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환상성:1)

중세적 모티브의 영화적 변용에 대한 고찰*




남 완 석





1. 서론


영화의 본질적 특성이 일반적으로 사진과 마찬가지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 있다는 견해는 영화의 탄생 이래로 오랜 시간동안 유지되어 온 관점이다. 이러한 입장에 근거한 이른바 사실주의는 영화이론의 적자로서 오랫동안 주도적 위치를 유지해 왔다. 반면 비현실적인 것을 시각화할 수 있는 영화의 환상성은 주로 본질이 아닌 형식적 관점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특히 영화의 환상성은 이것이 최대한 발휘되는 판타지, 공포물, SF물 등과 같이 이른바 “대중문화”와 동일시되면서 오랫동안 진지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서 무시되어 왔다.

본 소론의 목적은 이러한 영화의 환상성이 사실성에 앞서는 보다 본질적인 영화적 특성임을 밝히고 그러한 특성이 나아가서는 중세적 전설과 신화의 모티브들이 영화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임을 규명하는데 있다.




2. 영화의 탄생: 현실 복제 기술의 등장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에서 처음으로 유료관객들에게 영화를 상영했을 때, 그중 한편의 영화인 <기차의 도착>을 처음 관람한 관객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극장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새로운 시각매체인 영화의 도착을 알리는 일화이기도 한 이 에피소드는 또한 영화가 갖고 있는 일차적인 능력, 즉 현실에서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는 영화적 특성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의 모방은 모든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현실의 움직임을 재현하려는 것 또한 비단 예술적 측면에서 만이 아니라 기술적인 관점에서도 인간의 오랜 꿈이었다. 짐승이 달리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다리를 여러 개 그려 놓은 선사시대 고대 동굴 벽화에서도 그러한 시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회전하는 자동차 바퀴나 스쳐지나가는 다리의 난간의 경우에서처럼 일정하게 빠른 속도로 반복해서 움직이는 대상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의 허상, 즉 움직임의 착시를 유발시킨다는 인간 시지각 기관의 특성 또한 이미 고대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계몽주의와 르네상스의 산물로서 결과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영화의 선사사대라고 할 수 있는 조이트로프, 카메라 옵스큐라, 라테르나 마기카의 발명을 거쳐서 사진의 발명의 도움으로 19세기 말 드디어 움직임의 재현이라는 인간의 오랜 꿈을 실현시켰다. 이로서 영화는 사진과 더불어서 “기술 복제 시대”2)를 대표하는 새로운 매체로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의 이러한 현실 복제능력은 초기의 “기술적 신기함(technisches Kuriosum)”3)을 잃어버리면서 더 이상 영화관객들을 매혹시킬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제작자들은 곧 영화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뤼미에르 형제와 동시대 사람인 조르쥬 멜리에스는 영화를 통한 현실의 재현보다는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광학장치들의 특성을 이용해서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을 시각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멜리에스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차는 현실의 역에 도착하는 대신 하늘을 날아서 우주를 여행했다.4)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기술적 복제라고 하는 영화의 일차적 특성은 당시 새로운 매체인 영화를 배척하고 폄하하기 위한 근거로서 사용되었다. 멜리에스가 보여 준 영화의 비사실적 표현 가능성은 무시되고 영화는 단지 현실을 찍어내는 기계적 복사장치로 치부되었다. 이러한 비판적 상황의 배경에는 당시 영화의 예상치 못한 급격한 확산에 위협을 느낀 문화계 기득권층의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이들은 상류 귀족계층과 교양 시민계층의 향유물인 고급스런 예술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영화의 미천한 출신에 대해서 비판하였다. 시장바닥에서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대상으로 출발한 영화는 “땀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 영화가 주로 다룬 내용과 형식의 통속성을 영화의 본질로 간주하며 비판하였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살인, 유령, 애정관계와 같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러한 내용을 조야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고 보았다.


“내 입장은 이렇습니다. 나 역시 영화를 경멸합니다만, 동시에 사랑합니다. 영화는 예술이 아닙니다. 영화는 삶이요 현실입니다. 그리고 벙어리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의 작용은 예술의 정신적 작용과 비교하자면 조야하고 선정적입니다.”

“Was mich betrifft, so verachte ich ihn auch, aber ich liebe ihn. Er ist nicht Kunst, er ist Leben und Wirklichkeit, und seine Wirkungen sind, in ihrer bewegten Stummheit, krud sensationell im Vergleich mit den geistigen Wirkungen der Kunst.”5)


당시 독일의 대표적 문인이었던 토마스 만은 이러한 영화는 결국 마치 양파를 뺨에 문지르는 것처럼 관객의 눈물을 쥐어 짜내는 것이라고 조롱했다.6) 만을 비롯한 당대의 문화 지식인 계층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이러한 영화에 대한 경멸과 비판의 기저에는 예술의 숭고함과 고상함을 극대화시킨 낭만주의적이고 엘리트적인 예술관이 깔려 있다. 이러한 예술관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술은 차가운 영역이고, 고도의 정신적 교감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7) 따라서 예술은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지 재미나 오락과는 무관한 것이며, 재미나 오락은 영혼의 빈한함을 속이는 것이라고 보면서, 영화의 미래가 없음을 강변했다.8) 



3. 영화를 통한 환상성의 발견


하지만 문화계 기득권층 가운데에서도 영화에서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보고 영화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영화의 기계적 현실 복사능력과 통속성에 쏟아진 비판으로부터 영화를 옹호하기 위해서 새로운 논거를 주장하고 이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루돌프 아른하임은 영화가 현실을 노예적으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영화가 프레임을 통해서 현실을 제한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며, 그 재현은 3차원적인 현실과는 달리 2차원적 평면인 스크린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편집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이 단절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영화적 재현은 현실의 기계적이고 직접적인 재현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특성 내지는 제한으로 인해서 영화를 통한 재현 역시 음악, 회화, 문학과 마찬가지로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영화적 재현의 한계 내지는 현실과의 차이에서 영화의 예술적 표현 가능성이 나오는 것이라고 보았다.9)

아른하임에 의해서 시도된 “예술로서의 영화”의 이론화 작업은 결국 영화적 재현의 비사실성을 주창함으로써 영화의 예술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영화의 비사실성 내지는 환상성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라기보다는 영화에 대한 비판의 근거가 되었던 기존의 고전적 예술관의 틀 속에서 영화의 위치를 방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영화에 대한 이론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영화의 본령은 사실성이 아니라 환상성에 있음을 주장하는 이들이 존재했다. 특히 이른바 “영화 논쟁(Kino-Debatte)”이 벌어졌던 독일에서는 영화의 유익함과 무익함, 영화의 예술성과 통속성 등에 관한 논쟁을 통해서 일부의 사람들은 영화의 본질을 사실성이 아닌 환상성에서 찾고자 했다.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공중을 부유하고, 경치가 바뀌며, 유령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게 할 수 있다. 대양에서 거니는 거인과 손 등 위에 서 있는 난쟁이를 보여줄 수도 있다. 천일야화의 모든 동화들, 신비롭고 거룩한 꿈들을 영화는 현실이 되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 모든 것에 예술의 형식을 부여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의무이다.“

“Mann kann übernatrliche Erscheinugnen in der Luft schweben, Landschaften wechseln, Geister erscheinen und verschwinden lassen. Man kann Riesen zeigen, die im Ozean waten, Zwerge, die auf dem Rücken einer Hand stehen. Allen Märchen aus Tausend und eine Nacht, den Träumen der Mystiker und Heiligen vermag ein Film Wirklichkeit zu verleihen. Darum wäre es eine Pflicht des Films, all diesem die Form von Kunst zu geben"10)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을 광학적 수단을 활용해서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에 바로 예술로서의 영화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이 견해는 영화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논구가 아니라  영화의 기술적 수단들을 이용한 표현가능성에 대한 언급이기는 하지만, “시간과 공간, 생물과 무생물, 현실과 꿈 간의 경계를 깨뜨리는 영화의 무한한 형식적 가능성”11)은 기존의 다른 매체들에서는 실현 불가능했던 새로운 것으로서 영화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4. 영화이론의 역사: 사실성과 환상성의 대결


이렇게 영화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자연주의적 기록 대 환상적 양식화, 모사와 허구간의 긴장관계로 전개되었다. 여기에서 영화의 자연주의적 현실 모사와 기록 능력을 영화의 본질로서 규정하고 이론을 전개한 것이 이른바 사실주의 계열의 영화이론들이라면, 영화의 환상성과 형식적 가능성에서 영화의 본질을 찾고자 한 것이 이른바 형식주의 계열의 이론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세기 남짓 한 짧은 영화의 역사에서 주창되었던 많은 이론과 사조, 운동은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뤼미에르 - 바쟁 - 크라카우어 - 네오리얼리즘으로 이어지는 사실주의적 전통의 계보는 표현적 층위에서 출발한 사실성을 예술의 진정성이란 개념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오랜 동안 영화이론의 역사에서 적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반면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영화의 환상성과 형식주의는 영화의 족보에는 이름이 올라가 있지만 진정성의 결여나 유희로서 치부되면서 적자로서의 대접 대신 일종의 서출의 서러움과 비난을 받아왔다. 그래서 가령 현실 단편들의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이의 창조적 재조합을 통해서 현실의 진정성을 보다 극명하게 표현하려 했던,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사실주의자인 에이젠슈테인은 완고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로부터 "형식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형식주의는 가치 중립적인 개념의 범위를 넘어서서 일종의 의심과 혐의, 그리고 비난을 내포하는 명칭으로 사용된 반면 사실주의는 인정과 칭송을 암시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5. 디지털 시대의 영화: 사실과 환상의 경계 붕괴


현실과 이것의 재현 그리고 관객을 통한 수용이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복잡한 양상을 띠면서 전개되어 온 영화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그러나 상당부분 새로운 영화적 상황의 도래를 통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촬영자의 개입 없이 카메라 앞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든지, 촬영자의 개입에 의해서 연출되고 선택된 것이든지, 또는 멜리에스의 경우처럼 광학적 속임수나 미니어처를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든지, 심지어는 애니메이션의 경우까지도 지금까지 모든 영화는 카메라 앞에 존재하는 실제 대상을 전제로 했다. 이는 바쟁과 크라카우어, 롤랑 바르트를 포함해서 수많은 이론가들의 영화 및 영상에 관한 이론의 대전제였고 동시에 근원적으로 영화적 표현의 한계와 제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존재하지 않는 것의 형상을 필름에 담을 수는 없는 것이고, 설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나도 많은 노력과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와서 일부 공상 영화 뿐 아니라 영화 전반의 기초적인 기술로서 자리를 잡고 있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그러한 전제의 필요성을 제거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무엇이 현실의 재현이고 무엇이 그것의 조작인지를 더 이상 분간할 수 없게끔 만들어버렸다. 디지털 기술로 구현된 이른바 “가상 현실”이란 용어처럼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져 버린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상황은 지금까지 논의된 차원에서의 영화의 본질에 대한 탐색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고 새로운 차원에서의 이론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술적 발전으로 인한 변화된 예술적 환경의 한 예로서 귄터 그라스의 작품에 대한 영화화를 들 수 있다. 독일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199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귄터 그라스의 작품들은 그의 인지도에 비해서 많이 영화화 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내용적으로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영화화하기가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스토리텔링 보다는 독백, 의식의 흐름 등의 현대적인 문학기법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넙치”나 “쥐”처럼 인간이 아닌 화자와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 중심적인 시선을 벗어난 새로운 관점의 획득이란 측면과 더불어서 영화가 표현할 수 없는, 문학 고유의 특성을 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도입된 후 디지털 쥐가 등장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영화화가 아무런 문제없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6. 영화의 본질로서의 환상성


앞에서 언급했던 뤼미에르의 <기차의 도착>이란 영화는 기차역으로 기차가 들어오고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현실 재현 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 이 영화는 영화사에서 오랫동안 사실주의와 다큐멘터리의 시발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초기영화에 대한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뤼미에르의 영화들 역시 현실의 일부를 그냥 카메라에 담은 것이 아니라, 일관된 구상에 바탕을 두어서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이 많다고 한다. <기차의 도착>의 경우에도 기차가 역에 접근할 때의 대각선 구도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라 움직임의 역동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고, 기차를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은 우연히 기차에 탔다가 카메라에 포착된 여행객들이 아니라 모두 뤼미에르가 아는 사람들로 촬영을 위해서 동원된 것이었다는 것이다.12) 이는 영화에서의 현실 재현이 곧 사실의 재현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기차의 도착>이 보여주는 다양한 관점 중에는 이보다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에서 관객들을 놀라게끔 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관객들이 영화 속 기차를 현실에서 보았던 기차의 완벽한 재현으로 인지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아마도 관객들의 감탄과 탄성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관객들은 감탄과 탄성을 넘어서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자리를 뛰쳐나갔다. 이러한 일화가 암시하는 것은 바로 영화의 진정한 힘은 오히려 그러한 현실의 재현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 즉 착시와 환상의 세계로 관객들을 이끄는 데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결국 영화의 탁월한 현실 재현능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것을 현실의 재현으로 인지하도록 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이 그것을 통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도록 해준다. 태생적으로 현실재현과는 무관한, 그래서 본질적으로 현실의 단순화와 극단화를 특징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동물의 털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까지도 재현하려는 시도는 궁극적으로 현실의 완벽한 재현을 통한 환영과 환상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결국 사실성과 환상성에 대한 기존의 전제 조건이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와해되어버린 지금, 영화의 본질적 특성은 오히려 시간과 공간을, 사실과 환상, 재현과 허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7. 대중매체 속의 중세적 요소들


나노 테크놀로지와 우주여행으로 대변되는 첨단기술의 시대에도 중세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들 곁에 존재하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인터넷 게임 등에서도 중세와 중세적 모티브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차용되거나 변용된다. 고전적인 애니메이션인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중세적 동화를 원전으로 하고 있음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창작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슈렉>과 같은 많은 애니메이션에서도 중세적 모티브가 차용되고 있다. 요즘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원래 주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기본적으로 동화적 특성을 갖고 있음에 착안해서 볼 때, 애니메이션에서의 중세적 모티브는 동화나 전설, 즉 상상과 공상의 시공간으로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경우에도 중세적 모티브의 활용은 상당한 전통을 갖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네트워크 게임이 나오기 전에도 “룸(Loom)”이나 “프린스” 같은 이른바 어드벤처 게임들이 마법과 검,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하는 왕자와 같이 중세적 모티브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 환경의 발달과 인터넷의 확산으로 게임계의 주류로서 부상한 이른바 “롤 플레잉 게임(RPG)”의 대표작인 “Dungeon & Dragon”, “리니지”도 중세적 모티브를 토대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의 경우에도 1천년이라는 긴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중세적 요소들이 영화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차용되고 있다. 먼저 중세를 직접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존재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잔 다르크”, “로빈 후드”, “아더왕 전설”이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진 대표적인 소재들이다. 특히 아더왕 전설은 1904년 최초의 영화가 나온 이래 다양한 장르의 형태로서 수백편의 영화에서 차용되고 변용되었다.13)

이러한 지속적이고도 빈번한 영화적 차용과 번용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파우스트 전설의 영화화의 경우와 비슷하게 정전화 되지 않은 모티브 때문일 것이다. 토마스 말로리, 볼프람 폰 에셴바흐, 마크 트웨인 등의 소설 뿐 아니라 바그너의 오페라 등 영화에 근거를 제공한 원전들의 시대적, 장르적 다양함은 소재와 주제의 자유로운 변형과 다양한 방식으로의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아더왕” 전설은 “원탁의 기사”, “성배”,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의 각각의 독자성을 갖는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어 모험과 액션, 러브스토리를 아우르는 복합 장르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나아가서 언뜻 중세와는 무관해 보이는 영화들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중세적 신화나 전설의 요체들을 담고 있다. 대표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인 <스타워즈> 시리즈는 머나먼 미래의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의 구성요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중세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주의 평화를 수호하는 제다이 기사단과 곤경에 처한 공주, 그리고 그녀와 우주를 사악한 제국의 손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애쓰는 기사, 그리고 중세 기사들의 육중한 갑옷을 연상시키는 병사들의 갑옷과 투구뿐 아니라 기사들의 결투가 첨단 광선총이 아니란 검으로 이루어진다는 점 또한 중세적인 요소로 파악할 수 있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 온갖 모험을 겪는 고고학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인디아나 존스>의 경우에도 성배에 대한 전설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과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SF 영화 <토털 리콜>의 경우에도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인 화성이 외계인이 만들어 놓은 수리시설에 의해서 지구와 같은 환경으로 변화한다는 설정을 통해서 이른바 “황무지”와 “물의 해방”이라는 아더왕 전설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8. 왜 중세인가?


문화적 자산과 전통의 끊임없는 기억과 소환은 매우 보편적인 문화현상이다. 그것은 아마도 문화적 동질감의 확인이라는 기능 외에도 광범위한 보편성 확보와 이의 변주를 통한 차별화가 용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문화적 자산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한 신화와 전설, 고전들은 끊임없이 반복, 변용되고 있다. 특히 대량소비를 생존의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대중문화의 시대에서 이러한 보편성의 획득은 존재를 위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매체의 상호 깨우침, 즉 “예술 상호간의 해명(wechselseitige Erhellung der Künste)”14)을 위한 공통분모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아더왕의 전설과 같은 특정한 소재와 주제, 이야기는 문학과 회화, 음악과 무용, 영화와 연극을 통해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지며, 이를 통해서 각 예술 장르들은 다른 예술 장르와의 직간접적인 상호 교류를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독자성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이유 외에도 서양의 역사에서 흔히 고대와 르네상스의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중간 단계로서 인지되고 흑사병과 마녀사냥으로 점철된 암흑기로 간주되어 왔던 중세가 근대 계몽주의의 열매인 첨단 과학이 만개한 현 시대에도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우선 게임의 관점에서 볼 때, 중세의 봉건제도로 표상되는 엄격한 신분제도는 분명한 게임적 요소로 치환될 수 있다. 즉 각 레벨에서 주어진 일정한 임무를 해결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게임의 진행방식은 평민에서 기사로, 기사에서 영주로 진행되는 신분의 상승으로 구현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게 되는 것들, 가령 보물찾기, 위기에 처한 공주 구하기, 도시나 왕국의 건설은 많은 게임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의 지속적인 흥미와 도전욕을 유발시키는 중간단계나 최종적인 목표로 설정된다.

또한 서양의 근대적 덕목인 사랑, 우정, 믿음, 충성 등의 가치와 위계질서가 확립되는 시기였던 중세는 그러한 가치의 “순수한” 원형을 체현하는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자본을 정점으로 복잡한 현대적 맥락 속에서 변형을 거듭해 온 이 가치와 질서체계는 “가상 현실”이라는 제한된 공간 속에서나마 그 현실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변인으로서 기능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으면서 게임은 물론 애니메이션에서도 적용이 될 수 있는 관점으로서 중세라는 역사적 과거가 현대인들에게 갖는 의미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바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역사적 장소, 즉 사실과 판타지가 뒤섞이는 동화적 세계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서구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기독교와 그리스, 로마의 고대 신화라면, 이 두 개의 기둥 위에 처음으로 세워진 문명이 바로 서양의 중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와 영주, 기독교와 봉건제도로 대변되는 중세는 이제 곧 도래할 계몽의 찬란한 빛에 가려 오랫동안 어둠 속에 존재했다. 기실 중세라는 시대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극심한 가난과 기아, 질병과 자연재해로 인해서 모든 사람들이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던 때이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30세였고, 흑사병과 같은 당시로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인간은 그러한 것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없는 미약한 존재에 불과했고,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서 예정된 것으로 받아들였다. 현세에서의 고달픈 삶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리고 당시로서는 불가해한 현상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명으로서 마법과 환상이 현실을 구성하는 커다란 받침대로서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이렇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15)

그러나 계몽주의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확립되었고, 이는 기술과 과학의 발달을 통해서 뒷받침되었다. 지금까지 자연이나 신의 섭리로 여겨졌던 많은 현상들은 인간의 끈질긴 탐구를 통해서 점차 그 원인이 밝혀지게 되었고, 나아가서는 인간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마법과 환상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것으로 간주되거나 심지어는 인간의 정신을 미몽에 빠뜨리는 것으로 비판받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법칙과 제도로 규정되어 버린 계몽주의 이후 근대와는 달리 미지의 자연 또는 야만과 그것을 극복하고 정복해서 이루어낸 문명 또는 문화로의 이행기로서 중세는 질서와 혼돈, 현실과 환상이 혼재 되어 있는 초월적 사이 공간이 된다.

호러 판타지의 대표적 인물인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도 이러한 대결과 이행의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주인공인 드라큘라 백작은 중세의 인물로 성에 살면서 자신의 세력 확장을 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부동산을 매입한다. 토지에 대한 그의 이러한 애착은 전형적인 봉건 귀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과학과 기술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힘의 도움으로 영생을 꾀한다. 반면 드라큘라 백작을 추적해서 퇴치하고자 하는 인물들은 계몽주의 이후 근대를 표상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의 직업은 토지와 칼에 근거한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생긴 의사, 변호사, 사업가와 같은 새로운 전문직이다. 이들은 드라큘라 백작의 초자연적인 힘을 과학의 힘을 빌어서 퇴치하고자 한다. 드라큘라 백작의 몰락은 결국 중세적, 봉건적 세계의 몰락과 근대적, 자유주의적 세계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 된다.16)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스페라투>로 최초의 공포영화를 만든 독일 감독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는 1924년 괴테의 소설로 유명한 파우스트의 전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의사인 파우스트 박사는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지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판다. 그 대가로서 그가 얻은 것은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법칙을 뛰어넘을 수 있는 마법이었다. 파우스트를 굴복시킨 메피스토펠레스는 다시 젊어진 파우스트를 마법의 양탄자에 태워 하늘을 날아서 먼 이국의 땅으로, 아름다운 여인들의 곁으로 그를 대려다 준다.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양탄자의 시점을 구현한 이 장면의 연출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당시 독일영화계는 모든 기술적 역량을 총동원 하였다. 촬영을 위해서 준비된 미니어처와 세트는 참관을 나온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이를 계기로 무르나우는 할리우드로 진출하게 된다.

영화사에서 유명한 이 장면은 바로 중세라고 하는 시대가 내포하고 있는 특성과 영화의 본질적 특성의 접점을 잘 보여준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아직 일천한 당시로서 인간은 현세의 육체가 갖고 있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질병과 그에 따르는 죽음과의 싸움에 있어서도 인간은 아직까지도 오로지 신의 뜻에 의지하고 있었고, 전쟁터에서도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첨단의 무기가 아니라 고작 창과 칼,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자신의 육체였다. 따라서 그러한 육체와 자연 법칙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자신의 영혼까지도 내맡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인간의 욕망 중 하나였고, 이것의 실현은 기술이 아닌 마술, 즉 현실이 아닌 환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러한 환상이 현실 세계에서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Sie ist ein Zauberding, die Filmmaschine, ein rechter Mantel des Faust, baut Brücken über Zeit und Raum hinweg und bringt ganz zweifellos einen neuen süßen Reiz in dies phantastische Leben.17)


영화란 기계는 마술이다. 진정한 파우스트의 망토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다리를 놓아주고 환상적인 삶에 새로운 달콤한 자극을 준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화의 환상성은 바로 이러한 현실법칙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줌으로써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영화에 있어서 중세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매혹은 일차적으로 영화와 중세가 공유하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 즉 현실과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나고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9. 결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 제작한 SF 영화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그때까지 싸구려 B급 영화장르였던 공상 과학 영화를 통해서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시도함으로써 SF영화의 위상을 일순간에 격상시키면서 아직까지도 SF 영화의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유인원들이 살고 있던 머나먼 선사시대와 가까운 미래인 2001년, 그리고 그보다 더 먼 미래시점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에는 각 시점마다 수수께끼 같은 검은 대리석이 등장한다. 정방형의 단순한 모양을 한 이 대리석은 신적인 존재나 고등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표상하는 것으로, 또 큐브릭의 고백처럼 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의 한계에 대한 표상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그것의 분명한 의미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중세적 전설, 특히 아더왕 전설에서 돌은 일단의 성배 상징군의 하나로서 “신비스럽고, 비밀스럽고, 무서운 것”을 표상함과 동시에 인간의 출생과 계승의 신비가 핵심이 되는 비밀의식의 상징물로 설명된다.18) 이러한 중세적 모티브의 배경 아래에서 검은 대리석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영화 속에서 갖는 그 의미맥락이 보다 분명하고 풍부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속에 들어와 있는 중세적 요소들에 대한 지식은 피상적으로 대량 소비되는 문화 컨텐츠로서 만이 아니라, 무한성을 꿈꾸는 유한한 존재의, 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고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꿈과 이상, 소망과 두려움의 뿌리를 파악할 수 있는 보편적인 단서들을 제공해 준다. “인간의 꿈”(움베르토 에코)으로서의 중세는 결국 인간이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머나먼 시공간적 격차를 넘어서서 항상 우리의 곁에 있을 것이다.


(우석대학교)




주요어: 문학과 영화, 환타지, 영화이론, 중세, 아더왕.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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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Film and Fantasy:

On filmic transformations of medieval motives


Wan-Seok Nam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prove that the real nature of film lies the ability to visualize the fantasties which are impossible in the real world and to  clarify the reasons why the motifs from myths and fairy tales of the Middle Ages have been frequently and consistently adapted in films.

In its beginning, film was regarded as just an interesting technical invention to represent the movement of reality, which made its substantial nature. This aspect of film was also widely adopted as evidence of film's incapability of making art. This conception is based on the traditional ideas about art, which should not reproduce reality directly.

But some supporters of film tried to defend it from this argument and to explain theoretically that filmic representation is not a slavish copy of, but rather an indirect reproduction of, reality. Others went further and tried to seek the essence of films in visual construction of fantasy which is unable to be seen in reality. They argued that the ability of film to go over the physical limitation of time and place is its essential nature. In the age of digitalization, in which the distinction between truth and false, reality and fantasy becomes more and more difficult, it is no longer persuasive to insist on the power of filmic representation of reality.

Film's property of constructing visual fantasy corresponds to the significance of the Middle Ages and its transformation in many films. The Middle Ages, historically known as the Dark Ages, can be characterized as an era, in which mankind was on the way towards establishing civilizations, but still suffered under the power of nature. They hoped to exceed their limitations by asking transcendental powers such as God and magic for help. So the fantasy played a great role in their lives.

The resemblance between film as an invention which makes it possible to construct fantasy visually and the Middle Ages as an era of fantasy can explain the phenomenon, that the myths and fairy tales of the Middle Ages are frequently and consistently adapted by so many films.




Key Words: literature & film, fantasy, film theory, the Middle Ages, King Arthur



1)* 이 논문은 2002년도 한국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KRF-2002- 074-AS1578).


2) 참고 Walter Benjamin,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1936).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반성완(편역), ꡔ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ꡕ. 민음사, 1983, 197-231쪽.


3) Anton Kaes, Kino-Debatte. Texte zum Verhältnis von Literatur und Film 1909-1929. Tübingen, 1978, S.2.


4) 조르쥬 멜리에스 <미지로의 여행(Le voyage 'a travers l'impossible)> (1904).


5) Thomas Mann, Über den Film, in: ders, Werke. Miszellen. Frankfurt a.M. 1968, p.149-151, 149 쪽.


6) 참고 위의 책, 150쪽: “... das wirkt wie Zwiebel ..., die Träne kitzelt im Dunkeln, in würdiger Heimlichkeit verreibe ich sie mit der Fingerspitze auf den Backenknochen.”


7) 참고 위의 책, 150쪽: “Die Kunst ist kalte Sphäre, ... sie ist eine Welt der Vergeistigung und hohen Übertragung, ... bedeutend, vornehm, keusch und heiter.


8) 참고 anonym, Vom Werte und Unwerte des Kinos. Antworten auf eine Umfrage der Frankfurter Zeitung, in: Frankfurter Zeitung No. 149 (31. Mai 1912): "Kunst hat mit Vergnügen nichts zu tun. Kunst bereichert die Seele, Vergnügung täuscht sie über ihre Armut hinweg. Die Kinos werden [...] Glück und Abstieg erleben, neue Reizungen vorbereiten und in Afrika enden."


9) 참고 루돌프 아른하임, 김방옥 옮김, ꡔ예술로서의 영화ꡕ. 기린원, 1990.


10) Urban Gad, Der Film - seine Mittel, seine Ziele, 1921. Hauke Lange-Fuchs, Faust im Film. 2.Aufl. Bonn 1997, S. 10에서 재인용.


11) 참고 Anton Kaes, 앞의 책, 26쪽: “Die unbegrenzten formalen Möglichkeiten, die die Grenzen von Raum und Zeit, lebendigem und Nichtlebendigem, von Wirklichkeit und Traum zu sprengen schienen, stimulierten die Phantasie der Dichter.”


12) 참고 토마스 엘세서, “루이 뤼미에르: 영화 최초의 버추얼리스트?,” 토마스 엘세서(편), ꡔ디지털 시대의 영화ꡕ. 한나래, 2002, 64-89쪽.


13) 아더왕 전설과 영화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다음의 저서들을 참조하시오: Rebecca A. Umland, The Use of Arthurian Legend in Hollywood Film. Westport 1996; Kevin J. Harty(ed.), King Arthur on Film. Jefferson, 1999; Kevin J. Harty(ed.), Cinema Arthuriana. Jefferson 2002.


14) 참고 Oskar Walzel, Wechselseitige Erhellung der Künste. Berlin, 1917.


15) 실제 당시 중세인들의 삶에 대한 안내서로는 호르스트 푸어만, ꡔ중세로의 초대ꡕ. 이마고, 2003을 참조하시오.


16) 드라큘라에 대한 문화학적, 매체학적 분석은 Friedrich A. Kittler의 다음 저서들을 참고 하시오: Friedrich A. Kittler, Grammophon Film Typewriter. Berlin, 1986; Draculas Vermächtnis. Leipzig, 1993.


17) Hans Land, Schaubühne am 22.9.1910, Hauke Lange-Fuchs, 앞의 책, S. 10에서 재인용.


18) 참고 J. 웨스턴, ꡔ제식으로부터 로망스로ꡕ. 문학과 지성사, 1988.