들을 경계하고 피하기 위해, 그녀는 페트라르카에게 자신을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동정 마리아나 베아트리체와 같은 영적인 구원의 여인으로 등장하는 로라는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세상에 가한 혼란과 파괴를 회복하려는 듯이 보이며, 연약한 육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신의 은총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르네이의 ꡔ삶과 죽음에 대한 논고ꡕ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교적이고 스토아 철학적인 명상을 전개하고 있다면, 그 문제들은 가르니에의 ꡔ안토니우스ꡕ와 페트라르카의 ꡔ죽음의 승리ꡕ에서 특히 여성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구체적으로 조명된다. 클레오파트라와 로라는 남성의 유혹자로서의 여성과 영적인 인도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여성에 대한 당시의 대표적인 두 견해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메리 시드니가 유럽 작가들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진지한 문제를 다루고 여성이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하여 번역했다는 것은, 시드니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 그 자세를 결정지은 신앙의 문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문인으로서의 소명의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다. 백작부인이 이와 같이 진지한 문제들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지 않고 남성들의 견해를 번역해서 전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의 여성 통치의 문제, 정형화된 젠더 양식, 로마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개혁적인 프로테스탄티즘 등의 문제들이 원저와 번역물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된 공간 속에서 논의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신앙과 시의 결합


  서구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시편은 개인 묵상과 기도를 위해, 그리고 공동체 기도를 위해 사용된 가장 중요한 자료이다. 종교개혁 시기에 이 시편이 유럽 여러 나라의 자국어로 번역되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서 시편의 중요성은 새로운 차원을 더하게 되었다. 종교 개혁가들은 성서를 통한 절대자와의 직접적인 친교를 강조하였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이 읽을 수 있는 성서를 번역하였으며, 시편을 개인의 신앙생활에서 그리고 공동체 예배에서 이용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프로테스탄트교인들은 시편 번역과 시편 찬송, 시편 묵상을 프로테스탄트적인 전통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라틴어와 자국어로 된 주석과 학문적인 깊이를 가진 산문으로 시편을 번역하는 일도 동시에 시도하였다. 영국에서 시편을 비롯한 성서 번역은 영국의 종교개혁 시기동안 유럽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프로테스탄트들에 의해 대부분 이루어졌으므로,8)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성서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최초로 영어로 출판된 예배용 시편집은 마틴 부처(Martin Bucer)의 라틴어 시편을 번역한 조오지 조이(George Joye)의 시편이다. 부처는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가로서 영어 성서 번역의 과정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인데, 마일즈 커버대일(Miles Coverdale)이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의 미완성 성서번역을 완성하여 출판하는 것을 도왔다. 부처는 또한 1560년 제네바 성서(the Geneva Bible)의 번역을 도왔고, 존 캘빈(John Calvin)과 함께 자신의 신자들을 위해 끌레망 마로(Clément Marot)와 떼오도르 드 베즈(Théodore de Bèze)로 하여금 ꡔ불어판 시편ꡕ(Les Psaumes de David mis en rime Françoise)을 출판하게 하였다(1562). 이 불어 시편이 바로 필립 시드니와 메리 시드니의 ꡔ시편ꡕ의 가장 기초가 되는 모델이 되었다.

  필립 시드니는 성서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의 목표를 자신의 목표로 삼는 신앙심과 더불어 시편 번역을 시작하였다. 그는 번역에서 학문성과 문학성을 염두에 두었고 이 점은 그가 미완성으로 남긴 시편 번역을 완성한 메리 시드니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필립 시드니는 네덜란드로 떠나기 전에 시편 번역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1편부터 43편 까지 번역하였으며, 44편부터 150편 까지는 메리 시드니가 번역하였다. 메리 시드니는 시편을 번역함으로써  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였으며, 유럽의 여러 가지 문학 양식을 모델로 하여 다른 시편 번역보다 훨씬 문학적이며 학문적인 깊이를 갖춘 번역을 완성하였다. 백작부인은 앞서 언급한 끌레몽와 베즈의 불어판 시편과 더불어, 커버데일의 시편, 제네바 성서의 시편과 캘빈과 베즈의 라틴어 시편 주석과 앤써니 길비(Anthony Gilby)가 영어로 번역한 이들 주석 등 학문적 우수성을 갖춘 번역본과 주석들을 주로 이용하였다. 이들 번역본들과 주석들을 기초로 메리 시드니는 당시의 영적인 문제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충실한 번역과 함께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료들을 택하거나 그녀 고유의 은유와 심상, 비유들을 덧붙이는 등의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노력들을 통해 시편 화자의 목소리를 재구성하였다.

  펨브록크의 ꡔ시편ꡕ은 순수하게 종교적인 특성들을 간주하는 다른 번역본과는 다른 특성들을 보이는데, 그녀가 주로 사용한 제네바 시편과 다른 두드러지는 특성들 중의 하나는 당시 인문주의 교육의 중요한 관심사인 고전적인 비유나 암시들을 성서 번역에 사용했다는 점이다. 시편 48. 20에서 동녘 풍을 “에우루스의 돌풍”(Blasts of Eurus)이라고 하거나, 67. 30에서 제피루스(Zephyrs)에 대해 언급하거나 73. 29에서 풍요의 뿔(cornucopia)을 언급하는 것 등이 그 예들이다.

  제네바 성서와 비교할 때 또 다른 특성은 백작부인의 신앙에 대한 태도와 관련이 있다. 메리 시드니의 ꡔ시편ꡕ에는 흥겨움과 경쾌한 어조가 흐르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평가받는데(Collected Works II 26), 이 경쾌함은 필립 시드니가 ꡔ시의 변호ꡕ(Defense of Poesy)에서 다윗 시편을 기쁨의 찬송으로 정의내리는 견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시편에 포함된 여러 가지 형태의 인간 고통과 구원의 탄원, 때로는 저주까지 서슴지 않는 목소리들은 결국 불완전함과 나약함 때로는 죄와 더불어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이므로, 메리 시드니는 기쁨으로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추며 찬양을 드리는 것을 달리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제네바 번역가들은 춤이나 노래와 같은 예배행위에 대해 다소 주저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제네바 시편 92편은 안식일에 바치는 예배의 노래인데, 3행에서 번역가들은 원문에 충실하여 “10개의 현악기과 하프의 노래와 더불어 비올의 노래로”(an instrument of ten strings, and upon the viole with the song upon the harp) 라고 번역했지만, 이렇게 악기와 노래를 이용하는 가장자리 주석에는 “이 악기들은 그때에는 허용되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폐지되었다”(These instruments were then permitted, but at Christs coming abolished)라고 적고 있다. 이는 이들이 세속적인 경향을 보이는 예배 행위를 억압하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메리 시드니는 악기의 심상을 자유롭게 사용하였으며, 특히 류트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한다(Ps 81. 6, 87. 22, 92. 9, 98. 15, 144. 36, 150. 6 등).

  시편은 성서의 여러 책들 중에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을 갈망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해놓은 성서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시편의 150편의 노래들은 인간의 고통과 갈등, 죄와 회개, 신앙과 기쁨 등 하느님이 다윗에게 혹은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다윗이나 이스라엘 공동체로 대변되는 불완전한 인간이 절대자를 향해 쏟아놓는 온갖 열망들을 표현한다. 개인적인 시편기도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를 그 기도에 실을 수 있게 하였던 것처럼, 시편은 번역가에게 성서의 다른 책들보다도 더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당시만 해도 시편의 저자는 다윗이라고 간주하기는 했지만, 익명성을 가진 “나”라는 시편의 화자의 목소리는 기도하는 번역가 자신의 목소리가 될 수가 있다. 또한 공동체 기도로서의 시편은 번역가로 하여금 그 공동체의 대변인과 같은 자격과 권위를 부여한다. 1559년 영국에서 최초로 시편이 공동체 찬송으로 사용된 후, 1560년경에는 함께 모여 시편을 노래로 바치는 신심이 영국 전역에 퍼져 대중 종교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편 기도는 개인 묵상과 기도에 특히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개인적인 기도나, 탄원을 실은 시편은 그 시편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 시편의 상황에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을 적용할 수 있게 하였고, 그리하여 시편 저자의 목소리는 곧 독자의 목소리로 변모될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로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행위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당시 종교 개혁자들은 실제로 시편을 노래하면서 싸움에 임하고 죽음에 임하기도 하였는데,9) 특히 필립과 메리 시드니의 번역본의 모델이 된 불어판 위그노 시편 또한 매우 정치적/종교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영국의 예를 들면, 토마스 모어(Thomas More), 토마스 와이엇트(Thomas Wayatt), 써레이 백작 헨리 하워드(Henry Howard, Earl of Surrey) 등은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를 당할 때 자신의 처지에 적절한 시편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제인 그레이는 처형을 당하기 전에 자비를 구하는 시편기도를 영어로 암송하였는데, 그 행위를 통해 자신의 프로테스탄트 신앙을 강조함으로써 가톨릭신자인 메리 튜더와 자신을 구별 지었던 것이다.

  메리 시드니는 시편 번역을 할 때 자신의 신앙심과 문학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의식하였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일 뿐 아니라 시편의 저자로서 시인으로도 불렸으며, 시편은 문학작품으로 간주되었다. 당시 통용되던 시편의 문학성, 시인으로서의 시편저자에 대한 견해는 필립 시드니에 의해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제가 이 ‘예언자 시인’이라는 단어의 합당성을 보여주고 거룩한 다윗의 시편이 종교시라고 감히 말해서는 안됩니까? . . . 시편이라는 이름도 심지어 해석하면 바로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편은 완전히 운율로 쓰였고, 마지막으로 중요한데, 그가 예언을 다룬 방식은 바로시적인 뿐 입니다: 그가 악기의 잠을 깨우고, 자주 자유롭게 목소리(인칭)를 바꾸고 . . . 짐승들이 기뻐하고 언덕들이 뛰어오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천상의 시가 아니고 . . . 무엇입니까 . . . ? (ꡔ시의 변호ꡕ)10)


필립 시드니는 시인과 예언자와의 동일성을 논한 후, 영감의 받은 시인의 대표적인 예로서 다윗을 꼽고 있으며, 시의 종류를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최고의 시는 종교시라고 규정하는데, 최고의 시인들 중 시편을 노래한 다윗을 서슴지 않고 제일 먼저 예로 든다. 시편의 운율과 풍요로운 이미지와 은유적인 언어들,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주제 등은 시편을 시로, 시편저자를 시인으로 간주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존 던(John Donne)은 「필립 시드니경과 누이 펨브록크 백작부인의 시편 번역에 부쳐」(“Upon the translation of the Psalmes by Sir Philip Sydney, and the Countesse of Pembroke his Sister”)에서 이들의 ꡔ시편ꡕ이 이전의 번역본들 보다 우월하고 후세의 시인들에게 종교시를 써야하는 이유와 쓰는 법에 대해 가르친다고 말한 바 있다(Donne, Divine Poems 34). 던이 말했듯이, ꡔ시편ꡕ은 17세기 종교 시인들의 의해 널리 읽혀졌을 것이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11)

  특히 ꡔ시편ꡕ에 부친 두 편의 헌정시는 메리 시드니가 시편 번역을 할 때 자신의 신앙심과 문학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의식하였다는 것을 드러내 보일 뿐 아니라, 그들 시편의 정치성 또한 함축하고 있다. 시편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공동체의 대표인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윗이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하여 기록한 것이므로, 번역가는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그 시편을 번역하는 것이다. 필립 시드니와 메리 시드니는 바로 다윗의 후예로서 그들은 영어로 시편을 노래함으로써 영국인들에게 새로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을 도우는 역할을 한 것이다. 「지금도 용안(龍顔)에 어린 저 근심」(“Even now that Care.”이후 「근심」으로 약칭.)은 여왕에게 헌정한 시이고 「필립 시드니 경의 천국의 영혼에게」(“To the Angell spirit of the most excellent Sir Phlip Sidney.” 이후 「천국의 영혼」으로 약칭.)는 오빠에게 헌정된 시이다. 이 두 편의 헌정시에는 당시 영국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의 열망이 매우 잘 표현되어있는데, 메리 시드니는 프로테스탄트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왕에게 그 열망을 전달하고 있으며 그 전달행위를 통하여 자신이 예언적 시인임을 강하게 함축한다. 우선 「근심」을 살펴보면, 예언적 시인으로서 메리 시드니의 목소리는 오빠인 필립 시드니와 시편 저자인 다윗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But hee did warpe, I weav'd this webb to end;

The stuffe not ours, our worke no curious thing,

Wherein yet well we thought the Psalmist King

Now English denizend, though Hebrue borne, (「근심」 27-31)


그가 날실을 베틀에 걸었지만, 제가 끝까지 천을 짰습니다;

원료는 저희 것이 아니지만, 저희 작품은 기이한 것이 아니며,

저희는 작품 속에서 시편의 왕, 비록 히브리 출신이지만

여기서는 영국귀화인인 그를 상상하였습니다,


ꡔ시편ꡕ을 필립 시드니와 자신의 공동작품으로 소개하면서, 메리 시드니는 당시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 영국을 새로운 이스라엘로 간주하던 종교적 열성을 그대로 표현한다.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가들에게 있어서 영국은 곧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 새로운 이스라엘이었다. 시편의 다윗 왕이 영국으로 귀화한 것이라면 시편 영어 번역본에서 다윗은 곧 엘리자베스 여왕이며, 다윗이 하느님에 의해 기름부음 받은 왕이듯이 프로테스탄트 엘리자베스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영국을 가톨릭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고 보호할 특별한 종교적 소명을 받은 군주이다. “우리가” 시편의 다윗 왕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모습을 생각한다는 것은 프로테스탄트교인 이들 오누이가 시편 번역을 통해 자신들의 종교적 열망과 희망을 다윗의 기도와 탄원들과 함께 번역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종교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해내이(Hannay)가 주장하듯이(Hannay, "Admonitory Dedication" 149-65), 「근심」과 더불어 「천국의 영혼」에서 메리 시드니는 오빠와 집안의 정신대로 프로테스탄티즘을 강하게 옹호하는 정치적 주장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근심」의 후반부에서 메리 시드니는 보다 구체적으로 엘리자베스와 다윗을 동일시한다. 백작부인은 예표론적인(typological) 관점에서 "엘리자베스의 치세가 이미 그의 통치 속에 그려져 있고“(ev'n thy rule is painted in his Raigne, 65), 엘리자베스가 가톨릭 세력에 의해 고통을 받고 다윗이 사울에게 고통을 받았듯이, “두 사람 모두 불의의 억압을 받았다”(both nigh by wrong opprest, 66)고 두 왕을 비교한다. 다윗을 괴롭힌 “교만한 팔레스타인 사람들”(proud Philistines, 69)을, 구체적으로 가톨릭 세력으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가톨릭 세력과 연결시켰을 것이다. 이렇게 엘리자베스의 다윗 이미지는 시드니/더들리 가문의 사람들을 비롯한 영국의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트교인들이 여왕에게 강력하게 원했던 대로 종교개혁의 열망이 가장 활발한 이 시기에 유럽 프로스테스탄티즘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는 열망(「근심」 7-8)을 잘 표현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트군주로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다윗과 같은 종교적 정통성을 부여받는 것은 절대자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편을 영어로 번역하는 메리 시드니에 의해서이다. 메리 시드니는 새로운 다윗으로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엘리자베스를 위해 시편을 번역하므로, 바로 그 때문에 그녀는 신의 영감이 주는 권위를 가진 종교시인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예언적 시인으로서의 메리 시드니의 권위는 여왕의 신적인 권위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므로, 그녀는 여성이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금기사항을 깰 수 있는 것이다.

  여왕과 더불어 공동 저자이며 시인으로서의 당당한 권위와 명성을 누렸던 오빠 또한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의존할 수 있는 권위이다.


    Thy Angell’s soule with highest Angells plac’t

There blessed sings enjoying heav’n delights

    thy Makers praise: (「천상의 영혼」 59-61)


    오빠의 천사와 같은 영혼은 지고한 천사들과 함께

축복받은 그곳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창조주를 찬양 합니다:


천국에서 창조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필립 시드니는 지상에서의 그의 명성과 함께 그녀의 번역 작업을 성스럽게 만들어 줄 진리에 대한 영감을 불어 넣어 “진리, 성스러운 진리”(「천상의 영혼」 52)에 대해서 당당히 노래할 수 있는 뮤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 베일린이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시드니를 성스러운 비전과 하느님 말씀에게로 페트라르카를 인도하는 로라에 비유하기도 했는데(Beilin 150), 그들을 통해 메리 시드니는 지금까지의 여성 작가들 중에서는 독특하게 종교 시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메리 시드니가 가졌던 번역 작가로서의 이러한 강한 자의식은 그녀가 43세 되던 1618년에 시몬 반 드 빠스(Simon van de Passe)가 새긴 그녀의 초상화에서 잘 드러난다. 이 초상화에서 그녀는 라틴어와 영어로 시드니가의 한 사람이고 펨브록크 백작부인으로 명명되어 있으며, 손에는 “다윗의 시편”이라고 쓰인 책을 들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월계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가 월계관을 쓴 모습을 남긴 것은 그녀 자신이 시인으로 보이기를 원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초상화를 통해 시인으로서 자기주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Hanny "Mary Sidney" 139).

  메리 시드니는 당시의 여성에게 주어진 규범의 틀 속에 스스로를 맞추어 주로 번역물들을 통해 오빠나 다른 남성저자들의 목소리 속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왔지만, 그녀의 문학적 자의식은 다음 세대의 메리 로쓰(Mary Wroth)나 에밀리아 라니어(Aemilia Lanyer) 같은 여성 작가들이 문인으로서 영문학사 속에 더욱 공고히 그리고 더욱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 귀감이 되었다. 라니어의 작품 ꡔ유대인의 왕 하느님 만세ꡕ(Salve Deus Rex Judaeorum)의 헌정시들 가운데 메리 시드니에게 바친 헌정시에서 라니어는 서슴지 않고 누이가 특출한 오빠 못지않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면에서 더 낫다는 주장까지 한다.


So that a Sister well shee may be deemd,

To him that liu'd and di'd so nobly; (150)

And farre before him is to be esteemd

For virtue, wisedome, learning, dignity. (The Authors Dreame to the Ladie Marie, the Countesse Dowager of Pembrooke. 149-52)12)


그리하여 그녀는 참으로 고귀한 삶을 살았던

그의 누이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하며,

덕과 지혜, 지식, 위엄에 있어

오빠보다 훨씬 낫다고 존경받으리라.


메리 시드니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후원을 의식한 지나친 찬사라고 볼 수 도 있으나, 라니어에게 있어서 메리 시드니가 필립 시드니와 적어도 동등한 재능을 갖춘 여성작가로 인식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귀족여성들의 깊은 신앙심은 공공연하게 찬사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 신앙심의 표현인 시편 번역물이 찬사를 받은 것은 메리 시드니가 문인으로서 인정을 받은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러한 찬사는 여성의 경우 유례가 없었던 것이다.13) 이점에서 메리 시드니는 그녀 이전에 그녀와 유사한 신분에 있었거나 혹은 더 높은 신분에서 종교적인 글들을 쓰거나 번역한 여성들, 예를 들어 앤 애스큐나 캐써린 파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백작부인의 시인으로서의 권위는 역할 모델을 가지지 못했던 근세 초기의 여성 작가들, 특히 백작부인과 같은 귀족의 후원을 필요로 했던 라니어와 같은 여성 시인에게는 후원자로서 뿐 아니라 의존할 수 있는 시적 권위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물론 작품 활동에 있어서 시드니는 독창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근대초기에 여성들에게 적합하다고 간주되었던 문학영역 범위인 비가, 찬가, 번역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백작부인의 주요한 문학 활동의 궤적은 번역에서 출발하여 번역으로 마감하고 있지만, 그녀는 번역을 통해 다양한 서정시의 형식과 기교를 모방하고 실험하였다.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배경에서 나온 이 시작(詩作)과정을 남성작가들과 똑같이 거친 메리 시드니는 종교시인 혹은 서정시인이라고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주요어: 메리 시드니, 필립 시드니, 번역, 근대초기 여성작가, 죽음,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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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In Other Voice: Translator Mary Sidney


Jin-Ah Lee


    Mary Sidney, Countess of Pembroke, was the first Elizabethan woman to achieve public acclaim as a literary figure, mainly through translation. Humanist educators included literary translation in their academic curriculum, and encouraged students to translate classical works into vernacular. The Reformation also stimulated the translation of religious writings. Even in the period when women's public voice was silenced, especially translation of devotional writings was considered to be appropriate for women. Mary Sidney, intelligent, wealthy and part of a powerful family alliance in Tudor England, received an outstanding humanist education, following the standard humanist curriculum of the classics, the Church Fathers, and Latin, French, and Italian language and literature. Embarking on a course of imitation and experimentation in translation, she sought a clear literary vocation and found her own voice in the space between original texts and translated ones. Unlike any other female writers, she did not write prefaces apologizing for or defending her sex, and yet she by no means broke with feminine literary decorum. Thus in Psalmes, her most accomplished translated work, she represented herself as a model of a female literary figure to her own and succeeding generations.




Key Words: Mary Sidney, Philip Sidney, translation, the early modern women writers, death, Psalms.


* 이 연구는 2004학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내학술연구비의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

1) 메리 시드니 허버트, 펨브록크 백작부인(Mary Sidney Herbert, Countess of Pembroke)이 영국 르네상스 시대에 문인으로서 공인된 최초의 여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뛰어난 재능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녀의 가문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메리 시드니는 1561년 10월 27일 헨리 시드니 경(Sir Henry Sidney)과 메리 더들리(Mary Dudley) 사이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는 당시 웨일즈 의회 의장(Lord President of the Council of Wales, 1559-86)이었으며 아일랜드 총독(the Lord Deputy of Ireland)을 두 번 역임하였다(1565-71; 1575-78). 시드니의 친가와 외가의 후손 중 유일한 상속자인 오빠 필립 시드니(Sir Philip Sidney)는 당시 국무장관인 프란시스 월싱엄(Frances Walsingham)의 딸과 결혼하고, 메리 시드니는 아버지 뒤를 이어 웨일즈 의회 의장이 된 펨브록크 백작(earl of Pembroke)과 결혼하여 혼맥을 통해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영향력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2) 당시에는 종교개혁과 반동 종교개혁의 바람을 타고 많은 신상서적이 출판되었으며, 그중 대부분은 특히 여성 독자들을 겨냥한 서적들이었다. 영적 독서는 (프로테스탄트건, 가톨릭이건) 교육받은 그리스도교 여성들의 신상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특히 영적 일기를 쓰는 일이 장려되어 여성들의 자아인식과 내적 성찰의 향상에 큰 공헌을 하였다. Crawford 75-92.


3) Elaine Beilin은 두 사람의 밀접한 영향 관계의 통념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한다. Beilin의 의구심은 두 사람의 성장 시기와 서로 다른 삶의 방향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타당하다, 우선 남아와 여아의 교육 목적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메리의 인문학교육은 필립보다는 그녀의 부모의 영향하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메리가 어렸을 때 7세 위인 필립은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났기 때문에 서로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고, 어른이 되어서야 서로 만날 수 있었다. 필립이 여왕과 알랑송(Alençon) 공작과의 결혼 문제로 엘리자베스(Elizabeth)여왕의 심기를 건드린  후 궁정을 떠나 1580년경부터 동생을 자주 방문하였고 그의 작품 ꡔ아케이디아ꡕ를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메리에 대한 오빠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는 없지만, 메리 시드니의 지적 성장과정에 오빠가 그렇게 과도한 영향을 미칠 수가 없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Beilin 123-27.


4) 메리 시드니와 그녀의 작품에 관한 최근의 연구 동향에 대해서는 Josephine Roberts, "Recent Studies in Women Writers of the English Renaissance: Mary Sidney, Countess of Pembroke," Arthur F. Kinney, and Ann Rosalind Jones, eds., Women in the Renaissance III: Studies in Honor of Ruth Mortimer, spec. issue of English Literary Renaissance 24(1994): 245-58, 265-69; Micheline White, "Recent Studies in Women Writers of Tudor England, 1485-1603 (mid-1993 to 1999)," English Literary Renaissance 30(2000): 457-94를 참조.


5) 다이앤 본스타인(Diane Bornstein)에 의하면, 모르네이의 작품은 백작부인이 번역하기 전 1576년 런던의 인쇄공인 에드워드 아가스(Edward Aggas)에 의해 최초로 번역되었다. 본스타인은 아가스와 시드니의 번역을 비교분석하여 백작부인의 번역이 훨씬 더 원문에 충실하고 은유적 표현에 있어서 뛰어나고 구문이 더 부드럽고 문체가 훨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Bornstein 127-28.


6) 메리 시드니의 작품 인용은 Margaret P. Hannay, Noel J. Kinnamon, and Michael G. Brennan, eds., The Collected Works of Mary Sidney Herbert Countess of Pembroke Vol. I: Poems, Translations, and Correspondence (Oxford: Clarendon, 1998)과 같은 편자, The Collected Works of Mary Sidney Herbert Countess of Pembroke Vol II: The Psalmes of David (Oxford: Clarendon, 1998)에 의거한다. 백작부인의 작품들 중 Discourse of Life and DeathDiscourse, Triumph of DeathTriumph로 약칭하기로 한다.


7) 시드니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급진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을 지지하는 가문으로 외할아버지 노썸벌런드 공작(Duke of Northumberland, Dudley가문)은 가톨릭계 여왕인 메리 튜더(Mary Tudor)를 반대하여 프로테스탄트인 제인 그레이(Jane Grey)를 여왕으로 추대하는데 연루되어 처형당하였다. 메리의 어머니 뿐 아니라 이모들도 모두 열렬한 프로테스탄트 집안으로 출가하였다. 그리고 필립 시드니는 프랑스 위그노교인들이 가톨릭 교인들에 의해 대량 학살된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St. Bartholomew Massacre)이 일어났던 1572년 파리에 있을 때, 모르네이와 친분을 맺게 되었으며, 모르네이는 더들리가와 시드니가의 사람들과 계속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8) 예를 들어,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이 영어로 번역한 유명한 신약성서도, 일반인의 성서번역 및 출판이 금지된 때였으므로, 유럽에서 출판되어 1525년 영국으로 밀수입되었다. 비밀리에 읽혀지던 틴들번역본들도 틴들처럼 압수되어 불태워졌다.


9) 마가렛 해내이는 시편을 자신의 상황에 직접 적용하며 종교적 투쟁을 했던 영국 프로테스탄트개혁가들에 대한 예들을 제시하고 있다. “'Doo What Men May Sing': Mary Sidney and the Tradition of Admonitory Dedication," Margaret P. Hannay, ed., Silent But for the Word: Tudor Women as Patrons, Translators, and Writers of Religious Works (Kent, OH: The Kent State UP, 1985), 162.


10) ꡔ시의 변호ꡕ(Defense of Poesy)의 원문은 W.J. Bate ed. Criticism: The Major Texts. 84-85면을 사용함.


11) 메리 시드니가 17세기 종교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Barbara K. Lewalski, Protestant Poetics 275-6, 같은 저자 Writing Women 213-42, Louis Martz, Meditation 273-9, 그리고 특히 던, 라니어(Emilia Lanyer), 허버트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Debora Rienstra, 「Aspring to Praise: The Sidney-Pembroke Psalter and the English Religious Lyric」 (Rutgers U, Ph.D. diss., 1995)을 참조.


12) Susanne Woods ed., The Poems of Aemilia Lanyer: Salve Deus Rex Judaeorum (Oxford: Oxford UP, 1993), 28.


13) 백작부인의 시인으로서의 권위는 역할 모델을 가지지 못했던 근세 초기의 여성 작가들, 특히 백작부인과 같은 귀족의 후원을 필요로 했던 여성 시인에게는 후원자로서 뿐 아니라 의존할 수 있는 시적 권위의 역할을 하였다. Lanyer가 특히 종교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공언하는데, 백작부인이 번역한 ꡔ시편ꡕ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백작부인에게 바친 Lanyer의 헌정시에 잘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